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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코앞에 닥쳤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생성자
성경
창세기
묵상 날짜
2026/01/09
본문
창 6:1-22
창 6:1-2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지금까지는 하와의 자손들 중에 ‘아들들’만 언급이 되었습니다. 이제 홍수 이전에 태어난 ‘딸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번성하고 충만하는 어머니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태어날 ‘씨앗’을 기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으로 가득해야 할 번성함과 충만함 속에 ‘악’이 깃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논란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대체 누구냐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이나 악마들, 혹은 영들과 같은 신적 존재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은 왕이나 다른 지배자들과 같은 보다 높은 사람들이다.
3)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사람들, 즉 가인의 후손들과는 대조되는 셋의 후손이다.
우리는 이 본문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읽혀졌을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영적 존재와 사람의 성관계를 통한 거인의 탄생같은 이야기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습니다. 에녹 1서를 참고하면 거인들의 이름이 등장하기도하고, 사람들과 관계맺는 영적 존재들인 ‘순찰자’들이 나옵니다. 에녹 1서는 네피림이 거인들이고 이들이 얼마나 파괴적인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마이클 하이저는 이런 영적인 해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으신 신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존재들이 육체적 관계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면 지금 현재에는 그런 일들이 왜 벌어지지 않는지, 왜 그런 일의 발생이 다른 시간대에는 벌어지지 않았는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가지 수수께끼같은 이야기들을 추리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는 선명합니다. ‘악’이 땅에 창궐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습니다. ‘항상 악할 뿐이다’라는 설명은 어떤 사건들이 아니라 ‘만성적 상태’였음을 이야기해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쓸어버리길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라고 말씀하셨던 피조물들을 향해 ‘한탄’하시고 ‘후회’하십니다. 그러나 이 한탄하심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시는 이유가 인간을 ‘심판해야하는’ 상황에 쳐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내버려두실 수 없기에 ‘쓸어버림’으로 깨끗하게 만드셔야 합니다. 그 가운데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가혹한 심판을 내리셔야만 하는 당위적 일에대한 깊은 아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끔찍한 심판의 예고에도 은혜는 지속됩니다. 노아는 의인, 완전한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앞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임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았던 것처럼 노아도 심판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온 땅이 부패하고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는 설명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래서 문제의 시작(1-4절)과 하나님의 후회, 부패와 포악함이 가득하다는 설명(11-12절)이 노아의 의로움과 하나님의 동행에 대한 설명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로써 노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에 휩싸여있는지 구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하나님은 노아에게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멸망 가운데에도 ‘소망’은 남을 것입니다. 노아는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것을 명령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방주에대한 수치와 만드는 방법을 제공해주십니다. 그러나 이 수치와 내용만을 듣고 방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비교되는 문서는 길가메쉬 서사시입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노아의 역할을 하는 우트나파쉬팀은 훨씬 더 자세한 설계도를 제공받습니다. 우리가 앞선 본문들이 고대 근동의 신화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점을 지적했던 것처럼 이 본문도 이런 신화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생각한다면 명령의 단순함은 의롭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간의 능력을 더욱 크게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본문은 아주 작은 설명일 뿐이고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방주를 완성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제 생존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확장됩니다. 심판이 치러지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지속됩니다.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특별히 배에 탑승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립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처음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새가 종류대로, 가축이 종류대로, 기는 것이 종류대로 네게 나올것이라는 설명은 창조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담은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줬지만, 노아는 그것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은 신실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저축하는 것은 극심한 흉년 속에 곡식을 저축했던 요셉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노아는 모든 일들에 순종하고 일을 마치게 됩니다. 순종하는 노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제공됩니다.
쪽 .  다음 프로그램에서 내보낸 파일입니다: Logos 성경 소프트웨어, 오후 7:58 2026년 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