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물었다. “이것이 사실이오?”
2 스데반이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에,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3 ‘너는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서, 어디든지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거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전 본문에서 거짓 증언들이 스데반이 전하는 복음이 모세의 규례를 폐기하려고 한다고 모함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스데반은 그런 시도들을 반박하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속에 어떻게 일하셨고, 어떻게 율법을 성취하시고 확장하셨는지를 설명하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율법을 폐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려고 하심이라는 사실을 논증할 것이다. 또한 동시에 율법을 완성하시는 분을 반대하는 그들이 지금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에 반대자들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스데반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으로 소개된다. 그분의 영광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새로운 곳에 어떤 제한 없이 일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지금 스데반을 모함하는 자들이 ‘성전’에 국한된 사고를 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나타나실 수 있으며 어디든지 부르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특별히 ‘가나안’ 땅을 제시하시고 제공하실 것이다.
4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 그를 하란에서 지금 여러분이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유산으로 물려줄 손바닥만한 땅도 그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이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제공된 땅은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옮겨진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한 성취를 지금 살고 있는 후손들이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온전한 성취를 경험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 ‘땅’에 대한 약속을 무시하지 못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식 없음때문에 여러 실수를 하는 아브라함이지만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고야만다.
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후손들은 외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7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그들을 종으로 부리는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겠고, 그 뒤에 그들은 빠져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예배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여드레째 되는 날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고, 이삭은 야곱에게 또 야곱은 열두 족장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후손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종살이와 학대, 그들의 출애굽과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될 커다란 그림을 제시하신다. 그렇게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아주 작은 것 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너무나 먼, 어쩌면 와닿지 않는 미래의 사건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바로 지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지금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며 ‘할례’를 행한다.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냄으로 생식, 자녀를 낳음의 주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시는 하나님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것을 지속적으로 자녀들과 그 자녀들에게 행함으로써 그들은 신실하신 하나님, 성취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전적인 주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9 그런데 그 족장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에다 팔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10 모든 환난에서 그를 건져내시고, 그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총애를 받게 하셨습니다. 바로는 그를 총리로 세워서, 이집트와 자기 온 집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은 분열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신실하지 못했다. 약속하신 자녀들은 시기하고 죽이기를 시도하며 팔아넘긴다. 그런 이스라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서 약속하신 일을 오히려 성취하고 계신다. 그들은 종살이를 당할 것이고 학대당할 것이다. 그것이 또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될 이야기의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악’ 조차도 관리하고 계신다. 요셉은 환란에서 건져지며 이집트와 자기 온 집을 다스림으로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된다.
11 그 때에 이집트와 가나안 온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재난이 극심하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12 야곱이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우리 조상들을 처음으로 거기로 보냈습니다.
13 그들이 두 번째 갔을 때에,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이 일로 말미암아 요셉의 가족 관계가 바로에게 알려졌습니다.
약속의 땅이 흉년에 들어 재난이 극심할 때 그곳을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미리 일하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자녀’들은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당장에 성취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합하여 마침내 성취되게 만드신다. 형제들에게 미움당했던 요셉은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키 포인트가 되고 있다.
14 요셉이 사람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야곱과 모든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모셔 오게 하였습니다.
15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서, 그도 거기서 살다가 죽고, 우리 조상들도 살다가 죽었습니다.
16 그리고 그들의 유해는 나중에 세겜으로 옮겨서, 전에 아브라함이 세겜의 하몰 자손에게서 은을 주고 산 무덤에 묻었습니다.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이 애굽에 정착하게 된 상황을 설명한다. 본문의 자세한 숫자에 대한 내용과 매장 전승이 구약과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핵심 포인트는 아니다. 여기에서 이집트에서의 ‘죽음’의 결말은 약속의 땅에서 벗어났다는 점과 약속의 자녀들이 죽음 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좌절되었느냐는 질문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핵심이다. 우리가 주지하듯이 바로 이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과 약속의 성취는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죽음’과 ‘약속의 땅에서 벗어남’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회복되고 성취되느냐 이해할 때 복음의 핵심으로 다가서게 된다. 우리 주님은 죽으심과 성전에서의 배제를 경험하셨지만, 오히려 부활과 영광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를 계속해서 듣게 되면서 어떤 상황적 좌절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신실하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곧바로 적용될 이야기다.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하고 실수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구원의 영광으로 이끌어가실 주님은 어떤 좌절스러운 상황조차도 선하심으로 바꾸시고 완성하셔서 우리의 삶에 그 놀라운 은혜의 영광을 마침내 비춰주실 것이다. 오늘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기대하고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