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예언자의 무리 가운데서 어떤 예언자가 주님의 명령을 받고서, 동료에게 자기를 때리라고 말하였으나, 그 동료가 때리기를 거절하니,
36 그 예언자가 말하였다. “네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니, 네가 나를 떠날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일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이 그를 떠날 때에 사자가 나타나서 그를 죽였다.
이 짧은 두 구절에서 아합의 잘못과 결과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무명의 예언자에는 누구를 집어넣더라도 성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아합을 넣어보자. 아합은 하나님으로부터 ‘때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시리아와의 1차 전쟁을 설명하는 19-20절은 ‘치다’ 라는 단어가 3번이나 반복될정도로 ‘치는 행위’의 선명함을 볼 수 있는데, 2차 전쟁에서 아합은 시리아 왕 벤하닷을 때리기는 커녕 ‘형제’라고 부르며 경제적 이득을 취해버린다.
예언자는 순종하지 않음으로 ‘사자’가 나타나 죽임을 당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합은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37 그 예언자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자기를 때리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예언자를 때려서, 심한 상처를 입혔다.
38 그 예언자는 붕대로 눈을 감아서 위장하고는, 길목으로 가서, 왕을 기다렸다.
39 왕이 그대로 지나치려고 하니, 예언자는 왕을 부르며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전쟁터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저에게로 포로 한 명을 데리고 와서는, 그 사람을 감시하라고 하였습니다. 포로가 도망을 하면, 제가 대신 죽든지, 아니면 은 한 달란트를 물어 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40 그런데 임금님의 종인 소인이 이 일 저 일을 하는 동안에, 그 포로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받아들인 것이니, 벌금을 물어야 한다.”
예언자는 아합에게 재판을 요구한다. 재판의 내용은 ‘포로’와 ‘약속’에 관련된 내용이다. 우리가 어제 살펴본것처럼 아합은 자신이 시리아의 종이 될뻔한 상황에서 시리아 왕을 종으로 삼을수도 있었는데, 종으로 삼지 않고 ‘언약’을 맺고 돌려보낸다. 자신이 ‘약속’에 신실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아합이 정말로 신실해야 하는 약속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아합은 앞으로는 공정한 심판자인것처럼 행동하지만 자기의 삶에서 모순적인다.
지금 등장하는 예언자는 무명이지만 아합이 알았던 인물인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맞아서’ 일그러진 상태인데다가 붕대로 눈을 감고 위장하고 있다. 아합이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다수 죽였기 때문에 예언자가 아합과 등을 지고있는 적대적 인물이었으리라고 추측해보면 아합은 지금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휘둘리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더 예리하고 민감하게 살펴봤다면 충분히 알아볼수도 잇었을 것이다. 그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못하는 왕이다.
41 그 예언자는 그의 눈에 감은 붕대를 급히 풀었다. 그 때에야 이스라엘 왕은, 그가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임을 알았다.
42 그 예언자는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가 직접 놓아 주었으니, 너는 그 목숨을 대신하여서 죽게 될 것이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여서 멸망할 것이다.’ ”
43 이스라엘 왕은, 마음이 상하여 화를 내면서,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의 궁으로 돌아갔다.
예언자가 드디어 붕대를 풀자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알아본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선언된다. 과연 정곡을 찔린 아합은 회개할 수 있을까? 그것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앞어 예언자가 예시를 들었던 것처럼 대신 죽든지 엄청난 값의 가격을 지불하든지 둘중 하나를 해야 한다. 아마도, 아합이 회개했다면 ‘대신 죽는 것 말고 엄청난 값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 예시를 다윗을 통해 볼 수 있다. 다윗은 실수했지만 회개함으로써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용서받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 ‘마음이 상하고 화’를 내면서 자기 궁으로 돌아온다. 그는 회개하지 않는다. 이로써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 자신의 목숨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이런 방식의 하나님의 선언을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한 번 더 듣게 될 것이다. 그때에 아합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임으로써 결과가 조금 달라지는 것을 읽게 될 것이다.
‘순종’과 ‘복종’이 해답이다. 그것이 아합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해결책이었다. 순종과 복종의 자리에서 회개했을 때 그는 들을 수 잇고 볼 수 있고 회복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순종과 복종이 이뤄지지 않을 때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순종과 복종을 요구하시며 끊임없는 인내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더라도 순종하는 자에게는 기꺼이 길을 여시고 보상하시며 응답하신다. 그 순종과 복종의 자리를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