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날이 흘러서, 삼 년이 되던 해에,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아합을 만나거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
2 엘리야가 곧 아합을 만나러 갔다. 그 때에 사마리아에는 기근이 심하였다.
3 아합이 오바댜 궁내대신을 불렀다. 오바댜는 주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4 이세벨이 주님의 예언자들을 학살할 때에, 예언자 백 명을 쉰 명씩 동굴에 숨기고서, 먹을 것과 물을 대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멈추게하신 가뭄의 때가 끝나간다. 하나님은 비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3년의 시간동안 엄청난 기근이 닥쳤을 것이다. 물이 없는 상태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와 구름의 신 바알은 그 동안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오바댜’이다. 그를 설명하는 말은 ‘주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사람’ 이다.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아합은 강력한 바알 숭배자이지만, 그의 궁궐을 관리하는 대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라는 사실이다. 이 갈등관계가 이 짧은 구절 속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주님의 예언자들을 학살할 때, 1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먹을 것과 물을 준 사람이 오바댜였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음에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따라서 그들을 보호한다. 바로 뒤에서 보겠지만, 아합은 오바댜를 상당히 신뢰했기 때문에 국책사업을 맡길만한 인물로 오바댜를 중용한다. 따라서 오바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바알을 섬기는 왕의 종으로써 역할 사이에 씨름하는 인물이다.
5 아합이 오바댜에게 말하였다. “이 땅 곳곳으로 다 다니며, 물이 있을 만한 샘과 시내를 샅샅이 찾아 보도록 합시다. 어쩌다가 풀이 있는 곳을 찾으면, 말과 나귀를 살릴 수 있을 거요. 짐승들이 죽는 것을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소.”
6 왕과 오바댜는 물을 찾으려고, 전 국토를 둘로 나누어서, 한 쪽은 아합이 스스로 담당하고, 다른 한 쪽은 오바댜가 담당하여, 제각기 길을 나섰다.
7 오바댜가 길을 가고 있는데, 마침 엘리야가 그를 만나려고 오고 있었다. 오바댜가 엘리야를 알아 보고, 머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였다. “엘리야 어른이 아니십니까?”
8 엘리야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렇소. 가서, 엘리야가 여기에 있다고 그대의 상전에게 말하시오.”
아합의 말이 상당히 거슬린다. 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의 백성을 살리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말과 나귀’를 살릴 방법을 찾는다. 짐승들이 죽는 것이 백성들을 살리는 것보다 중요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말과 나귀는 군사력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위기의 시점에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위한 ‘군사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왕과 오바댜는 둘로 나뉘어 물과 풀을 찾으러 떠난다. 바로 그때 엘리야가 나타난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엘리야가 바로 여기에 있노라고 말하라고 전한다.
아합의 말처럼 ‘물과 풀’을 찾으러 떠난 오바댜는 ‘엘리야’를 만난다. 엘리야가 전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뭄이 끝날 것이다. 하지만 누가 비를 내리는 신인지는 확실하게 가릴 것이다. 비를 내리시는 신이신 하나님만 선택할 때 물과 풀은 자연스럽게 제공될 것이다. 오바댜의 미션은 성공한것이나 다름없다.
9 그러나 오바댜는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를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려고 하십니까?
10 예언자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제 상전은 어른을 찾으려고, 모든 나라, 모든 왕국에 사람들을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와서, 엘리야가 없다고 보고하면, 제 상전은, 그 나라와 왕국에게 어른을 정말 찾지 못하였다고,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11 그런데 지금 어른께서는 저더러 가서, 어른께서 여기에 계시다고 말하라는 말씀이십니까?
12 제가 어른을 떠나가면, 주님의 영이 곧 어른을 제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데려 가실 것입니다. 제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와서 어른을 찾지 못하면, 반드시 저를 죽일 것입니다. 어른의 종인 저는 어릴 때부터 주님을 경외하여 왔습니다.
13 이세벨이 주님의 예언자들을 학살할 때에 제가 한 일과, 제가 주님의 예언자 백 명을 쉰 명씩 동굴에 감추고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대준 일을, 어른께서는 듣지도 못하셨습니까?
14 그런데 지금 어른께서는, 저더러 가서, 저의 상전에게, 어른께서 여기 계시다고 말하라는 것입니까? 그러면 제 상전은 반드시 저를 죽일 것입니다.”
오바댜는 두려워한다. 자신이 엘리야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가 하나님께서 자리를 옮기게 만드시면 자신은 거짓말한 자가 되어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아합이 모든 나라, 모든 왕국에 사람들을 풀어놓아 찾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상황과 함께 생각해보자. 아합은 물과 풀을 찾으려고 전국을 샅샅이 찾으려한다. 그런데 그 이전에는 엘리야를 샅샅이 찾으려고 했다. 분명히 아합은 이 가뭄의 원인을 엘리야의 예언에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바댜는 아합이 그런 성정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자신이 얼마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실천해왔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바댜는 한 번더 믿음의 도전을 요구받는다.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신실한 일은 분명히 하나님께 호소할만큼 신실한 일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한번 엘리야,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선언될 차례라고 아합에게 알려야한다. 아합과 이세벨의 잔인한 성정에 자신이 어떻게 다뤄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지만 가서 말해야 한다. 오바댜는 그 두려움을 가지고 엘리야에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확인하고 있다.
15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오. 나는 오늘 꼭 아합을 만날 것이오.”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야한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오바댜에게 엄청난 부담이자 도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바댜의 모습과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히 오바댜는 한 쪽에서 신실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왕국의 신하로써 바알 숭배자의 하수인으로써 일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는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전하는 자로써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아합의 잔혹함을 두려워할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중첩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아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 그 자체를 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다만 우왕좌왕할 뿐이다. 엘리야의 말처럼 그들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는 상태다. 오바댜는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우리는 어제의 본문에서 시돈 땅의 사르밧 과부가 자신의 마지막 목숨과 같은 마지막 식량과 아들을 잃었다가 더 좋은것으로 돌려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부는 믿음의 도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과 오바댜는 이 시험에 성공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도 믿음의 성공들에 대한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 몇번의 성공 사례들을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온전한 믿음의 도전이 곧바로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가 있으며 믿음의 도전들, 생명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하려는 시대의 도전에 응전할 태도가 필요하다. 그랬을 때 이 시대의 가뭄에 다시금 하나님이 준비하신 단비가 내리게 될 줄 믿는다. 이 믿음의 도전이 우리 안에 가능하기를, 단비가 내리는 시간이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