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를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
스데반의 박해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 이어지는 것은 8장 1-4절의 이야기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있었던 사울과 고넬료의 회심사건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에 앞서 하나님께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셨는지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에따르면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안디옥에서는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어떤 계획된 상황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시 디아스포라 회당의 특징을 생각할 때 이곳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유대인들만 있었던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방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예수님’에 대해서 전해질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준비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서 회심한 사울과 베드로의 증거로 말미암아 더욱 적극적인 이방인 선교가 이뤄지기 시작할 것이 기대된다.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23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먼저 안디옥 교회의 상황을 살펴본것은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키프로스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곳의 상황과 환경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 속에서 누가가 바나바를 소개할 때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기꺼이 자신의 밭을 팔아 그 소유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위로의 아들- 예언자로써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말하는것을 보아 바나바가 가지고 있는 인격적, 신앙적 성숙이 이곳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주님께 나아왔다.
그 일에 멈추지 않고 바나바는 기꺼이 사울과 동역하기로 한다. 이제 안디옥은 뜨겁게 불타는 은혜의 교회로 성장할 것이다. 바나바의 포용력과 사울의 추진력이 균형잡히게 사용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이 둘의 사역이 안디옥교회에서 아주 특별한 이름이 처음 사용되게 만들었다.
25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었다.
사울을 바나바가 찾으러 갔을 때 그의 고향 ‘다소’에 있었다. 사울은 이미 예수님을 만났을 때부터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메섹,, 아라비아와 나바테아, 예루살렘,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의 사역 경험이 축적된 상태였다. 따라서 바나바는 사울의 경험이 안디옥교회에 꼭 필요하다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사울이 로마시민권자라는 사실도 로마제국 수리아 지역 수도였던 안디옥에서 사역하는데 유리한 점이기도 했을 것이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다소’까지 직접 찾아가는 열의를 보여준다. 아마 일주일이 넘는 여행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소의 시민이고, 로마시민권자인 유대인 가족이라면 다소에서도 꽤나 유명한 가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울의 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수 있다. 어쨌든 그렇게 공을 들여 동역하게 된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에서 1년의 시간동안 사역하게 된다. 교회에서의 모임, 가르침을 통해서 안디옥 교회는 아주 특별한 이름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다.
우리가 자주 지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 유쾌한 명칭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에 ‘미쳐있는’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에는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분명히 ‘유대인’들과는 다른 구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전에는 ‘회당’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었어도 하나로 묶여있었는데, 이제는 아주 구분된 종교집단으로 당국자들에게 판단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구분은 점점 그리스도인들이 독특한 정체성이 생겼고, 그 독특한 정체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았다는 말이며, 로마에서도, 유대인들에게도 인정받기 힘든 특정 집단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바로 그 차별화됨이 예수님을 ‘주’로 섬긴다는 데서, 그분의 통치 아래 있기를 선택한다는 데서 오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님의 주인되심이 더욱 강조된다.
27 그 무렵에 예언자 몇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다.
28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일어나,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로 그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다.
29 그래서 제자들은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유대에 사는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30 그들은 그대로 실행해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그것을 장로들에게 보냈다.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왔다. 이 무렵은 아마도 사울과 바나바가 함께 사역하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아가보는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실재로 글라우디오 황제때에 그 기근이 일어났다. 로마제국 전체에서 이집트는 곡물 생산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였는데 이집트에도 식량이 부족했다고 알려진다. 따라서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는 예언은 실재로 일어났다. 요세푸스도 수리아-팔레스틴 지방을 휩쓴 흉년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어쨌든 이 이야기에서 안디옥의 제자들이 형편에 따라 유대에 사는 신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이것은 2장에서 살펴보았던 자신의 밭과 땅을 팔아 공동재산을 나누었던 이야기와 연결해서 살펴볼 수 있다. 즉,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일은 이제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교회’라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뤄지게 될 일이다. 따라서 만물의 충만하신 분의 충만이 ‘교회’라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통치 아래, 그분의 식탁이 널리 공유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제 사역은 단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이 기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됨’을 보여주는 ‘연합’의 사역이었으며, ‘교회론’적 섬김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일하심은 이미 벌어지고있는 일들 이전에 이미 준비를 마치셨다. 주님의 통치와 다스리심 속에 교회는 더욱 일치된 모습, 하나된 사역으로 확장되어져갔다. 사역자들이 연합했고, 어려운 지역들을 섬김을 통해서 전 세계의 교회가 단 하나의 가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따른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치 아래 뭉쳤다. 이 교회를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어떤 것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었다.
우리는 바로 그 가치 아래 부르심받은 교회며 그리스도인이다. 우리의 참된 부르심과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인되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한다.
오늘 우리의 삶에 바로 그 부르심이 온전히 경험되고 또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