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욥이 대답하였다.
2 지혜로운 사람이라곤 너희밖에 없는 것 같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너희와 함께 사라질 것 같구나.
3 그러나 나도 너희만큼은 알고 있다. 내가 너희보다 못할 것이 없다. 너희가 한 말을 모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4 한때는 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적도 있지만, 지금 나는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의롭고 흠 없는 내가 조롱을 받고 있다.
5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너희가 불행한 내 처지를 비웃고 있다. 너희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민다.
6 강도들은 제 집에서 안일하게 지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도 평안히 산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까지 자기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다.
욥은 지혜 논쟁에 참전한다. 누가 더 지혜로운가? 참된 지혜는 누가 이야기하는가? 욥은 자신도 친구들이 말하는 그 지혜 ‘권선징악’에 대한 지혜를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욥은 친구들의 지혜를 초월하고 있다. 왜냐하면 친구들의 주장은 ‘재앙과 벌’이 죄의 결과 이기 때문에 역으로 ‘재앙과 벌’을 당한다는 것은 ‘죄’를 지었다는 반증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욥에 따르면 친구들은 고통을 당해보지 않아서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미는 것일 뿐이다. 친구들은 헤세드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대신 전하는 자들이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헤세드는 커녕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진리 감별사로써 욥을 난자하고있다.
7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것들이 가르쳐 줄 것이다. 공중의 새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것들이 일러줄 것이다.
8 땅에게 물어 보아라. 땅이 가르쳐 줄 것이다. 바다의 고기들도 일러줄 것이다.
9 주님께서 손수 이렇게 하신 것을, 이것들 가운데서 그 무엇이 모르겠느냐?
10 모든 생물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사람의 목숨 또한 모두 그분의 능력 안에 있지 않느냐?
11 귀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혀가 음식맛을 알지 못하겠느냐?
12 노인에게 지혜가 있느냐? 오래 산 사람이 이해력이 깊으냐?
친구들의 지혜는 악인들이 벌을 받고 온전한 자들이 보상을 받는 구조지만 세계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강도는 평안함으로 안락하게 지낼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권선징악이라는 것은 환상일 뿐인가? 욥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짜 지혜는 ‘우주와 만물’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땅과 바다의 물고기와 모든 생명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식할 수 있다. 이제 욥의 지혜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신학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그러나 자연신학이 우주적 질서와 미세조정을 통해서 우주 창조자, 설계자를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게 욥의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인식은 오히려 정반대로 ‘무한한 가능성’에서 오고 혼돈과 무질서로부터의 증명이다.
13 그러나 지혜와 권능은 본래 하나님의 것이며, 슬기와 이해력도 그분의 것이다.
14 하나님이 헐어 버리시면 세울 자가 없고, 그분이 사람을 가두시면 풀어 줄 자가 없다.
15 하나님이 물길을 막으시면 땅이 곧 마르고, 물길을 터놓으시면 땅을 송두리째 삼킬 것이다.
16 능력과 지혜가 그분의 것이니, 속는 자와 속이는 자도 다 그분의 통치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의 진짜 위대하고 놀라운 비밀, 참된 비밀은 하나님께서 모든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드신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내버려두시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에대해 불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조차도 하나님의 손길 아래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정확하게 알고있다. 자연도 하나님의 손길에서 혼돈과 파괴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뤄지고 있으므로 이것은 ‘죄’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으로 끌고가진다.
17 하나님은 고관들을 벗은 몸으로 끌려가게 하시는가 하면, 재판관들을 바보로 만드시기도 하신다.
18 하나님은 왕들이 결박한 줄을 풀어 주시고, 오히려 그들의 허리를 포승으로 묶으신다.
19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맨발로 끌려가게 하시며, 권세 있는 자들을 거꾸러뜨리신다.
20 하나님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던 사람을 말문이 막히게 하시며, 나이 든 사람들의 분별력도 거두어 가시고,
21 귀족들의 얼굴에 수치를 쏟아 부으시며, 힘있는 사람들의 허리띠를 풀어 버리신다.
고관과 왕들과 제사장들은 말하자면 ‘복’ 받은 자들의 전형이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높아진 그들을 끌고 내려오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낮은 자를 높여주시고 놈은 자들을 낮추시는 일’을 하실 것임을 알고 있다. 이것은 친구들의 인식에 따르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어떻게 ‘높아진 자’ 복 받은 자를 끌어 내린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일을 행하신다. 자신만만하게 자아가 비대해진 자들을 하나님은 낮추시고 끌어내리신다. 그러나 이것은 혼돈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질서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 이뤄지는 일이다.
22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서도 은밀한 것들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조차도 대낮처럼 밝히신다.
23 하나님은 민족들을 강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뻗어 나게도 하시고, 흩어 버리기도 하신다.
24 하나님은 이 땅 백성의 지도자들을 얼이 빠지게 하셔서,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신다.
25 하나님은 그들을 한 가닥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더듬게도 하시며,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게도 하신다.
분명히 하나님은 ‘파괴자’ 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와 힘은 건설이 아니라 ‘파괴’에 사용된다. 하나님의 파괴는 모든 열방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어둠과 죽음’에도 적용된다. 모든 것을 파괴시키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무질서를 위해 이 파괴를 사용하시는 것은 아님을 믿는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파괴’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파괴’ 하려고 하시는 걸까?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 ‘지혜’로 오셨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수 있다. 우리 주님만이 참된 우주의 통치자, 관리자시다. 우리 주님께서 혼돈과 파괴로 가득한 세계의 주인이심을 지금도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요구를 완성시키심으로써 ‘사망과 죽음’ 자체를 파괴 시키셨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주적 지혜다.
우리 주님의 참된 지혜는 혼돈과 파괴를 죽음을 깨뜨리시는데 사용하셨다는데서 온다. 거짓된 지혜는 이 땅에서 모든 완성되고 완벽한 질서와 지혜가 발견가능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오염된 인간들의 세상에서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새롭게 변화됨’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십자가와 부활만이 영원히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참된 지혜가 혼돈과 파괴와 죽음과 공포를 뚫고 ‘부활’을 통해 영원하신 섭리와 통치와 다스리심이 이뤄지고 있음을 증명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참된 지혜를 붙들며 사는 인생 살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파괴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다.
2.
하나님은 파괴의 능력을 ‘죽음’에 사용하셨다.
3.
하나님의 참된 지혜는 사망과 죽음을 파괴함으로 새롭게 변화됨을 가져오셨다.
4.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이 십자가의 자기 파괴를 통해 왔다는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