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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원했던 인간의 미련한 반응

생성자
성경
창세기
묵상 날짜
2026/01/05
본문
창 3:1-13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존재라고 소개됩니다. 잠언에서는 간교하다는 단어가 ‘지혜로움’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뱀이 곧 사탄이라는 사실이 신약에서 발견되지만 지금 여기에서 영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강조되는 것은 아닙니다. 뱀은 여자에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고 질문합니다. 이것은 충분히 계략적인 접근임이 금방 드러납니다. 답변은 ‘아니오’로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당연히 동산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금지된 것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금지된 열매에 대한 설명이 하나님이 말씀하신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의미를 확장시킵니다. 하나님은 ‘만지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하와는 의미를 확장시켜서 만지지도 말라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날에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 라는 수준으로 살짝 경계를 낮춥니다. 금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확대하고 책임에 대해서는 축소하는 방식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죠.
뱀은 여자에게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너희 눈이 밝하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눈이 밝아지는 것과 선악을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설명이 연결됩니다. 인간은 충분히 지혜롭고 아름답고 충만한 영광으로 가득찬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만드는 뱀의 계략에 빠지게 됩니다. 스스로 ‘선과 악’을 알고 판단하고 재단하겠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차원 높은 지식과 영적인 권세를 스스로 획득하겠다는 염원이 이곳에 담깁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워 실행하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와가 걸려든 덫이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여자는 나무의 열매를 봅니다. 열매는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탐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습니다. 여자는 ‘지혜’에 대한 탐욕이 생깁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곧 신적 능력일 것입니다.
여자는 열매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줍니다. 남편은 어떤 의심이나, 죄에 대한 경계심이나, 실행의 반대 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인하고 동조합니다. 이로써 남편은 적극적으로 죄를 지은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멈췄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탐욕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지혜’에 대한 획득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눈이 밝아져’ 얻게 된 최초의 지식은 ‘벗은 줄’ 알고 [수치심]을 가리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수치심을 가려보려고 한 것은 문제에 대한 해결을 ‘스스로’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해결하고 ‘스스로 덮으려고 한 것이죠. 이것이 죄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얻은 지식과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문제 해결은 ‘왕’의 재가와 허락 하에서 이뤄져야 가장 안전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것은 임시적이고 불완전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어냈을 뿐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그들이 수치심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려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가려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지식’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피하는 지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면서 ‘어디에 있느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왜 숨었느냐?’ 라는 질문이 더 직설적으로 죄에 대해 지적하는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만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치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산 나무 사이’가 아담과 하와를 완벽하게 숨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심에도 불구하고 질문하십니다. 목적 자체가 그들을 ‘추방’ 하기 위함이었다면 죄를 물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재’를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의 심판자이시지만, 동시에 인간과의 관계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라고 답변합니다. 하나님은 ‘소재’를 물어보셨는데, 아담은 ‘왜 숨었는지’를 답합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의사소통 기능에 문제가 생긴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의 목적은 관계의 회복이었지만, 아담은 스스로를 피의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검사가 되셔서 다시 질문하십니다. 벗었음을 누가 알려주었는지,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 열매를 먹었는지 질문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여전히 ‘죄에 대한 심판’을 곧바로 내리시지 않으십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경고는 그것을 먹는 날에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경고에 따라 지금 당장 죽음을 선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심판을 유에하시고 아담이 죄에 대해서 자백하길 기다리십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눈이 밝아지고 지혜로워지길 바랐던 인간은 ‘미련함’ 그 자체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나와 함께 있게 하신 그 여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립니다. 여자는 ‘뱀’이 꾀므로 속아 넘어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깨지고 사람과 자연에 대한 관계가 깨뜨려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자백은 일어나지 않고 핑계대고 죄의 원인을 하나님과 여자에게 , 다른 피조물에게 떠넘기는 행동은 비참했습니다. 누구도 회개의 징후를 보이지 않고 남탓하기 바쁩니다. 그들이 얻으려고 했던 참된 지혜는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자 자신은 ‘완벽’해지고 ‘잘못없는 존재’가 되고자 했지만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지혜가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거짓된 지혜에 속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