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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새로운 리더십과 공동체 / 신명기 31:1–13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모세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하여 말하였다.
2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내 나이 백스무 살입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들 앞에 서서 당신들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3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 앞에서 건너가셔서, 몸소 저 민족들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시고, 당신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지휘관이 되어 당신들 앞에서 건너갈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정복해 가실 때 그 뒤를 따를 새로운 리더로 여호수아를 소개한다.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이 이양되면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리더십 아래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정착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리더는 교체되지만, 여전히 땅을 정복하고 정착시키실 이스라엘의 참된 인도자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4 이미 주님께서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그들의 땅을 멸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멸하실 것입니다.
5 주님께서 그들을 당신들에게 넘겨 주실 것입니다.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대로 그들에게 하여야 합니다.
6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마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가시면서, 당신들을 떠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 에서 40일을 정탐했던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을 배신 했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 코 앞에서 이집트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리더를 뽑자고 아우성 쳤고 하나님과 약속의 땅을 거부했다. 그런 그들이 당해야 하는 결과는 40년 광야 생활 이었다. 40년을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내어 두려움과 무서움을 떨치고 하나님이 앞장서시는 정복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에게 결과는 이미 정해져있다. 하나님이 싸우시면 승리할수밖에 없다. 이미 그 경험이 시혼과 옥을 통해서 내재되었다. 이제 주저함 없이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면된다.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서,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내시오. 그대는, 주님께서 그대의 조상에게 주시기로 맹세하신 땅으로 이 백성과 함께 가서, 그들이 그 땅을 유산으로 얻게 하시오.
8 주님께서 친히 그대 앞에서 가시며, 그대와 함께 계시며, 그대를 떠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시오.”
리더십이 이양된다. 사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0년을 리더로 섬겨온 모세의 강력한 리더십을 하루아침에 똑같이 따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여호수아의 리더십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시켜줌으로써 안심시킨다. 리더십의 근원은 오로지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은 저 멀리에서 지켜보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직접 먼저 들어가실 것이고, 함께 싸우실 것이며,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리더십의 근원 그 자체시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인도 뒤에서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리더가 되면 된다.
9 모세가 이 율법을 기록하여, 주님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에게 주었다.
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일곱 해가 끝날 때마다, 곧 빚을 면제해 주는 해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뵈려고 그분이 택하신 곳으로 나오면, 당신들은 이 율법을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읽어서, 그들의 귀에 들려주십시오.
이제 율법이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모든 장로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전달된 이유는 그들이 계속해서 이 율법을 읽어주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언약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말씀을 떠올리고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율법이 그들의 삶 속에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칠년에 한 번 곧 안식년이 되면 이집트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신 일에 대한 역사적인 기억을 근거로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게 되어있었다. 이때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려주는 율법이 낭독되어야 한다. 따라서 율법은 역사적 구속에 대한 기억을 계속해서 알려주며 거대한 이야기가 그들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민족의 역사 전반에서 반복되도록 만들어진다.
12 당신들은 이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만이 아니라 성 안에서 당신들과 같이 사는 외국 사람도 불러모아서, 그들이 율법을 듣고 배워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13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차지하는 땅에 살게 될 때에, 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당신들의 자손도 듣고 배워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시오.”
반복적으로 언약의 적용 대상이 남녀와 어린아이, 외국 사람까지 포함되는 것을 언급한다. 즉, 율법은 시간적으로는 역사를 구성하고 공간적으로는 약속의 땅에 사는 공동체 전체를 포괄한다. 율법의 포괄적 적용에 대해서 강조한다는 점이 이스라엘이 어떻게 폐쇄적인 공동체로 변질되었는가를 생각하고 비교할 때 아이러니하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일텐데, 주님의 복음이 가져오는 놀랍도록 포괄적이고 확대된 공동체여야 할 교회가 얼마나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가는가에 대해서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동체의 순수성에서는 타협없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되, 확장성에서는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환대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결국 공동체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 공동체의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을 끌어안으시며 그들을 구원하신다. 누구라도 죄를 고백하며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면 공동체 안에서 변화와 성숙을 경험할 것을 ‘두려움 없이’ 고백해야 한다. 반대로 포괄적 환대의 공동체이지만, 그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죄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약속의 땅에서 가능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두가지가 가능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의 다스리심 아래 이 일들이 가능하기를 간절히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