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하는 모든 명령을, 당신들은 지켜야 합니다.
2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이 오거든,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십시오.
3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면, 이 모든 율법의 말씀을 그 돌들 위에 기록하십시오.
4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대로,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르십시오.
큰 돌들을 세우고 거기 기록을 남기는 일은 고대 근동에서 중요한 공문서를 보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이 돌들에 석회를 바르고 기록하는 것은 이집트 방식이라고 알려져있다. 여기 규정된 의식들은 마침내 약속이 성취될 때, 그동안 고대하고 기다리던 모든 예언이 현실이 될 때, 약속된 장소에서 이뤄지게 된다. 사실 ‘돌’ 그 자체 보다는 그 땅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거대한 상징물일 것이다. 세워지는 돌들은 그것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드는 표식이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은 ‘저주’에 관련된 내용이 길게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에발’산만 등장하지만 11장에서 이미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언하라고 명령되어있었다.
5 또 거기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만들되,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제단을 만드십시오.
6 당신들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번제물을 올려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십시오.
8 당신들은 이 돌들 위에 이 모든 율법의 말씀을 분명하게 기록하십시오.”
쇠 연장으로 제단을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제단은 돌로 제단을 만드는 가나안 제단과 구별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번제’와 ‘화목제’가 드려진다.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수직적 의미를 반영할 수 있고, 화목제는 예배자들이 서로 나누어 먹는 수평적 의미가 반영될 수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진 율법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증거와 증표로 새겨져야했고, 번제와 화목제는 이것을 예배로 승화시킴으로써 모든 허락된 것들이 하나님과 함께 공유되고 공동체와 공유되며 신실하게 지켜져야 됨을 확인하는 언약체결 현장이 될 것이다.
9 모세와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오늘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10 그러므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순종하고, 오늘 우리가 당신들에게 명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십시오.”
11 그 때에 모세가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12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넌 뒤에, 백성에게 축복을 선포하려고 그리심 산에 설 지파들은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 지파입니다.
13 그리고 저주를 선포하려고 에발 산에 설 지파들은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 지파입니다.
그리심과 에발 산에 선 양 지파들 사이에서 선언되었을 저주와 축복과 ‘아멘’의 화답은 예전의 성격이 강하고 계속 반복적으로 행해진 의식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인식에 매우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축복과 저주를 듣고 아멘으로 화답함으로써 그 모든 일들이 자신들에게 신실하게 일어날 것을 고백하게 된다. 이로써 순종과 불순종 사이의 골짜기에서 그들은 명확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던져진 저주의 목록들은 공적인 것, 십계명에 포함된 것들과 사적인 것들 모두가 포함될 것이다.
14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큰소리로 온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십시오.
15 ‘대장장이를 시켜서, 주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우상을 새기거나 부어 만들어서, 그것을 은밀한 곳에 숨겨 놓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고 응답하십시오.
16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17 ‘이웃의 땅 경계석을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18 ‘눈이 먼 사람에게 길을 잘못 인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19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의 재판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20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은 그 아버지의 침상을 모독하는 것이니, 그런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21 ‘짐승과 교접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22 ‘자매, 곧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24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25 ‘뇌물을 받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26 ‘이 율법 가운데 하나라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저주의 내용들은 이미 주어졌던 십계명과 세부 율법들을 재확인하는 절차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저주의 목적은 그것을 아무리 은밀하게 숨겨서 공적인 재판 법정에 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신다는 선언일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보든 보이지 않든, 모든 행동과 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인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종교적, 윤리적 가치관이 구성되며 이 모든 율법의 핵심에 하나님께 충성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지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올바르게 높임을 받으실 대 사회는 정의롭고 따뜻해지는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율법’은 오로지 하나님을 선택하라는 부름으로 갈무리 되며 그것이 예배와 삶 전반에 하나님 앞에선 자세로 살아가도록 요구한다. 개혁가들의 준칙처럼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삶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책임져주심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 저주의 목록들을 답습할 때, 아무리 은밀히 행하더라도 하나님의 시선 속에서 피할 길은 없으며 ‘저주’를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하나님만 선택하는 삶 살기를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