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과 함께 주님 앞에 섰다.
2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탄은 주님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다. 네가 나를 부추겨서, 공연히 그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지 않느냐?”
우리는 욥기를 시작하면서 동일한 천상회의의 이야기를 읽었었다. 그때도 하나님은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고 질문하셨다. 동일하게 지적했었던것처럼 하나님이 모르셨을리가 없다. 하나님은 사탄이 지켜봤던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심에도 질문하시고 사탄은 말을 돌린다.
하나님은 정곡을 찌르시며 욥이 얼마나 흠없고 정직하게 온전함을 지켰는지에대해서 칭찬하시며 욥을 두둔하신다. 여기에서 사탄이 하나님을 부추겨서 이런 고통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악에 휘둘리시는 분이시라고 곧장 해석해버릴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인간의 연약함, 사탄의 충동 모두를 뒤집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이실 수 있는 증거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심을 증명하시기 위하심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눈물과 고통의 골짜기를 걸어가야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 끝, 결말은 선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4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가죽은 가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립니다.
5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들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그는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입니다!”
6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를 너에게 맡겨 보겠다. 그러나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아라!”
사탄은 다시금 욥을 시험하시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욥의 뼈와 살이 쳐진다. 이것은 단지 육체적인 시험만을 포함하는 것으로 읽혀지기보다 가장 친밀한 관계, 아담이 하와에게 말했던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말했던 표현을 생각나게 만든다. 뼈와 살이 쳐짐으로써 그의 육체가 생명의 위협을 받음과 동시에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인 아내가 완전히 뒤돌아선다. 다른 누가 비난하더라도 가장 자신의 편이 되주기를 바라는 아내의 배신은 욥이 당하게 될 완전한 고립감을 보여줄 것이다.
7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나 곧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게 하였다.
8 그래서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다.
9 그러자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10 그러나 욥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두 번째 시험은 자신의 신체와 가장 가까운 아내와의 관계가 무너져내리는 것이었다. 온 몸에 악성 종기가 났다는 것은 욥이 ‘신적 심판’을 받았다는 증거로 삼기 좋았을 것이다. 그의 의롭게 여겨졌던 모든 행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욥의 상태만 보더라도 두가지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이 없다거나, 하나님이 악하시다. 그게 아니라면 욥은 지금까지 ‘가식적 존재’였다. 욥의 친구들은 끈질기게 욥에게서 잘못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를 정죄하고자 할 것이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자신을 가장 잘 알꺼라고 믿었던 아내의 배신으로부터 이뤄진다.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한다. 아내의 말은 ‘어리석은 여자들’과 연계되는데,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악을 다루실 능력이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욥은 결코 그 죄의 구렁텅이에서 함께 뒹굴지 않는다. 복도 하나님께 받았다면 재앙도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그것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시야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길이 없기에 원망도 터져나오고 두렵기도 하지만, 진짜 믿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데서부터 온다. 욥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않는다.
11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은, 욥이 이 모든 재앙을 만나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욥을 달래고 위로하려고, 저마다 집을 떠나서 욥에게로 왔다.
12 그들이 멀리서 욥을 보았으나, 그가 욥인 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참 뒤에야 그가 바로 욥인 줄을 알고, 슬픔을 못 이겨 소리 내어 울면서 겉옷을 찢고, 또 공중에 티끌을 날려서 머리에 뒤집어썼다.
13 그들은 밤낮 이레 동안을 욥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서도, 욥이 겪는 고통이 너무도 처참하여, 입을 열어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욥의 세 친구가 등장한다. 그들은 여러 지방에서 모였다. 일단 지금의 장면은 이 세 친구들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등장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그들은 악의적으로 친구를 향해 다가온자들이 아니다. 먼 곳에서부터 여행해야 했고, 위로하려고 왔으며 울며, 옷을 찢고, 티끌을 날려 애도를 표했다. 심지어 이레 동안 욥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는자와 함께 우는 자들이었다.
지금 욥의 처참한상태는 이 좋은 친구들이 한참 뒤에야 욥인줄 알아차렸다는 사실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혹독한 고통과 신음 속에 친구들은 욥과 함께 하기 위해 저마다의 집에서 찾아왔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정죄하고’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시험의 무대가 준비되고 있다. 욥을 위로하러 온 그들은 과연 욥을 위로할 수 있을까? 진리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까?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아내에 이어서 친구들마저도 욥을 괴롭히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욥은 전인격적으로 고통받는다. 그가 오랜시간동안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은 친구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몸이 아프면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줘야 할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악을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친구들이 와서 깊은 애도로 함께 해주지만, 앞으로 그렇게 위로를 위해 온 친구들의 날카로운 정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전인격적 말살을 당하는 중인 욥이 과연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고통의 예시와 선명함을 십자가를 통해서도 상상할 수 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이 전인격적 말살 현장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신실하게 기도하셨다. 욥의 실패 앞에서 우리는 자신할 수는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원망하며 실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관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전적인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다면 우리의 기도와 간구는 무의미한 것이 되버릴 것이다.
다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우리의 모든 악 조차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를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욥의 고통은 전인격적 고통으로 확장된다. 그 속에서 온전하게 남을 인간은 거의 없다.
2.
욥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인가?
3.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 욥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