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2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3 어느 날 오후 세 시쯤에, 그는 환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똑똑히 보았다. 그가 보니, 천사가 자기에게로 들어와서, “고넬료야!” 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4 고넬료가 천사를 주시하여 보고, 두려워서 물었다. “천사님, 무슨 일입니까?” 천사가 대답하였다.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방인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회심 사건인 고넬료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인물이 서로 교차로 등장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환상으로 보게 되는걸 읽을 것이다. 이 교차된 환상 이야기는 이방인 구원이 한쪽의 ‘일방적’인 구애로 이뤄진게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있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가이사랴는 유대 지방이 로마 속주가 되었을 때 로마 군대의 조력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었다. 가이사랴 지방은 비유대인 지역으로 분류되었고 고넬료라는 이름, 군인으로 백부장이라는 계급을 생각해볼 때 그는 분명 로마인이다.
고넬료를 설명하는 말은 경건한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 자선을 많이 베푸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이다. 또한 이후의 설명으로보아서 유대인들에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물론 가이사랴를 대표하는 로마 군인, 그것도 백부장이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써 유대인들이 갖는 믿음을 자신도 가졌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다른 이방 문화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경건함을 지키려고 했던 것처럼, 겉으로는 이방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했겠지만, 그 내면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오후 세시는 잠을 잘만한 시간은 아니다. 이것은 그의 환상이 꿈과 같은 거짓은 아니라는 말이다. 고넬료는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평가를 듣게 된다. 고넬료의 기도와 자선행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다. 우리는 알게 되겠지만 그의 경건한 삶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우리는 이후에 말씀을 듣는 중에 경험한 성령충만과 세례 장면을 읽게 될 것이다. 경건이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구원은 말씀과 그 말씀에 ‘복종’함을 통해 받는 것이다.
5 이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너라.
6 그는 무두장이인 시몬의 집에 묵고 있는데, 그 집은 바닷가에 있다.”
7 그에게 말하던 천사가 떠났을 때에,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서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서,
8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욥바로 보냈다.
천사의 이어지는 말은 욥바에 사람을 보내 베드로를 데려오는 것이다. 천사의 지시는 대단히 자세한 정보를 알려준다. 도시 이름, 데려와야하는 인물의 히브리어, 헬라어 이름, 가야하는 집 주인의 이름, 그 집의 위치이다. 고넬료는 이 환상을 보자마자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 모든 이야기를 하고 욥바로 보냈다. 아마 이 경건한 병사들도 고넬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는 일에 돕는 사람들이었을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어쨌든 이 구절에서 생각해볼 것은 고넬료와 그 부하들이 ‘즉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아는 것도 가서 확인 후에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서 즉각적으로 움직인다. 이 태도가 경건을 만들어낸, 그리고 이후의 구원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할 태도다.
9 이튿날 저들이 길을 가다가, 욥바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10 그는 배가 고파서, 무엇을 좀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에, 베드로는 황홀경에 빠져 들어갔다.
11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드리워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12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들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이제 베드로의 환상이 등장ㅎ나다. 베드로는 정오 기도시간에 지붕으로 올라가 기도한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배가 고파서 무엇을 먹으려던 차에 환상을 보게 된다.
베드로의 환상 내용은 하늘이 열리고 보자기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이 열림, ‘땅’에 드리워져 내려옴 이라는 표현에 따라 세계 전체를 상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사방위’를 가지는 보자기로 보아서 이 환상의 의미는 세계의 모든 것 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따라서 이 보자기 안에 있는 온갖 짐승들은 먹을 수 있는것과 먹지 못하는 것 모두의 표본이 담겨있는 것으로 이해도니다.
이 환상이 식사 시간과 가깝기 때문에 ‘먹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반대로 이 환상이 사실인지에 대해서 베드로는 확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시험인지, 하나님의 명령인지 구분해야 했다.
13 그 때에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14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15 그랬더니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뒤에,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다.
베드로에게 일어나서 잡아먹으라고하는 음성을 듣는다. 이 음성의 주체는 예수님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주님’ 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천사라고 인식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익숙한 음성이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두번째 음성에서 말하는 주체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시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듣고 있는 이 명령에 베드로는 ‘반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의 응답은 사실 당연하다.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는 행위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극도의 기피행위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베드로가 머무르고 있는 무두장이 집이 그리 정결예식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무두장이는 동물의 피와 사체를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부정함과 천대 받을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 집에 가서 여러날 머문 것으로 보아 그런 예식적 정결례를 한 단계 뛰어 넘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환상은 지금까지 가져왔던 정결예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의 식사가 제공될 것을 예상하게 만든다. 사실 그 새로운 차원의 식사가 이미 예수님을 통해 제공되었다. 그분의 살과 피가 제공된 식탁을 제자들은 경험했었다. 이제 그 살과 피가 제공된 식탁은 더욱 넓어져 새로운 이스라엘로 여겨지게 될 ‘교회’ 속에 차별없고 제한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먹고 마시게 될 것이다.
고넬료의 사람들과 베드로 모두 ‘한계’를 깨뜨리고 있다. 그 한계를 깨뜨리시는 주체는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모든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계신다. 그분의 식탁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먹고 마셨던 것처럼 이제 온 세계를 향하여 함께 먹고 마실 식탁을 준비하셨다. 제한없는 주님의 식탁이 이방인들에게 제공될 시간이 다다랐다. 그 은혜의 식탁의 시작점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그 식탁이 우리에게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원래 그 식탁에 참여할 자격이 없지만,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그 식탁으로 부르셨다.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주권적인 일하심 속에 직접 제공해주신 것임을 기억하면서 이 식탁에 참여해야 할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한계를 깨뜨린다면 분명 이 식탁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 눈에 보일 것이다. 주님의 식탁이 더욱 확장적으로 경험되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