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5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된다. 베드로는 모여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인다. 앞서 비아냥 거리며 비난하던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 라고 말했던 것을 받아 지금 시간에 술에 취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부터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어떻게 복음을 이해하고 있고, 어떻게 성경을 이해했으며, 어떻게 예수님을 이해했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즉, 기도와 말씀에 집중했던 교회가 예수님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16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19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21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베드로는 요엘의 말씀을 인용한다. 인용한 요엘 2장의 본문은 여호와의 날에 일어나게 될 끔찍한 재앙과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본문이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인물들의 다양성들을 확인하게 된다. 성별, 연령, 사회계층을 초월하여 받게 될 것이고 예언, 이상, 꿈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경험될 것이다. 여기에서 ‘예언하다’ 라는 동사를 슈나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영감으로 된 계시를 선포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진 무언가를 말하는 것,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 그렇다면 여기에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을 포함해 부활과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한 미래적 사건들을 선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베드로가 무시무시한 종말의 사건들,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 해가 변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것에 대한 사건을 최종적 미래 사건으로 언급한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요엘에서 말하는 어두움과 피에 대한 부분의 강조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하늘에 일어나는 징조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관련한 사건들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지금의 방언을 통해 선언되고 있는 하나님의 큰 일은 지금 성취된 사건이며, 계속해서 벌어질 사건으로써 지금이 ‘마지막 날’, ‘여호와의 날’ ‘심판과 회복의 날’이 시작되었다는 이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22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23 이 예수께서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엘에서 말한 재앙의 사건들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베드로는 정확히 지적해나간다. 예수님께서 버림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십자가에 죽으심은 심판의 시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풀려나게 만드심으로써 하나님의 근원적인 통치 질서를 변경시키신다. 이것은 우주적 질서의 변화이다. 죽음이 정복되고 굴복했으며 새로운 질서, ‘부활’이 세계 속으로 들어왔다. 앞선 요엘의 모든 육체에 부어지게 될 환상과 예언은 바로 이 새로운 질서에 대한 예고였고, 그것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확실히 확인되었다.
따라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약의 성취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것이 지금 벌어진 일들의 이유다.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나는 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은 기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체도 소망 속에 살 것이다.
27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28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앞에서 나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두번째 논증은 ‘다윗’의 시편에 나오는 내용이 ‘부활’과 관련된 것이며 예수님이 바로 그 지시대상이시라는 것이다.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은 시편 16편 8-11절 말씀이다. 1차적으로 시편의 본문은 다윗이 말한 것이기 때문에 다윗이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영원한 소망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의 실재적인 ‘화자’가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다윗의 후손으로써, 이 말씀을 성취하신 분은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29 동포 여러분, 나는 조상 다윗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 무덤이 이 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이므로, 그의 후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그의 왕좌에 앉히시겠다고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지옥에 버려지지 않았고, 그의 육체는 썩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입니다.
만약 시편 16편이 다윗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 것이라면 27절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고 거룩한 사람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선언이 ‘거짓’이 된다. 왜냐하면 다윗은 죽었고 무덤의 소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바로 이 본문의 내용이 ‘후손’ 가운데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으로 이해했던 당시의 이해를 가져와서 바로 그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고 그에 대한 확실한 증인들이 바로 방언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예수님이 바로 그 ‘다윗’의 자손,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셨고, 그분은 죽으신게 아니라 살아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심으로 자신의 통치를 시작하고 계신다. 그 증거가 바로 방언이고 그 증인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이다. 예수님이 성취된 말씀 그 자체시고 그 말씀이 지금 이 땅에서 이뤄지고 있다.
33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리셔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일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키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36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시편 110편을 인용한다. 다윗은 죽었고 무덤이 있다. 따라서 하늘로 승천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아니다. 시편 110편은 대관식에 사용되는 시편이었는데 왕조의 후계자 어느 누구도 영원히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는 자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 보좌에 앉으시고 그분의 통치를 시작하셨다.
베드로는 이 설교의 결론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못박은 예수님을 주님 곧 그리스도- 이스라엘이 그토록 열망했던 메시아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큰 일, 그 위대한 일의 결론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것이다.
베드로의 긴 설교문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곧 말씀의 성취 그 자체시며, 벌어지고 있는 현상, 성령임재와 그로 인한 ‘방언’ 경험은 예수님의 통치가 임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듣게 되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가진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잇다. 우리는 구약을 포함한 말씀의 모든 내용들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게 되어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은 구약의 약속된 것들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영광스럽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 직접 일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신실하신 일하심, ‘성령충만’과 성령의 열매들을 통해서 지금 바로 그 예수님의 통치가 이곳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선언해야 한다. 따라서 증인인 우리가 ‘복음’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선언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딛고 있는 땅, 그 반석인 하나님 나라에 살아가는 이들이 가져야 할 유일한 자랑이다. 오늘 이 복음에 자랑스럽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