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QT] 혼란한 도시 속에서 / 사도행전 19:21–41
21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나는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래서 자기를 돕는 사람들 가운데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러 있었다.
바울은 에베소의 사역을 정리하려고 한다. 이제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갖는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루살렘으로 가면 곧 체포될 것이다. 우리는 이후에 바울의 언급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결정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사역의 열매들이 맺히고 있는 중이지만 바울에게는 ‘자신의 업적’이 아니다. 이 일을 주관하시고 명령하시는 분에게 철저히 복종할 뿐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다른 본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연보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바울의 인식속에 이방인교회와 유대인교회가 하나의 식탁을 준비해줌으로써 예수님의 식탁을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바울은 ‘로마’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세상의 중심과 같은 곳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주’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의 ‘주’가 통치를 시작하셨음을 선언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세상의 중심임과 동시에 ‘땅 끝’에서 선언하는 참된 복음이 될 것이다.
바울이 왜 얼마동안 더 아이사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지연된 시간과 오늘의 가장 큰 사건이 맞물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23 그 무렵에 주님의 ‘도’ 때문에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
24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은장이가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모형 신전들을 만들어서,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를 시켜주었다.
25 그가 직공들과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사업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26 그런데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바울이라는 이 사람이 에베소에서뿐만 아니라, 거의 온 아시아에 걸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을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27 그러니 우리의 이 사업이 명성을 잃을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배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주님의 ‘도’, 곧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두가지의 반응을 일으켜왔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이 제공하는 놀라운 생명의 은혜에 들어오든지, 훼방하고 분노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박해하는 편에 서든지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 본문에서 도시의 경제구조 한 축이었을 은 오만의 가치를 가진 마술도서가 불에 타버렸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영적으로는 회심이지만 도시 경제구조상으로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훼방하고 분노하며 복음을 박해하는 자들이 발흥하게 되는 것은 복음에 대한 이중적 반응에 따라 자연스러워보이기까지 한다.
데메드리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형 신전들을 만들어서 직공들이 먹고살게 만들어주는 한마디로 길드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건을 일으키는 이유는 개인적인 반감도 있지만 길드장으로써의 책임을 가지고 반응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볼 수 있다. 그래서 길드장인 데메드리오는 관련된 사람들을 모아놓고서 연설을 하기 시작한다. 데메드리오의 연설에 따르면 이들의 산업이 얼마나 ‘호황’이었는가를 먼저 언급한다. 에베소는 실재로 아르테미스여신 신전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렸고, 데메드리오같은 직종의 산업은 자연스럽게 풍성한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호황’을 막아선 것이 바울의 복음이다. 왜냐하면 아르테미스는 참된 신이 될 수 없고 참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그 참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게 만드셨다고 하니, 수많은 다른 신들중의 한 신일 뿐인 아르테미스는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데메드리오가 이렇게까지 반응하면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고,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에 처해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복음이 매우 실재적으로 사람들의 삶과 인식구조를 바꾸어놓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사도바울이 사역한 기간은 2년여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복음의 엄청난 영향력이 도시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음은 분명했다.
28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29 그래서 온 도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군중이 바울의 동행자들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한꺼번에 극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30 바울이 군중 속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그것을 말렸다.
31 바울에게 호감을 가진 아시아의 몇몇 고관들도 사람을 보내서, 바울에게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32 극장 안에서는, 더러는 이렇게 외치고, 더러는 저렇게 외치는 바람에, 모임은 혼란에 빠지고, 무엇 때문에 자기들이 모여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늘의 본문에서 강조되는 부분은 ‘혼란’스러움 이다. 그들은 일치된 목적을 가졌다. 그리고 하나된 말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도시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극장 안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들었는데, 누가는 ‘더러는 이렇게 외치고 더러는 저렇게 외치는 바람에 모임이 혼란에 빠지고 왜 모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하고 외치고 있음에도 결코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마치 바벨탑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졌지만 소통하지 못해 흩어져버린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어오면서 복음과 진리가 선포될 때 질서정연하고 모두가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 전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아무리 언어가 다르더라도 성령님께서 ‘방언’을 통해서 [복음]이 전하는 참된 자유의 소식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나 에베소의 극장 안으로 몰려들어온 사람들은 한 목소리는 냈지만, 결코 하나되지 못한 혼란만 가중시켰다.
