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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믿음의 여정 / 마가복음 6:1–13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가신다. 그리고 나사렛으로 제자들이 따라간다. 장면은 안식일과 회당이라는 배경으로 정해진다. 이전 본문에서 안식일과 회당은 기적과 가르침이 결합되고 놀라움을 자아내는 일들로 가득했다. 그렇다면 나사렛에서는 어떨까?
오늘 본문 또한 예수님께서 가르치기 시작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란다. 하지만 그 놀람의 반응이 이상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다.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고 정체를 특정한다. 분명히 듣고있는 청자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예수님의 가정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형제들의 이름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지금 이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전 본문에서 예수님을 ‘미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후에 이들 모두가 교회 안에서 신앙을 공유했음을 추측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름이 제시된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 이야기의 증인들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효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에 대한 반대자였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4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5 예수께서는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 거기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을들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신 것 밖에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놀랍다. 예수님께서 ‘행하시지 않으셨다’가 아니라 ‘행하실 수 없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r.t. 프란스의 말처럼 [믿음]의 부재일 것이다. 마가는 기적의 경험은 ‘믿음’으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해오고있다. 예수님도 계속해서 ‘믿음’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믿음이 없다.’
예수님은 바로 이 믿음없음을 매우 놀랍게 여기신다.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셨지만 믿음없음은 제한된 기적만 경험되게 되었다. 이들의 ‘선입견’, 예수님을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착각은 이들을 믿음 없는 상태로 몰아갔고, 그들이 경험할 수 있었던 놀라운 은혜와 복을 얻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셨다.
8 그리고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9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모습은 누가복음의 70인의 전도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조금 더 좁은 수준의 ‘열두 제자’를 상정한다. ‘열두 제자’는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얻었다. ‘둘 씩’ 보냄을 받은 것은 법적 증언을 채택하기 위해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이 요구되는 율법을 기초로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가지지 말아야 할 금지물품들을 제시받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으로써 ‘떠돌이 나그네’ 처럼 되었다는 점이다. 어디론가 정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가지고 가서는 안된다. 모든 물질적 필요는 호의에 따라 제공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주 가볍게 떠나야 한다. 나머지는 책임져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1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거든, 그 곳을 떠날 때에 너희의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서, 그들을 고발할 증거물로 삼아라.”
12 그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서 병을 고쳐 주었다.
중동 사회에서 방문교사들에대해서 ‘호의적’이어야만 한다는 점을 생각해봐야한다. 이것은 ‘명예’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해야하는 문화권에서 제자들에 대한 환대는 ‘당연’해야만 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무르며 주신 권세에 따라서, 전달받은 메시지를 힘있게 전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환대의 문화가 있음에도 그들은 ‘배제’ 당할 것이 분명하게 예상된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거절 당하시는 것처럼 똑같이 거절 당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런 거절은 ‘고발’ 당할 것이다. 그 증거물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명령하신다. 이로써 그들은 정죄 당할 것이다.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는 일들을 경험했다. 이것이 ‘선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봐야 한다. ‘선포’는 회개를 통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질 때, 축귀와 병고침의 기적은 경험된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믿음’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리 예수님이셔도 ‘믿음 없는 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기적은 없다. 제자들도 ‘거절하는 동네’는 먼지를 털고 떠나야한다. 결국 ‘믿음’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임이 분명하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근거가 될 것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믿음의 내용과 방향성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면 우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고 하나님 나라가 그 내용이며, 영원한 나라가 우리의 방향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겠다. 그것을 위해서 이 땅의 것들을 ‘나그네’가 얻는 피난처 정도로 여길 수 있다면, 우리의 여정은 더욱 단순해지고 선명해질 것이다. 이 믿음의 여정을 잘 헤쳐나가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