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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성전으로부터 시작하는 개혁 / 열왕기하 11:1–2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아들이 죽는 것을 보자,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2 그러나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서도,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겼다. 이 때에 사람들이, 아달랴가 모르도록 그를 숨겼으므로,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3 요아스는 그의 고모 여호세바와 함께 여섯 해 동안을 주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으며, 그 동안 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다.
아달랴는 아합의 딸이다. 아달랴는 남유다에서 왕족들을 다 죽이기 시작한다. 다시말해 다윗왕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아달략의 살육은 예후의 살육과 비교된다. 예후는 아합 가문에 대한 절멸을 실행하려는 듯이 자녀 70명을 죽였다. 아달랴는 다윗 가문에 대한 절멸을 실행하려는 듯이 모든 아들들을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는 아하시야의 아들을 몰래 숨긴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읽어갈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왕조를 이 위기로부터 건져내심으로써 ‘약속의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지적해야 한다. 그 속에 하나님의 언약에 충성된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에도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들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한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여호야다와 여호세바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두 사람이 부부라는 점을 생각해봐야한다. 여호야다는 제사장으로써 성전에 머물고 있고, 여호세바는 이제 막 태어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않은 아이를 키우고있다. 그러므로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여호야다와 여호세바의 자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는 중요한 요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4 일곱째 해가 되자, 여호야다 제사장이 사람을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들을 주님의 성전에 있는 왕자에게로 데리고 가서,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또 주님의 성전에서 맹세를 하게 한 뒤에, 그들에게 왕자를 보여 주었다.
5 그리고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안식일 당번을 세 반으로 나누어, 삼분의 일은 왕궁을 지키고,
6 다른 삼분의 일은 수르 성문을 지키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호위병들의 뒤에 있는 문을 지키십시오. 이와 같이 하여 왕궁을 철저히 지키게 하도록 하십시오.
7 그리고 안식일 비번은 모두 두 반으로 나누어서, 임금님께서 계신 주님의 성전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8 각자 무기를 들고 임금님을 호위할 것이며, 누구든지 대열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고, 임금님께서 나가고 드실 때에는 반드시 경호하도록 하십시오.”
여호야다는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와서 성전에 있는 왕자에게로 가서 맹세하게 하고 각각의 역할에 따라서 성문과 왕궁, 성전을 지키도록 명령한다.
우리는 이전의 본문에서 예후의 쿠데타가 일어난 과정을 살피면서 얼마나 정치적이고 잔인한 살육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 섞여들어갈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여호야다는 성전을 중심으로, 공격이 아닌 ‘수비적 형태’로 쿠데타를 진행한다. 또한 예후의 개혁에 있어서 한계는 여전히 ‘금송아지’를 섬기는데서 드러났지만, 여호야다의 개혁은 철저히 ‘성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된다.
몇가지 중요하지 않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7살이 되던 해와 삼분의 일씩 나눈 호위병들, 반으로 나뉘어진 안식일 비번 등은 불완전한 예후의 개혁에 대치되는 상징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9 백부장들은 여호야다 제사장이 명령한 것을 그대로 다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 당번인 사람들과 안식일 비번인 사람들을 데리고 여호야다 제사장에게로 왔다.
10 제사장이 백부장들에게 창과 방패를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다윗 왕의 것으로서, 주님의 성전 안에 간직되어 있던 것들이다.
11 그리하여 호위병들은 각각 손에 무기를 들고,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주위를 감시하며, 왕을 호위하였다.
12 그런 다음에 여호야다 제사장이 왕세자를 데리고 나와서,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왕의 직무를 규정한 규례서를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니, 백성이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여호야다는 백부장들에게 다윗의 창과 방패를 나누어준다. 이것은 아마도 국가적 상징과 같은 보물이었을 것이며, 성전에 간직되어 있던 것이므로 거룩한 기물이라는 의미가 담겨져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무기적 관점’에서 나누어졌다기보다는 ‘상징적 관점’에서 나누어졌다는 점에서 차이를 두어야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을 보호하셨다. 여호야다는 직접 자신이 왕좌를 찬탈하지 않는다. 자신이 돌본 시간동안 요아스가 하나님의 언약에 합당하게 순종하도록 최선으로 도왔다. 물론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죽음 이후 변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호야다의 가르침에 한계가 있었는가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진짜 부모가 아닌 고모부에게 따져야할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이 상징적 무기와 왕의 직무를 위한 규례서, 그리고 ‘기름부은 왕’으로써 요아스가 정통 다윗 가문의 적장자로써의 왕위대관식을 마친다. 이로써 위태로웠던 다윗의 혈통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13 아달랴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주님의 성전에 모여 있는 백성에게 가서
14 보니, 왕이 대관식 규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관리들과 나팔수들도 왕을 모시고 서 있고, 나라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며 나팔을 불고 있었다. 아달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이다!” 하고 외쳤다.
