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욥이 대답하였다.
2 오늘도 이렇게 처절하게 탄식할 수밖에 없다니! 내가 받는 이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그분이 무거운 손으로 여전히 나를 억누르시는구나!
3 아, 그분이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 그분의 보좌까지 내가 이를 수만 있다면,
4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련만, 내가 정당함을 입이 닳도록 변론하련만.
욥의 탄식과 호소가 이어진다. 욥은 하나님의 무거운 손이 욥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신 곳을 알 수 있다면 그분께 나아가서 자신의 정당함을 있는 힘을 다해 호소하리라고 작정한다. 모든 상황에 대해서 변론하고 호소하고 ‘찾는’ 주체는 [욥]이다. 욥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중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앞으로 보겠지만 찾는 주체가 변할 때 욥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지게 될 것이다. 아무튼 지금 욥은 자신이 있다. 자신이 의인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만나면 모든 상황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한다.
5 그러면 그분은 무슨 말로 내게 대답하실까? 내게 어떻게 대답하실까?
6 하나님이 힘으로 나를 억누르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씀을 드릴 때에,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실 것이다.
7 내게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하나님께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다 들으시고 나서는, 단호하게 무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욥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실지 궁금해한다. 하나님은 힘으로 억누르시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주실 것을 기대한다. 욥은 억울하다.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어떤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욥은 무죄하다. 하나님이 만나주실 이유가 없다. 떳떳하게 하나님께 말씀 드릴 때 지금 자신의 모든 억울함이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나님은 무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이런 욥의 기대는 자신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 때 이뤄질 일이다. 욥은 떳떳하다. 정정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갈 용기도 있다. 하지만 과연 욥은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까?
8 그러나 동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시고, 서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뵐 수가 없구나.
9 북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고, 남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구나.
10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11 내 발은 오직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만 성실하게 걸으며, 길을 벗어나서 방황하지 않았건만!
12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늘 마음 속 깊이 간직하였건만!
욥은 하나님을 찾아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고, 하나님을 찾을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억울함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욥의 노력은 허사다. 욥은 동서남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그가 인식하는 세계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고 일하고 계신다. 엘리바스가 왜곡해서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상가운데 전혀 관심도 없으시고 일하시지도 않는다는 ‘이신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분명히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다만 욥이 ‘찾을 수 없을’ 뿐이다. 분명 하나님은 욥의 모든 발걸음과 하는 일들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가기만 하면 된다. 단 한번도 방황하지 않았고 정하신 길을 성실하게 걸었다.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성실하게 지키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을 찾고 싶지만 도무지 일하고 계시는 그분을 찾을 길이 없다.
13 그러나 그분이 한번 뜻을 정하시면, 누가 그것을 돌이킬 수 있으랴? 한번 하려고 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마시는데,
14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많은 계획 가운데, 나를 두고 세우신 계획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겠기에
15 나는 그분 앞에서 떨리는구나.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분이 두렵구나.
16 하나님이 내 용기를 꺾으셨기 때문이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떨게 하셨기 때문이지,
17 내가 무서워 떤 것은 어둠 때문도 아니고, 흑암이 나를 덮은 탓도 아니다.
욥이 하나님을 찾으려 했을 때 하나님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뜻을 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신다면, 그것이 자신을 만나시는 것이라면 만날수밖에 없을 것이다. 욥은 그 사실이 갑자기 두렵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자신이 찾으며 하나님께 호소하고 따지려 할 때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하나님이 찾으러 오신다면 그분 앞에서 떨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욥이 그토록 찾길 원하는 하나님과 욥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사이에 욥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골짜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자신이 찾으려 할 때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하나님이 찾아오실때는 두려움이 넘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깨어진 관계성이 가져오는 비극이다.
사람이 제 아무리 하나님을 찾고 호소하고 정의를 말하고 공평을 말하고 자신의 의로운 삶을 꺼내 들어보려고 해도, 그 모든 시도는 결국 무의미한 것들이 되고 공허한 것들이 되리라는 것을 인간의 본성은 알고 있다. 무한하신 우주의 창조자 앞에 우리의 가장 좋은 것, 선한 것들조차도 쓸모없는 것들이 된다. 다만 은혜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만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려 했을 때 찾을 수 없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직접 찾아오신 하나님은 우리와 동일한 고통과 아픔과 단절과 비극과 비참을 경험하셨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직접 찾아오신 하나님께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낱낱이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으며 드디어 억울함과 하소연을 가득담아 하나님의 면전 앞에 설수 있게 되었다. 이때의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욥과 우리가 다른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를 찾고 만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시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데 늘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시다. 그분이 우리를 직접 만나러 오셨다. 지금도 우리를 만나길 원하신다. 욥이 그토록 바랐던 그 만남의 자리에서 깊고 친밀한 교제가 이뤄지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욥은 아무리 하나님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2.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써는 하나님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3.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접 만나러 오심으로써 제공하셨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뚫려진 은혜의 통로를 따라 하나님과 우리의 친밀한 교제를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