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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숨겨진 교만과 자기 정죄 / 욥 22:1-30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였다.
2 사람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끼쳐드릴 수 있느냐?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그분께 아무런 유익을 끼쳐드릴 수가 없다.
3 네가 올바르다고 하여 그것이 전능하신 분께 무슨 기쁨이 되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하다고 하여 그것이 그분께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
4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판하시겠느냐?
5 오히려 네 죄가 많고, 네 죄악이 끝이 없으니, 그러한 것이 아니냐?
엘리바스는 아주 정확하게 인간이 하나님께 어떤 유익도 끼쳐드릴 수 없다는 점을 잘 지적했다. 우리 인간의 오염된 본성은 도무지 하나님을 향해 선한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같은 것들로 연약하나 최선을 다해 반응할 뿐이다. 우리의 온전함이 하나님께 유익이 될리 없다. 따라서 엘리바스의 이런 지적은 정확하다.
하지만 적용이 잘못되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정의로우신가에 대한 질문에서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물이 생긴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책망과 심판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6 네가 까닭 없이 친족의 재산을 압류하고, 옷을 빼앗아 헐벗게 하고,
7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8 너는 권세를 이용하여 땅을 차지하고, 지위를 이용하여 이 땅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살았다.
9 너는 과부들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고, 고아들을 혹사하고 학대하였다.
10 그러기에 이제 네가 온갖 올무에 걸려 들고,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11 어둠이 덮쳐서 네가 앞을 볼 수 없고, 홍수가 너를 뒤덮는 것이다.
엘리바스의 억측은 지금도 억울한 욥을 더욱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 결과만 가지고 욥의 인생을 추측하는데 모든 것들이 다 모함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와 별개로 엘리바스가 ‘악인 욥’으로 묘사하는 내용들은 성경이 말하는 악인의 행동들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인’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알고있다는 말이다.
친족의 재산과 옷을 빼앗고,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안혹 패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으며 과부와 고아들을 학대하고 권세와 지위를 이용하여 교만한 인물- 그야말로 악인의 전형이다.
따라서 욥이 실재로 그런 인물이었다면 고통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욥기 1-2장의 기초에 의해서 엘리바스는 고통받는 이유를 재구성한 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12 하나님이 하늘 높은 곳에 계시지 않느냐? 저 공중에 높이 떠 있는 별들까지도, 하나님이 내려다보고 계시지 않느냐?
13 그런데도 너는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겠으며, 검은 구름 속에 숨어 계시면서 어떻게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겠느냐?
14 짙은 구름에 그가 둘러싸여 어떻게 보실 수 있겠느냐? 다만 하늘에서만 왔다갔다 하실 뿐이겠지!” 하는구나.
하나님과 인간 세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간섭하지 않으신다는 개념을 ‘이신론’이라고 부른다. 욥은 이신론을 이야기한적이 없다. 만약 엘리바스가 욥이 이신론을 이야기한것으로 느꼈다면 그것은 ‘하늘의 중보자’에 대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중보자가 이 땅의 고통당하는 인간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엘리바스가 욥의 말을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5 너는 아직도 옛 길을 고집할 셈이냐? 악한 자들이 걷던 그 길을 고집할 셈이냐?
16 그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사로잡혀 갔고, 그 기초가 무너져서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17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좀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여 우리에게 무슨 일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18 그들의 집에 좋은 것을 가득 채워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도 악한 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19 그런 악한 자가 형벌을 받을 때에, 의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죄 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비웃기를
20 “과연 우리 원수는 전멸되고, 남은 재산은 불에 타서 없어졌다” 할 것이다.
이전 본문에서 욥은 악인들이 잘 될 때 ‘우리를 내버려두라’고 말한다고 지적했었다. 그런데 오늘 엘리바스는 정반대로 그들이 망해가고 사로잡히고 기초가 무너지고 있을 때 우리를 좀 내버려두라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엘리바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악인들이 더 이상 망하지 않도록 내버려 달라는 말로 읽힌다. 그래서 엘리바스 생각에는 차라리 하나님께 회개하고 좋은 것을 가득 채워달라고 구하는 것이 더 탁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인들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고 비웃는 자들은 ‘의로운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엘리바스와 친구들은 의로운 사람, 욥은 악인 이라는 구도가 짜여진다. 엘리바스에 의하면 욥이 친구들 편에 나란히 서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회개하고 돌이켜야한다.
21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
22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여 주시는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씀을 네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라.
23 전능하신 분에게로 겸손하게 돌아가면, 너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온갖 불의한 것을 네 집 안에서 내버려라.
전능하신 분께 겸손하게 되돌이키고 회개하며 하나님과 화해하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전적으로 옳다. 오염된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과 회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엘리바스의 말은 표면적으로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욥에게 적용해볼때 지금 욥은 완전한 단절을 경험할 뿐인 죄인이다. 따라서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표면적 관찰을 하고 있는 엘리바스의 말은 사실이 아니지만, 그가 표면적 관찰에서 얻은 결과물이 아주 틀린말은 아니고 오히려 옳은 말이었다. 다만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24 황금도 티끌 위에다가 내버리고, 오빌의 정금도 계곡의 돌바닥 위에 내던져라.
25 그러면 전능하신 분이 네 보물이 되시고, 산더미처럼 쌓이는 은이 되실 것이다.
26 그 때가 되어야 비로소 너는, 전능하신 분을 진정으로 의지하게 되고, 그분만이 네 기쁨의 근원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물질적 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물이 되시는게 중요하다. 전적으로 옳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물질적 부자가 되는 것이 모든 인생에서 제일의 목적과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여기지만 엘리바스조차도 물질이 최우선이 되는 인생은 결코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하나님이 인생에 유일한 가치와 목적이 되셨을 때 참된 기쁨의 근원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27 네가 그분에게 기도를 드리면 들어주실 것이며, 너는 서원한 것을 다 이룰 것이다.
28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고, 빛이 네가 걷는 길을 비추어 줄 것이다.
29 사람들이 쓰러지거든, 너는 그것이 교만 때문이라고 일러주어라.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구원하신다.
30 그분은 죄 없는 사람을 구원하신다. 너도 깨끗하게 되면, 그분께서 구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맹목적이긴 하지만 절대적 믿음으로 초월하라고 조언하는 엘리바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메시지인데 기도하면 응답해주시고 모든 서원이 이루어지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모든 길위에 빛이 비추는 환상적인 인생의 해결자를 만난 모습을 그려낸다. 엘리바스의 논지에 의하면 이것은 ‘의인’들의 특전이다. 이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교만하고 회개해야 할 악인일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바짝 엎드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깨끗해져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엘리바스는 욥이 매우 교만하고 선하지 않은 악인이라고 규정하면서 회개할것을 촉구한다. 이 말의 근저에는 자신은 ‘의인’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자신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며 나누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스스로 ‘교만하다’는 증거이다. 그는 욥을 까내리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않는 ‘의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처음 자신이 뱉은 말에 스스로 반격당한다. 그 모든 의로운 행위들로 하나님께 기쁨과 유익이 될리 없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바는 우리의 연약함 조차도 기쁨과 유익으로 바꾸실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어떤 교만한 충고와 지적이 아니라 정말 삶으로 낮은곳, 겸손한 곳을 찾아 섬기는 모습이 더욱 효과적이고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오늘도 이 겸손함 속에서 은혜주시길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욥을 비난하던 엘리바스의 말은 거꾸로 말해 자신이 의인이라는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자신을 의인이라고 여기는 순간 ‘교만’함으로 패망할 수 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철저히 겸손함으로 고통당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4.
그 앞에서 누구도 교만해서도, 교만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