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QT] 재앙이 복으로 / 예레미야 32:36–44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예레미야가 여전히 근위대 뜰 안에 갇혀 있을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셨다.
2 땅을 지으신 주님,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 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3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예레미야는 아직 근위대 뜰 안에 갇혀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결코 환영받은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거부와 예레미야를 가둬두는 제한된 상황에도 거침없이 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고 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나를 부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명령’이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소통과 반응을 통해서 일하신다. 순종의 반응으로 부를 때, 응답은 즉각적이고 놀라운 것으로 제공될 것이다.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이해를 뛰어 넘어 일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비밀이 말하고 있는 바가 ‘포로에서의 귀환’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새 언약’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새 언약이 가지고 있는 진짜 의미가 예수님의 성찬에서 완전히 밝혀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예레미야가 이 당시에 하나님의 계획의 모든 것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이해했을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예레미야에게는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일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을 ‘응답’을 통해 말씀하실 때, 한계를 가지고 고작 우리의 작은 삶의 분량들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교만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부르라’고 명령하시고 ‘응답’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우리의 기대와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그 일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의 삶을 넘어서 넘치는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은 우리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부르지 않을 때, 그 놀라운 은혜는 결코 감각되지 않는다.
4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흙 언덕을 쌓고 쳐들어와 무너뜨린 이 도성과 도성 안의 건물들과 유다 왕궁들을 두고,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5 유다가 뭉쳐서 바빌로니아 사람들과 대항하여 전쟁을 감행하였지만, 마침내, 나는 이 도성을 나의 분노와 노여움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히 채웠다. 나는 그들의 모든 죄악 때문에 이 도성을 외면하였다.
6 그러나 보아라, 내가 이 도성을 치료하여 낫게 하겠고, 그 주민을 고쳐 주고, 그들이 평화와 참된 안전을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겠다.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옛날과 같이 다시 회복시켜 놓겠다.
8 나는 그들이 나에게 지은 모든 죄악에서 그들을 깨끗이 씻어 주고, 그들이 나를 거역하여 저지른 그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겠다.
9 그러면 세상 만민이 내가 예루살렘에서 베푼 모든 복된 일들을 듣게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나에게 기쁨과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이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도성에 베풀어 준 모든 복된 일과 평화를 듣고, 온 세계가 놀라며 떨 것이다.
분명히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 것이다. 토둔과 시체는 높은 곳에서 이뤄진 침공과 낮은 곳으로 흐르는 피를 상반시켜서 끔찍한 침공이 반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유다는 바빌로니아에 대항하려고 했고 전쟁을 감행했다. 우리가 역대하에서 살펴볼 수 잇는 것처럼 시드기야는 결코 바빌로니아에 항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그 반역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의 뽑고 허물고 멸망시키시고 파괴하시는 일이 성취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심고 세우시는 일을 통해서 이 도성은 ‘치료’되며 ‘낫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평화와 안전이 제공되리라는 약속은 이전의 본문에서도 이어지는 하나의 이미지를 제공하는데, ‘선한 목자’에 대한 이미지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쉴만한 물가로, 안전하게 인도하고 맹수들의 공격에 지키고 보호해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을 옛날과 같이 그렇게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에 대한 일은 ‘세상 만민’이 듣게 되고, ‘온 세계’가 놀라고 떨게 되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지 그들의 ‘민족적 회복’만을 목적으로하지 않는다.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실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일이 십자가에서 이뤄졌음을 알고 있다. 참된 안전과 회복, 궁극적인 파괴와 생명의 회복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모든 민족들이 놀라고 떨며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합당한 일이다.
10 나 주가 말한다. 너희들은 ‘이 곳이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고 말하지만, 지금 황무지로 변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는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에 또다시,
11 환호하며 기뻐하는 소리와 신랑 신부가 즐거워하는 소리와 감사의 찬양 소리가 들릴 것이다. 주의 성전에서 감사의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찬양할 것이다.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 감사하여라! 진실로 주님은 선하시며, 진실로 그의 인자하심 영원히 변함이 없다.’ 내가 이 땅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여 다시 옛날과 같이 회복시켜 놓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황폐해서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뽑고 허물고 멸망되고 파괴된 도성은 ‘황무지’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도성을 ‘신랑 신부’가 즐거워하는 소리와 감사 찬양 소리가 들리는 도성으로 환호와 기쁨이 넘치게 만드실 것이다.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자녀들을 포함한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최소한의 공동체다. 파괴되고 황폐한 곳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히 소망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감사와 찬양의 소리는 예배로 이어진다. ‘만군의 주님께 감사하라, 진실로 주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심 영원히 변함없다’ 라는 구절은 시편의 찬양이 울려 퍼질 것이 예고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생명과 희망의 시작이 예배를 통과하며 전인적이며 공동체적인 회복과 복구가 일어날 것임이 기대된다. 이것을 통해 단순히 물리적인 재건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의 회복이 될 것임이 예고 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2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지금은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까지 없는 이 곳과 이 땅의 모든 성읍에, 다시 양 떼를 뉘어 쉬게 할 목자들의 초장이 생겨날 것이다.
13 산간지역의 성읍들과 평지의 성읍들과 남쪽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의 사방과, 유다의 성읍들에서, 목자들이 그들이 치는 양을 셀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하나님은 황폐한 땅이 ‘목자들의 초장’이 생겨나는 곳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 변화가 산간 지역의 성읍들, 평지의 성읍, 남쪽의 성읍, 베냐민과 예루살렘, 유다의 성읍 전체를 그려나가며 어느 한 곳도 제외되지 않는 완전한 회복을 그려내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된다. 목자들이 그들이 치는 양을 셀 것이라는 표현은 안전과 풍요를 보여주며 목자가 자신의 양 떼를 ‘잘 돌보고 있다는 증거’로 사용된다. ‘목자’가 왕 또는 지도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의 ‘목자’는 결코 이스라엘을 제대로 잘 돌보고있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목자는 안전하게 양들을 이끌며 풍요로운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 놀라운 은혜의 사건은 아직 ‘비밀’처럼 여겨질만한 일이다. 크고 비밀한 일은 도무지 예레미야의 상상력을 동원해도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일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모든 구원과 회복에 참여하시고 동참하실 것이다. 그분께서 직접 그 진노를 해결하실 것이며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언약 체결이 끔찍함과 동시에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예레미야에게는 크고 비밀한 일이나 사도 바울의 말처럼 이제 우리에게 그 ‘비밀’이 밝혀졌다. 우리의 선한 목자 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그 새 언약의 실재이시며, 풍성하고 온전한 땅으로 인도하시며, 완전한 성취 그 자체시다.
그 일을 행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그 ‘전인격적인 회복과 풍성한 사랑’ 베풀어주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주님의 일하심 속에서 그 회복과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에게 ‘미래’가 보이며, 소망과 기쁨으로 찬양하며 단지 물리적인 회복이 아닌 관계적 회복을 포함한 모든 영역의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놀라운 은혜의 사건을 깊이 생각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