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 독한 포도주는 내가 쓸 데가 있어서 숨겨 놓았던 것, 나중에 쓰려고 곳간에 보관하여 둔 것이다.
35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원수들이 넘어질 때가 곧 온다. 재난의 날이 가깝고, 멸망의 때가 그들에게 곧 덮친다.’
36 그들이 기진맥진 하고, 갇힌 사람도 놓인 사람도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37 그 때에 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들의 신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피난처로 삼던 그 반석은 어디에 있느냐?
38 그들이 제물로 바친 그 기름을 먹고, 부어 바친 포도주를 받아 마시던 그 신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그들이 너희의 피난처가 되게 하여라.
어제 살펴본것처럼 독한 포도주, 독극물로써 심판에 쓰일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정의로 보복하실 때 사용될 것이다. 원수를 갚는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일이고 재난과 멸망을 사용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진노의 잔에 대한 표현들을 예언서들을 포함해 예수님의 만찬에서, 요한계시록에서 그 반향을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분노의 포도주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우주적인 심판의 불길이 휩쓸때 하나님의 긍휼이 이스라엘을 향해 전해진다. 그러나 그 긍휼은 이스라엘의 잘못을 다시금 정확히 지적하고 제거한 뒤에 온전히 경험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참된 신, 유일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확인해야 한다. 이방나라들이 그토록 섬기고 신뢰하던 신은 존재조차 없다. 그들에게 아무리 제물을 바치고 도움을 구해도 도와줄 수 없다. 오로지 참된 도움과 피난처는 하나님만 제공하실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지체없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39 그러나 이제는 알아라. 나, 오직 나만이 하나님이다. 나 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 나는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한다. 나는 상하게도 하고 낫게도 한다.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을 막지 못한다.
40 내가 하늘로 손을 들고, 내가 나의 영원한 삶을 두고 맹세한다.
41 나는 나의 칼을 날카롭게 갈아서, 내 손으로 재판을 주관하며, 내 원수들에게 보복할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겠다.
42 피살자와 포로들의 피, 적장의 머리에서 나온 피, 내 화살이 이 피를 취하도록 마시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실컷 먹을 것이다.’
43 모든 나라들아,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그 종들의 피를 흘린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고 당신의 대적들에게 복수하신다. 당신의 땅과 백성이 지은 죄를 속하여 주신다.
모세가 검사로써 이스라엘의 잘못을 고발했듯이 하나님은심판자로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께 대항하는 자들을 향해서 심판을 내리신다. 하늘을 향해서 손을 드신 강력한 선언은 그 어떤 것도 회피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상징된다. 용사와 같이 대적들을 향해 칼을 빼드시고 전쟁터로 뛰어드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힘 앞에 어떤 것도 대적할 수 없다. 위대한 용사이신 분의 심판의 칼은 적들을 분쇄하신다.
이렇게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모든 나라들은 주님의 백성들과 함게 기뻐하며 찬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심판의 대상이 된 나라들이 벌인 우상숭배적인 행태와 비윤리적인 사회구조가 만든 착취와 억압들이 벗겨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침내 종결된 악의 세력으로 인해 모든 세계와 나라들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할수밖에 없다. 이 사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이 전우주적인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이 될 것이며 온 세상의 회복이라는 종말론적인 기대감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4 모세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함께 가서, 백성에게 이 노래를 모두 다 들려주었다.
45 모세가 이 모든 말을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한 뒤에,
46 그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당신들은 마음에 간직해 두고, 자녀에게 가르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십시오.
47 율법은 단지 빈 말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의 생명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그래야만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 차지하는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입니다.”
모세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함께 노래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달한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 두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명령한다. 율법은 ‘생명’과 같이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살 수 있다.
이스라엘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말씀을 마음에 두고 가르치고 지키게 되었을 때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육신의 심장이 교체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참된 생명력으로 약속의 땅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할 때 생기는 심판과 죽음의 예시가 ‘모세’를 통하여 충격적이게 제시될 것이다.
48 바로 같은 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49 “너는 여리고 맞은쪽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줄기를 타고 느보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소유로 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라.
50 너의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백성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네가 오른 이 산에서 죽어서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51 이는, 네가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의 므리바 샘에서 물이 터질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데서 믿음 없는 행동을 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52 너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저 땅을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모세는 느보 산 꼭대기로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므리바 샘에서 ‘믿음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온전한 순종에 부족했다. 이것 하나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가 질문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은 엄위하시다. 그렇게 정하신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경고’가 될 것이다. 제아무리 하나님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더라도하나님의 엄위하신 판단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스라엘은 과연 하나님의 이 경고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렇게 엄위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봄과 동시에, 그 모든 악과 우상들이 제거되고 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놀라운 그림을 보게 된다. 이 종말적인 그림이 우리가 그토록 기대하는 최후의 순간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의 한계를 가진 연약함들이 사라지고 온전한 마음으로, 전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날을 깊이 고대하며 속히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