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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왕상 21:1-10 /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는 왕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

1 그 뒤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 땅에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궁 근처에 있었다.
‘그 뒤에’ 이런 일이있었다. 라고 말하면서 전쟁 상황에서 아합의 마음이 완전히 상한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에서 아합은 꽤나 전략적인 선택으로 이득을 얻었다. 전쟁의 큰 피해없이 승리를 거뒀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무역로를 개척함으로써 경제적인 이득도 취했다. 그리고 선의를 베풀고 언약을 맺음으로써 꽤나 그럴싸한 외교적 성취도 이뤘다. ‘인간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아합은 ‘사마리아의 왕’으로 소개된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과 비교되는 사마리아의 왕으로 소개되는 것은 ‘각자의 허락된 영토’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어쨌든 아합은 아버지 오므리가 사마리아를 샀던 것처럼 이제 이스르엘 땅의 포도원을 사들이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여기에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것은 약속의 땅에서 미리 맺어진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 과연 아합은 ‘약속’에 신실한 왕으로써 궁극적 약속인 ‘하나님과의 약속’에서도 신실할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원이 나의 궁 가까이에 있으니, 나에게 넘기도록 하시오. 나는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려고 하오. 내가 그것 대신에 더 좋은 포도원을 하나 주겠소. 그대가 원하면, 그 값을 돈으로 계산하여 줄 수도 있소.”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제가 조상의 유산을 임금님께 드리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불경한 일입니다.” 4  아합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그 포도원을 조상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양도하기를 거절하였으므로, 마음이 상하였다. 화를 내며 궁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도 먹지 않았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정원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물론 값을 돈으로 계산해서 지불할 것이다. 우리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오므리가 이미 사마리아 땅을 구입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한편 다윗도 성전산을 ‘구입’ 했었다는 점도 고려해볼 수 있다. 땅을 값을 주고 사는 것이 아주 없는 전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런 시도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거부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전의 전통보다 상위의 법으로 제한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아합의 시도는 무산이 되었다. 그래서 화를 내며 궁으로 돌아와 음식도 먹지 않으려고 한다.
아합의 심리를 추측해보자면 그가 상당한 승리를 거뒀는데도 땅 구입하나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매우 화가 났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화를 내며 음식도 먹지 않는 반응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불경한 일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예언자가 벤하닷을 놓아준 것때문에 예언했던 내용에 대해서도 마음이 상하고 분노했었다. 오늘 본문도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하나님의 예언에 대해서, 하나님의 규칙과 언약에 대해서 마음이 상하고 분노하는 중이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전혀 정당한 반응이 아니었다.
5  그러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로 와서, 무슨 일로 그렇게 마음이 상하여 음식까지 들지 않는지를 물었다. 6  왕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의 포도원을 내게 넘겨 주면, 그 값을 돈으로 계산해 주든지, 그가 원하면 그 대신 다른 포도원을 주든지 하겠다고 했는데, 그는 자기의 포도원을 내게 줄 수가 없다고 하였소. 그 때문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현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님이 아니십니까? 일어나셔서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좋게 가지십시오.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임금님의 것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세벨이 등장한다. 이세벨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합을 부추긴다. 아합을 부추기는 근거는 ‘현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써 어떤 권세도 능력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세벨의 이야기는 아합의 왕권이 지금 어떤 근거 위에서 행사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합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왕국의 대리 통치자가 아니다. 그가 직접 통치하고 다스리는 왕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왕국의 보좌를 스스로 찬탈한자들의 비극적 결말을 계속해서 살펴왔었다. 이제 아합의 차례다.
8  그런 다음에,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옥쇄로 인봉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게 하시오. 10  그리고 건달 두 사람을 그와 마주 앉게 하고, 나봇이 하나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게 한 뒤에,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서 죽이시오.”
이세벨은 왕의 이름을 찬탈한다. 아합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했는데, 이세벨이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씀으로써 아합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세벨의 막후 정치는 ‘거짓말’로 채워져있다. 이 거짓말의 역겨움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저주했다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저주한 것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업신여긴 아합과 이세벨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이다. 그럼에도 거짓증언을 하나님과 임금을 저주했다는 것으로 꾸미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억울한 피가 흘려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꾸미는 행위들이 얼마나 자기모순적인 역겨움을 만들어내는지 보라. 그들은 자기 스스로 왕좌에 앉아서 약속과 상관없이 ‘결과’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떤 말도 서슴지않고 뱉어낸다. 이 거짓된 말과 행동이 낳는 것은 억울한 피가 흐르게 만드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되심을 진정으로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먼저 신실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우리인생에서 왕적인 임무를 감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언약에 불성실한다면 우리의 왕적인 임무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휘둘리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며 그분의 언약에 신실하게 행동하며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