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래서 나는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절을 보내어 좋은 말로 요청하였습니다.
27 ‘임금님의 땅을 지나가게 하여 주십시오.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벗어나지 아니하고, 길로만 따라 가겠습니다.
28 우리가 먹을 것이 필요하면, 임금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만을 먹고, 마실 것이 필요하면, 임금님께서 돈을 받고 파는 것만을 마시겠습니다. 다만, 걸어서 지나가게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29 세일 지역에 사는 에서의 자손과 아르 지역에 사는 모압 사람이 우리를 지나가게 하여 주었으니, 우리가 요단 강 건너, 우리의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도록, 우리를 지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제의 본문을 참고해보면, 하나님은 이미 헤스본 왕 시혼과 그의 땅을 넘겨주셨고 싸워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절을 보내고 이전의 나라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조약을 맺으려고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모세가 새로운 2세대에게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청자를 대상으로 약간의 각색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적이 있는 각색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이미 2세대들은 시혼과 옥의 정복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승리였는지를 알고 있다. 따라서 그 정벌 기사 전에 이미 하나님의 승리 암시가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있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다.
신명기는 앞선 에돔, 모압, 암몬에 대해서는 꽤나 긍정적인 통과를 이야기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명기가 세 나라의 긍정성을 강조한 것은 앞으로 두 나라의 부정성이 ‘하나님에 대한 반대’를 보여주고, 그에 따른 심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강력한 정복은 일종의 ‘불순종의 결과’처럼 보인다.
30 그러나 헤스본 왕 시혼은 우리를 그 땅으로 지나가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오늘처럼 그를 당신들의 손에 넘겨 주시려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시고 성질을 거세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내가 시혼과 그의 땅을 너에게 주었으니, 너는 이제부터 그 땅을 점령하여 유산으로 삼아라’ 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시고 성질을 거세게 하셨다는 표현은 ‘바로’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되던 것이다. 시혼도 바로와 마찬가지로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심판을 당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손에 넘겨주시려고 ‘라는 표현은 정복의 대상이 된 헤스본 땅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으로 이해되게 만든다.
32 시혼이 그의 군대를 이끌고 우리와 싸우려고 야하스로 나왔습니다.
33 그러나 주 우리 하나님이 그를 우리 손에 넘겨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온 군대를 쳐부술 수가 있었습니다.
34 그 때에 우리는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모든 성읍에서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습니다.
35 오직 가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물건만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남자,여자,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제노사이드는 결코 용납될 수도, 용납해서도 안되는 범죄로 인식한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은 매우 낯설고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에서 ‘헤렘’이라는 것은 [약탈]을 배제한 종교 전쟁으로써 수준높은 징벌 행위였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심판의 대리자 역할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헤렘을 왜 허용하셨는가 라는 질문은 결국 십자가 앞에서 자기 아들을 왜 ‘헤렘’ 하셔야만 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질문이 아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진멸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진 헤스본과 시혼왕에게 강력한 징벌이 임했다는 이야기로 이해하는데 만족하자.
36 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아르논 골짜기 끝에 있는 아로엘의 모든 성읍과 아르논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을 포함하여, 저 멀리 길르앗에 이르기까지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대에서 우리가 빼앗지 못한 성읍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암몬 자손의 땅과 얍복 강 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또 우리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 말라고 하신 곳은, 어느 곳에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아르논 골짜기의 성읍들을 포함해서 길르앗에 이르는 땅들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주의깊게 살펴보게 되는 것은 ‘주 우리 하나님이… 차지하게 하셨다’ 라는 것이다. 또 37절에서는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 말라고 하신 곳’ 이라고 표현되는 땅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땅과 금지하신 땅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허락하신 땅을 차지하는 이스라엘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대에게 주는 선명한 메시지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이 있다. 그 땅의 주인들이 아무리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거부하려고 해도,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심, 그 전투에 능하신 전사이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그 땅이 정복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따라서 허락된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는 허락된 것들에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를 극명하게 본다.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의 심판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하게 치러졌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 십자가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약속된 것과 허락된 삶을 누릴 자격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순종’ 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오늘 그 순종의 삶을 다시 결단하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땅을 차지하게 하시길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하나님이 주신 땅과 금지하신 땅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2.
완악한 마음을 가진 것들도 결국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심으로 인해 정복될 것이다.
3.
허락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하며,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순종하여 허락하신 땅을 차지하고 약속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