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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죄인과 중보자 / 욥 9:15-3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5 비록 내가 옳다 해도 감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다만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심판하실 그분께 은총을 비는 것뿐이다.
16 비록 그분께서 내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해도,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귀기울여 들으실까?
17 그분께서 머리털 한 오라기만한 하찮은 일로도 나를 이렇게 짓눌러 부수시고, 나도 모를 이유로 나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시는데,
18 숨돌릴 틈도 주시지 않고 쓰라림만 안겨 주시는데, 그분께서 내 간구를 들어 주실까?
욥의 간구의 핵심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있지 않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과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나의 한 오라기만한 하찮은 일이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서 신원하시고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욥은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 앞에서 한낱 인간일 뿐인 욥이 아무리 구하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실꺼라는 기대감이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전한 단절을 경험한 한 인간의 처절한 부르짖음이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인간은 부르짖는다. 대화는 무산될것이다. 일방적인 외침과 부르짖음은 더 큰 절망을 가져올 뿐이다.
19 강한 쪽이 그분이신데, 힘으로 겨룬다고 한들 어떻게 이기겠으며, 재판에 붙인다고 한들 누가 그분을 재판정으로 불러올 수 있겠느냐?
20 비록 내가 옳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내 입을 시켜서 나를 정죄하실 것이며, 비록 내가 흠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나를 틀렸다고 하실 것이다.
21 비록 내가 흠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고, 다만, 산다는 것이 싫을 뿐이다.
22 나에게는 모든 것이 한 가지로만 여겨진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께서는 흠이 없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한 가지로 심판하신다” 하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완전한 단절에서의 대화는 재판정을 가정한 상황으로 옮겨진다. 하나님과 자신은 법정에 서 있다. 욥은 피고인이 되었다. 하지만 변호인이 없다. 욥을 법정에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판결을 내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 법정은 무조건 유죄가 선고될 수밖에 없는 재판정이다. 그래서 흠이 있든 없든 유죄가 선고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선명한 인간의 상태를 욥이 바르게 깨닫고 있음을 반증하는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진실이다. 이 진실 앞에서 욥은 도망칠 수 없다. 따라서 ‘산다는 것’ 자체가 유죄판결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 뿐이므로 삶이 허무할 뿐이다.
23 갑작스러운 재앙으로 다들 죽게 되었을 때에도, 죄 없는 자마저 재앙을 받는 것을 보시고 비웃으실 것이다.
24 세상이 악한 권세자의 손에 넘어가도, 주님께서 재판관의 눈을 가려서 제대로 판결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이가 누구란 말이냐?
욥은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리라는 결론 위에서 죄 없는 자가 당하는 억울한 재앙도, 악한 자들의 득세가 아무런 손해가 없는 것도 동일하다고 결론내린다.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일들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유죄로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제아무리 잘 나고, 잘 살고, 편리를 누리고 안락한 삶을 살든지 억울함과 아픔과 고통과 고난의 세월을 살든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당당하고 온전한 인간이란 없다.
25 내 일생이 달리는 경주자보다 더 빨리 지나가므로, 좋은 세월을 누릴 겨를이 없습니다.
26 그 지나가는 것이 갈대 배와 같이 빠르고, 먹이를 덮치려고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빠릅니다.
27 온갖 불평도 잊어버리고, 슬픈 얼굴빛을 고쳐서 애써 명랑하게 보이려고 해도,
28 내가 겪는 이 모든 고통이 다만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것임을 압니다.
29 주님께서 나를 정죄하신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써서 헛된 수고를 해야 합니까?
30 비록 내가 비누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닦아도,
31 주님께서 나를 다시 시궁창에 처넣으시니, 내 옷인들 나를 좋아하겠습니까?
온갖 좋은 세월과 고통과 절망과 세월이 한데 묶여서 빠르게 지나가고 결국 마침내는 법정에 서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온갖 불평과 원망도 잊어버리고 슬픔을 바꿔 즐거움과 명랑함으로 인생을 바꾸려 애써봐도 결국에 모든 고통은 최종적 종착지,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인생이 아무리 정직하고 온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판결이 ‘정죄당할’ 것임이 분명하다고 자신의 삶을 한껏 낮춘다. 따라서 욥은 자신이 완전한 정의와 완벽한 인간으로써 하나님의 요구에 완벽하게 충족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데 왜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아무리 깨끗해지려고 나 스스로를 갈고 닦고 깨끗하게 해보려 노력해도 결국 시궁창에 빠져있는 인간일 뿐인데, 어떻게 자신있게 재판정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32 하나님이 나와 같은 사람이기만 하여도 내가 그분께 말을 할 수 있으련만, 함께 법정에 서서 이 논쟁을 끝낼 수 있으련만,
33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할 사람이 없고, 하나님과 나 사이를 판결해 줄 이가 없구나!
34 내게 소원이 있다면, 내가 더 두려워 떨지 않도록, 하나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
35 그렇게 되면 나는 두려움 없이 말하겠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럴 수가 없는 줄을 알고 있다.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하나님이 욥과 같은 인간이 되셔야 법정에 서서 당당히 이 논쟁을 끝낼 수 있겠다고 말한다. 인간이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중재할 중재자가 있어야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과의 영원한 벽이 뚫릴 수 있고 소통이 가능하고, 드디어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욥의 기대는 바로 그 중보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중보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원통함과 억울함과 아픔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호소하고 싶다. 어차피 자신은 완전할 수 없기에 그 중보자가 필요하다. 제발, 그 중보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채찍이 거둬지고 대화가 가능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는 욥의 이 간절한 소망 속에서 로마서가 말하는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선명하게 발견한다. 도무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욥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의인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악인과 동일하게 ‘죄인’으로 취급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하셔야만 소망이 있다. 욥은 진리 앞에 서 있다. 중보자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불가능하고 심판의 거둬짐이 불가능하다. 중보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보자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 모든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하신 분, 모든 율법 지키지 않는 자들의 심판을 대신 당하신 분만이 하나님과의 소통 창구가 되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실 수 있다.
우리는 욥이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중보자를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고 용기있게 우리의 삶을 가지고 달려 나아갈 수 있다. 그 은혜의 보좌 앞에 우리의 삶을 호소할 수 있다. 우리에게 닥친 억울하고 고통스러우며 좌절스러운 인생을 낱낱이 호소할 수 있다. 이전에는 그 심판대 앞이 ‘정죄당해야 마땅할’ 죄인들을 향한 두려운 심판의 장소였다면, 이제는 우리 구주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에게 정죄함이 없이’ 우리의 호소가 정당히 받아들여지며 신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욥은 경험할 수 없었던 중보자가 계심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 복음이 다시금 우리의 심령을 울리길 소망한다. 우리는 무익하고 무력하다. 우리 주님은 무궁한 능력으로 우리를 죽음과 사망에서 건지신다.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 앞에 철저히 죄인이다.
2.
하나님께 호소하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3.
욥은 중보자가 없음에 한탄한다.
4.
우리에게는 영원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5.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디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