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우리는 이전의 본문에서 ‘잎사귀’가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읽었었다. 따라서 무화과 나무가 잎이 돋아났을 때, 아주 작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을 때 심판과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성전의 열매 없음은 주님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심판을 자초했다.
열매 없음에 대한 심판 예고는 매우 현실적이었고 그 결과 또한 완전한 파괴로 이어지리라는 점에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매우 시급하고 긴급한 메시지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은 이전의 종말 예언과 마찬가지로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것으로, 미래에 벌어질 사건 또한 반복될 시대의 열매 없음과 연결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3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차적인 해석에서 보여주는 것은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이야기이기때문에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과 그 성취에 대한 확실한 보증을 최초의 교회들은 분명히 인식하고 확인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 세대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a.d. 70년 티투스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는 성취되었다.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종말적 사건’으로 본문을 끌고 가려는 유혹을 받고는 한다. 그러다보면 ‘이 세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라온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1차적 해석으로 마무리하면 생기지 않을 문제이지만, 최후의 종말 사건으로 이해한다면 ‘이 세대’와 앞서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때는 연결되어 있어서, 시대의 표징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세대 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지시대명사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에 따라서 해석상의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복잡한 모든 내용들을 걷어놓고 보더라도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은 은혜로운 지연이든지, 은혜려운 단축이든지 ‘반드시’ 일어날 것이므로 제자들은 시대의 표징을 민감하게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33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민감하게 시대를 읽을 수 있어야하는 이유는 그 날과 때는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심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 때가 언제인지를 인간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그 ‘전조 증상’을 어렴풋이 알고 이해하고 그에 합당하게 반응하려고 준비할 뿐이다.
따라서 선교역사에서 ‘우리 시대에 주님이 다시 오시게 하자!’ 라는 엄청난 구호와 함께 열정적인 선교 사역들은 분명히 그 열정적인 구령의 열정에 있어서 긍정적이지만, 선언이 가지고 있는 의미 자체는 적합하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 성취되는 그 날을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사역으로 ‘앞당길 수 ‘ 있다는 것 또한 착각이다.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인내하며 조심하고 깨어서 마지막 순간ㄴ을 [준비]하는것 뿐이다.
34 사정은 여행하는 어떤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 그가 집을 떠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35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대 세계 사람들은 밤에 여행하는 것을 피했을 것이기 때문에 마치 ‘밤’에 주인이 돌아올것처럼 이야기하고, 그렇게 기대되고 있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전혀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 주인이 찾아오듯 우리 주님이 다시 오셔도 전혀 이상함이 없을 정도로 온전히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자들과 교회 공동체는 우리 주님이 낮에 오실지, 밤에 오실지 알 수 없다. 다만 각각의 위치에서 받은 ‘권한’과 ‘할 일’을 주인이 돌아와서 확인했을 때 전혀 부끄럽지 않게 명령받은대로 움직이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 때와 시는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에 달려있는 것이므로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인내하고 조심하고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철저히 준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인의 명령은 ‘깨어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인은 ‘밤’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잠자고 있는 명령받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시대와 징조는 계속해서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전방위적으로 알려주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유예하시는 은혜를 착각한 나머지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상태에 놓여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바로 그 모습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 상태라면 ‘심판’ 당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깨어있음’과 ‘준비된 삶’ 명령에 순종하는 삶은 반드시 ‘열매’ 맺힘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가 아무리 역설적인 시간,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약속하신 그 날이 취소됐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때에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따라서 주님이 명령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삶을 최선을 다해 책임있게 역할을 감당해야한다. 우리 주님이 명령하신 바를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은 결코 심판을 벗어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강력한 심판을 예상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적인 순종의 자세, 맡겨진 일을 인내함으로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주님께 가진 열매를 올려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때를 열매 맺기를 간절히 바라고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