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하필QT]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 욥기 34:31–35:16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31 욥 어른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32 잘못이 무엇인지를 일러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시면서, 다시는 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33 어른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반대하시면서도, 어른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물론, 결정은 어른께서 하실 일이고, 내가 할 일이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고 계신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후는 욥을 도전한다. 욥이 자신이 지은 죄를 알려달라고 외치지만 다시는 악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단과 완전한 돌이킴이 있었느냐고 질문한다. 우리는 엘리후의 말에서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한다. ‘회개’는 죄 뉘우침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실재하는 행동의 변화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면에서 엘리후의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엘리후는 욥이 ‘죄인’이라는 기초에서 논리가 시작되고 있다. 욥이 그런 죄인인가? 그렇지 않다. 엘리후가 지적하고 싶었던 죄의 목록에 해당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어떤 행동의 변화와 결단을 하라는 말인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엘리후의 이야기는 더욱 불편하게 욥을 정죄하고 있다.
34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면, 내 말에 분명히 동의할 것입니다. 내 말을 들었으니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35 욥 어른이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하고, 기껏 한 말도 모두 뜻 없는 말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6 욥 어른이 한 말을 세 분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분께서는, 그가 말하는 것이 악한 자와 같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37 욥 어른은 자신이 지은 죄에다가 반역까지 더하였으며, 우리가 보는 앞에서도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엘리후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욥의 말들이 지혜도 없고 헛된 말뿐인 것들이라는 점을 알 것이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이 헛된 말들이 ‘악한 자’와 같다고 지적한다. 이런 표현들은 이전에 욥과 친구들이 모두 했었던 말들이다. 따라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욥과 친구들은 ‘지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며, 이 지혜 논쟁에서 누가 참된 지혜를 획득했는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엘리후는 마지막 쐐기같은 말로 욥이 자신이 지은 죄에다가 반역을 더해 하나님을 모독함으로써 지혜논쟁에서 참패했다고 선고한다.
1 엘리후가 다시 말을 이었다.
2 욥 어른은 ‘하나님께서도 나를 옳다고 하실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지만,
3 또 하나님께 “내가 죄를 짓는다고 하여,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라도 미칩니까? 또 제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얻는 이익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시는데, 그것도 옳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엘리후는 욥의 말들을 평가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옳다고 하실꺼라고 주장하는 욥의 말을 인용하면서 죄를 안짓는다고 얻는 이익이 무엇이냐고 따져묻는 욥을 향해 틀렸다고 평가를 내린다. 욥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 내리실 것을 기대했던 이유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내적 확신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엘리후는 그런 말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욥이 죄인이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들인데 뻔뻔하게 죄를 안짓는다고 얻는 이익이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죄를 안지었어야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는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다.
4 이제 어른과 세 친구분들께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5 욥 어른은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구름이 얼마나 높이 있습니까?
6 비록 욥 어른께서 죄를 지었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가며, 어른의 죄악이 크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미치겠습니까?
7 또 욥 어른께서 의로운 일을 하셨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슨 보탬이 되며, 하나님이 어른에게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8 욥 어른께서 죄를 지었다고 해도, 어른과 다름없는 사람에게나 손해를 입히며, 욥 어른께서 의로운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사람에게나 영향을 미칠 뿐입니다.
엘리후는 아주 적절하게 인간이 지은 죄의 영향력이 하나님께 조금도 미칠 수 없다는 사실, 반대로 인간이 행한 의로움의 영향력이 하나님께 조금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따라서 죄에 대한 회개와 뉘우침, 하나님께로 돌이킴은 전적으로 ‘인간적 차원’에서 효과적인 것들이지 하나님께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9 사람들은 억압이 심해지면 부르짖고, 세력이 있는 자들이 억누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청하면서 울부짖지만,
10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어두운 때에도 희망을 주시는 그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11 하나님이 우리에게 짐승이나 새가 가진 지혜보다 더 나은 지혜를 주시는데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12 그들이 거만하고 악하므로, 하나님께 “도와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들은 체도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억압이 심해지면 부르짖고 울부짖지만 ‘하나님’께는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지혜 논쟁’에서 누가 가장 탁월한 지혜를 가졌느냐고 서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려는 지혜는 쓸모없는 지혜일 뿐이다. 짐승과 새가 가진 지혜 수준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려는 욥의 지혜를 평가절하하며 모욕한다.
13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보지도 않으시고, 그들의 호소를 들어 주지도 않으시므로, 그 악한 자들의 울부짖음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14 욥 어른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십시오. 어른께서 걸어 놓은 소송장이 하나님 앞에 놓여 있습니다.
15 어른은,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사람의 죄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16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어른께서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어른은 자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소송장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겠다고 말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이미 소송장이 하나님 앞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그 소송장의 내용은 유죄 판결을 위한 내용이 적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죄의 목록들과 대가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계시고 판단을 내리셨다고 맹렬하게 비난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하나님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한 엘리후의 발언들을 살펴보게 된다. 정말 하나님은 욥을 심판할 계획이신가?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엘리후의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을 넘어서는 월권적 말들이다. 왜 그런 말들을 쏟아내는가? 엘리후가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욥을 판단하려고 할 때 신비로운 영적인 근거들을 기초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영적인 표현들과 말들은 결코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엘리후의 말들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관계속에 아무것도 주고받을만한 것이 없다는 식의 논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의 이신론과 같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시고, 만드신 섭리에의해 움직이도록 방치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계 속에 섭리하시며 함께하시고 교제하시며 만나고 사랑하고 관리하시고 협력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 속에 오셔서 임재하시며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하길 원하신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그 가능성을 철저히 오염시켰을지라도 그것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오셨고 성령을 보내셨다. 그 가능성은 결코 포기된적이 없었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우리 주님이 오신 이유가 우리와 함께 교제하길 원하시는 간절함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엘리후의 ‘완벽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한없이 낮아지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기꺼이 우리를 위해 낮은곳으로 자기를 버리심으로 우리에게 맞춰주셨다. 그렇게 우리의 한계를 끌어안으시고 같이 아파하시고 눈물흘리셨으며 우리를 깨우시고 질책하시고 일어나게 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 사랑을 기억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인간의 죄와 의로움이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2.
그렇지 않다고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이신론적 하나님이 되고만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과 기꺼이 교류하시길 원하셔서 우리에게 오셨다.
4.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셨던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모든 문제들도 끌어안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