창세기 2:4–7 NKRV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는 10개의 족보 (~ 계보 또는 내력 등으로 번역)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를 읽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내력은 인간의 내력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처음 땅과 하늘이 창조된 상태는 초목과 채소가 없었습니다. 또 비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경작이 충분히 될 만한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풀과 초목들이 생겨나도록 만드셨다는 사실을 봤습니다. 물론 그것들이 생겨나도록 환경을 조성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사람들이 먹을 것으로 가꾸어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의 통치자인 인간을 만드십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습니다. 흙은 히브리어로 ‘아다마’입니다. 아다마에서 사람 아담이 나왔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을 토기장이, 사람을 하나님이 만드신 토기로 이해하는 성경의 진술들의 시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 목적에 따라 빚으시고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명체가 되도록 만드십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신전에 둘 신상을 만들고 코에 숨을 불어넣는 행위를 통해 신상이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앞선 본문에서도 나눴듯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을 만드셨다고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심은 ‘살아있는 신적 존재’임과 ‘하나님의 통치 선언’을 말해주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으로 유사한 다른 근동의 신화들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인간은 하등한 존재이거나 신을 섬기는 일에 부역하도록 만들어진 노예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릴 존귀한 존재입니다.
창세기 2:8–9 NKRV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이 없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리가 없이는 메마른 황야 같은 상태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동산 한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만드셨습니다. 생명 나무는 인간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나무입니다. 인간은 아직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생명나무가 있는한 계속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죄를 짓기 이전의 인류는 죽을 수 있는 가능성과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가능성의 결정은 오직 ‘다른 나무’를 통해서 다시 결정되는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과 악을 결정하는 주권’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것과 나쁜것의 기준을 인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인되심에 대한 정면의 반박이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는 3장에서 더 자세하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이 가능성의 영역에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삶과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치명적인 상태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제공하신 것입니다. 자유 속에서 인간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창세기 2:10–14 NKRV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에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물을 소개합니다. 이 강물들은 에덴을 통과헤서 세상을 향해 흘러갑니다. 각 땅의 위치와 경계에 대해서 아는 것도 좋겠지만, 창세기 기록자가 생각하는 강의 의미는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의 풍요로움인 것 같습니다. 아담에게 맡겨진 명령을 생각해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땅을 비옥하고 풍요로운 보물로 가득하게 만들듯이, 에덴이 확장되어가는 일이 아담을 통해 이루어질 때 더욱 풍요로운 땅이 될 것이 기대됩니다.
창세기 2:15–17 NKRV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을 데려다가 동산을 맡아서 돌보게 만드십니다. 아담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 열매는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철저히 금지됩니다. 여기에서 생명 나무를 포함한 모든 나무의 실과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대비됩니다. 선택의 다양성에 있어서 하나님은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제공하셨습니다. 오직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금지됩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과 악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아담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땅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인 것이죠.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할 때 결과는 죽음입니다. 근동에서 주인에 대한 반역은 ‘죽음’인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창세기 2:18–20 NKRV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아담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주기로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사람에게 이끌어오셨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1장에서 읽었던 말씀과 상충되는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이 굳이 1장과 배치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창조에서 있어서 다른 방식의 설명을 하셨다는 점, 1장은 서론과 송영의 역할을 하는 시적 역할, 2장은 산문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의 창조가 단회적이지 않다는 점 등을 지적할 때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물들을 끌어오시고 ‘이름’을 지으시는 것이 어떤 목적을 가지느냐는 것이 주된 설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물들이 아담의 돕는 베필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셨지만 남자의 짝은 없었습니다. 아담은 ‘이름’을 부여할 뿐이었습니다. ‘이름’은 주권에 대한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에게 ‘주인적 역할’을 하지 동등한 역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2:21–25 NKRV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드십니다. 여기에서 ‘갈빗대’라고 번역된 단어는 ‘쩰라’ 인데, 쩰라는 옆면, 방을 가르는 벽면, 언덕 등성이 같은 ‘분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겨우 갈빗대 하나를 꺼내서 여성을 만드신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반쪽’을 갈라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와가 ‘나의 뼈, 나의 살’이라고 불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여기에서 뼈와 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근동에서 ‘언약’을 맺음으로 충성을 약속하는 것이라는 점도 주의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사랑으로 충성함으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으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동등하고 대등한 상태의 결함을 이룹니다. 여성이 남자의 한 ‘부속물’처럼 여기는 것을 성경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1장에서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명령받았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등한 두 인격체를 ‘나누심’과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나누시고, 그들이 ‘하나 되게 하심’을 통해서 ‘풍요로운 가족’을 만들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원리와도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