15 그 때에 여호야다 제사장이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시오. 그리고 저 여자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칼로 쳐죽이시오.” 여호야다가, 주님의 성전에서는 그 여자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16 그들은 그 여자를 끌어내어, 군마가 드나드는 길을 통해 왕궁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그 여자를 처형하였다.
아달랴는 분노하며 ‘반역’을 외친다. 이 장면은 아달랴의 어머니 이세벨과도 비교된다. 이세벨은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며 ‘왕처럼’ 죽으려했다. 아달랴는 이미 ‘여왕’이다. 그러므로 아달랴의 반역에 대한 외침은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는 이의 정당한 분노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하는 자의 결말은 동일했다.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반역의 주체는 여왕인 자신에게 반기를 들며 기뻐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반기를 든 ‘자신’이다.
여호야다가 이어지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왕과 하나님 사이에서 언약을 맺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아달랴의 분노와 옷 찢음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분노와 옷찢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아달랴의 분노,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거부가 그로인한 심판을 초래했다는 도식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한 가지는 그녀가 성전에서 죽지 않고 ‘왕궁’에서 처형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된 여호야다의 개혁이 ‘성전’을 중심으로, 성전에서 확장되어 왕궁과 왕국을 향해 퍼져나감을 보게 된다. 성전이 ‘에덴’의 모형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들의 예전적 왕위 계승식이 가져야할 참된 본의, 하나님의 통치가 열방으로 흘러가야하는 도식이 적절히 보여진다고 볼 수 있다.
17 여호야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주님과 왕과 백성 사이에 맺게 하고, 동시에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맺게 하였다.
18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그 땅의 온 백성이 바알의 신전으로 몰려가서, 그 신전을 허물고, 제단을 뒤엎고, 신상들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또 그들은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그리고 여호야다 제사장은 주님의 성전에 경비병들을 세웠다.
19 그리고 그는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들과 호위병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주님의 성전에서 데리고 나와서, 호위병들이 지키는 문을 지나, 왕궁으로 행진하여 들어갔다. 왕이 왕좌에 오르자,
20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달랴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살해된 뒤로, 도성은 평온을 되찾았다.
21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 그는 일곱 살이었다.
여호야다의 개혁은 단지 하나님과 왕, 백성 사이의 언약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합의 딸 아달랴가 섬겼을 바알의 신전과 제사장을 죽이고 경비병들을 세움으로써 더이상 바알 숭배가 이뤄지지 않도록 금지시킨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가 성전에서 왕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의 파괴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달랴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살해된 뒤로 도성이 평온을 되찾았다고 개혁의 작업을 서술한다.
이세벨의 죽음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미련한 여인 전형은 오늘 본문에서도 아달랴를 통해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이 왕인줄로 착각하고 자신에게 모든 권세가 있는줄로 알고 있지만, 사실상 참된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 부여받은 권세와 권위만이 참으로 인정될 뿐이다. 자신이 아무리 ‘반역’이라 외쳐봐도, 실재로 반역자는 하나님과 맺는 언약을 싫어하고 자기옷을 찢음으로 거부하는 아달랴 자신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여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용의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서 여인은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여겨진다. 용은 교회를 핍박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시지 않도록 지독한 괴롭힘을 자행하지만,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분명히 오늘의 본문에서 아달랴는 거의 그 약속, 씨를 말려 죽이는데 성공할뻔 했다. 사탄의 공격은 참으로 유효했고 심각한 타격을 입힌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제아무리 강력한 권세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시간을 통해 악을 관리하시고 처단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시간 속에 머물러있는 백성들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 어느때에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사용하셔서 교회를 보호하실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 약속에 ‘신실하게 반응하는 자들’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께 신실하게, 우리의 본분을 다해 우리의 시간을 충실히 채워가자. 하나님께서 그 시간들을 사용하셔서 공간을 변화시키시며 성전의 아름다운 회복이 모든 영역으로 흘러가는 위대한 비전을 반드시 행하실 것이다. 순결한 순종과 결단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