군중들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한꺼번에 극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이 위험에 빠질것을 걱정한 바울은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서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다. 분명히 그곳은 위험으로 가득차있다.
33 유대 사람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내니, 군중 가운데서 몇 사람이 그를 다그쳤다. 알렉산더가 조용히 해 달라고 손짓을 하고서, 군중에게 변명하려고 하였다.
34 그러나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 사람인 것을 알고는, 모두 한 목소리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외쳤다.
35 드디어 시청 서기관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나서 말하였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우리의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과 하늘에서 내린 그 신상을 모신 신전 수호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36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여러분은 마땅히 진정하고, 절대로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유대 사람들은 알렉산더를 밀어내고 그를 통해서 군중에게 변명하라고 시킨다. 아마도 알렉산더는 유대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보인다. 그래야 교회와 유대교를 분리시키고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조용히 해 달라고 손짓을 하고 군중에게 변명하려고 하지만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사람’인것을 알고는 더욱 큰 목소리로 ‘에베소 사람의 아르테미스 여신은 위대하다’하고 두 시간을 더 외치기 시작한다. 한 순간에 알렉산더의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버렸다. 무리들은 유대인 공동체와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할 수 없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반대하는 것은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소요가 지속될것으로 보이자 시청 서기관이 무리를 진정시킨다. 시청 서기관은 시 행정부를 관활하는 최고위직이다. 한마디로 에베소 시민들과 로마 정부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는 에베소가 아르테미스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에베소의 탁월함을 칭찬하고서 ‘절대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소요가 계속되면 로마의 개입을 야기하게 된다. 로마의 개입은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심각한 경우 중앙의 통제는 도시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37 신전 물건을 도둑질한 사람도 아니요 우리 여신을 모독한 사람도 아닌 이 사람들을, 여러분은 여기에 끌고 왔습니다.
38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를 걸어서 송사할 일이 있으면, 재판정도 열려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당사자들이 서로 고소도 하고, 맞고소도 해야 할 것입니다.
39 여러분이 이 이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정식 집회에서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40 우리는 오늘 일어난 이 일 때문에, 소요죄로 문책을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아무런 명분이 없습니다.”
41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모임을 해산시켰다.
시청 서기관의 주장은 정당한 형사법에 의한 소송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길드장인 데메드리오가 얼마든지 문제될만한 것들에 대해서 고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당한 방법을 제외하고 그 이상으로 자치권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 일 때문에 소요죄로 직접적인 황제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핵심을 찌른다. 실재로 시지커스라는 도시에서 소요가 일어났는데 일부 로마 시민이 죽자 그 도시의 자치권이 박탈되어버렸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다. 분명히 그들의 흥분된 상태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도시의 운명’이 심각해질 수 잇었다.
결국 명분이 부족했던 소요는 해산되어버렸다. 그들은 일치된 의견과 하나된 말로 움직였고 시끄럽게 떠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그들의 무능함만을 확인한채 소요는 끝났다.
우리는 오늘의 이야기 속에서 이방인들의 일치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것 같고, 엄청난 힘과 괴력을 보여줄것 같아 보였는데도 결코 하나로 도출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아함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세속적 일치가 가진 한계다. 세속적 일치는 결코 우리 주님께서 만들어내시는 영원한 하나됨을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다. 교회는 말씀을 깊이 읽고 연구했고, 뜨거운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놀라운 선교적 열매들을 경험한 차였다. 바울은 이방인 교회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일치를 위해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하나되려는 과정을 막아서는 세속적 거부도 어떤 힘도 보여주지 못한채 사라지는 것을 볼 때, 바로 이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우리 주님이 베푸신 능력의 보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혼돈과 공허 조차도 다스리시고 제어하시는 우리 주님을 신뢰하자. 그 안에서 참된 보호와 위로와 심지어 ‘부흥’을 만나게 하실 줄 믿는다. 마틴로이드 존스의 지적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우리의 생각과 전혀 상관없는, 특별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부흥을 주실 것이다. 에베소교회가 그렇게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부흥하고 성장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시대의 압박과 소리지르며 반대하는 시대정신들 속에서도 특별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제공하시는 그 놀라운 부흥을 경험케 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