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복음’이라고 번역된 유앙겔리온은 원래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좋은 소식 자체를 가르키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황제 숭배와 연결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황제의 탄생, 권력 승계 같은 일들, ‘황제의 방문’ 등이 유앙겔리온 ‘복음’이라고 불렸다.
그러니까 복음은 황제의 통치가 굳건하고 그 나라의 평화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말이었다.
오늘 마가복음을 시작하면서 가장 첫번째로 등장하는 단어는 ‘복음의 시작’ 이다. 그리스어 어순으로는 ‘시작’ 아르케 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창세기의 시작에서 ‘태초에’ 라고 번역되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아르케 이다. 따라서 마가복음의 첫 문장은 새로운 창조, 하나님의 왕적 통치가 새롭게 시작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닦을 것이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 한 것과 같이,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우리는 이사야 40장 3절에 등장하는 ‘길을 미리 닦는 심부름꾼’에 대한 이야기를 말라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말라기 3장에도 동일한 이야기가 반복서술되는데 말라기 마지막은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겠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이로써 말라기 이후에 단절되었던 하나님의 역사가 다시 재개됨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역사의 재개는 ‘광야’에서 일어난다. 광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에서 핵심적인 가치관을 가져다주는 장소다. 그들은 광야에서 살아남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나그네로 살았었다. 이제 이야기는 다시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로써 새로운 출애굽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새로운 창조, 새로운 출애굽이 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구약의 시작에 보여주셨던 그분의 나라와 통치를 재개하신다는 선명한 이미지를 제공해준다.
6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8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말라기 마지막이 새로운 엘리야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으로 끝났것과 면밀하게 연결되는 것이 요한의 낙타 털옷과 가죽 띠 이다. 열왕기하는 엘리야의 외형을 설명하면서 털과 가죽띠를 지적한다. 요한이 엘리야의 외형과 닮은 것으로 제시됨으로써 재개된 하나님 나라가 과연 어떤 메시지와 통치를 보여줄 것인지 주목하게 된다.
세례 요한은 자신과 뒤에 오시는 분의 격차를 설명하면서 신발 끈 풀 자격조차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핵심적 사역인 세례의 차이를 ‘물’과 ‘성령’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물’ 세례의 의미가 정결 예식으로의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물 속에 잠기는 행동은 조금더 확장적 의미에서 죽음을 상징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물 속에 잠긴 행위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물 세례는 새로운 출애굽을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성령 세례’가 구약에서 어떤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인지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9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예수께서 물 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11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마가복음은 이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기 주저했던 내용등은 생략되어 있다. 다만 요단 강에서 세례받으시는 장면만을 주목해서 설명한다. 앞서 살펴본것처럼 요단 강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완전한 침례방식의 세례는 출애굽을 떠올리게 만든다.
세례 장면에서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는 장면은 ‘창세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이 혼돈과 공허의 공간으로 이해된 상태에서 창세기 2장의 아람어 번역은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품으셨다고 쓴다. 이것은 이 장면이 ‘새로운 창조’의 사건으로 이해되게 만들고, 하나님의 통치가 삼위 하나님의 서로 사랑하심 속에서 이뤄져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이 새로운 출애굽, 새로운 창조로써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새 출애굽, 새 창조의 사건이 ‘복음’을 처음 듣는 이들에게 가져올 파장을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에게도 ‘복음’이 어떻게 들리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만 ‘영원한 생명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의 왕적 통치로써의 ‘복음’을 너무 좁게 이해한 것일 수 있다. 그분의 다스리심은 모든 것을 완전히 뒤집어 새롭게하시는 역사다. 그분의 통치는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심으로써 이뤄지는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사용하시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완성시키셔서 온 민족에 적용되게 만드실 것이다. 이 위대하신 통치 속에서 우리의 혼돈과 공허는 드디어 잠잠케 되고 승리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 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에 바로 이 놀라운 은혜의 복음이 온전히 선포되고 경험되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1.
'복음'은 원래 '좋은 소식'을 의미하며, 마가복음은 새로운 창조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
세례 요한의 등장은 엘리야의 외형을 닮아있고, 구약의 본문에 근거했을 때, 새로운 출애굽과 종말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3.
예수님의 세례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상징하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이 새로운 출애굽과 새로운 창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것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