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그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14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논증과 증거가 탁월했다. 그들이 내세우려고 했던 것은 그들의 무식과 논리적 약점을 파고 들려고 했을 것이고, 갈릴리 시골 출신이 그리 대단한 학식을 가졌을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베드로와 요한이 정말 아무 배운 것 없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배’를 소유하고 상당한 재력과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당시의 교육 여건에서 충분히 그리스어 교육을 받은 인물들로 예상이 된다. 그들이 다루고 있는 성경의 본문은 70인역으로 보이는데, 그리스어로 된 성경이다. 물론 성경 기록자가 그리스어로 능통해서 베드로나 요한의 글을 받아 적는 과정에서 2차 창작을 했으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비평은 받아들일수가 없다. 지적하고 싶은 점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식한 인물들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리스어 성경뿐 아니라 그리스 철학, 중간기 문헌 등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있었다고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베드로전후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지식 있었음과 별개로 그들이 고친 증인, 병고침 받은 사람이 곁에 서 있는 것은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
15 그래서 그들은 그 두 사람에게 명령하여 의회에서 나가게 한 뒤에, 서로 의논하면서 말하였다.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들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고, 우리도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7 다만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앞으로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합시다.”
18 그런 다음에, 그들은 그 두 사람을 불러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은 미봉책의 결론을 내린다. 이미 퍼져버린 소문과 살아있는 증인이 너무나 생생한 간증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소문을 막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만약 소설과 서스펜스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다시 걷게 된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 그 일을 벌일만한 사람이 너무나 뻔해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뒷처리를 감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도록 명령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을 삭제하고 지워버리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기적의 주체, 유일한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밖에 없다.
19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백성이 모두 그 일어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므로, 그들은 사도들을 처벌할 방도가 없어서, 다시 위협만 하고서 놓아 보냈다.
22 이 기적으로 병이 나은 이는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핵심을 찌른다. ‘하나님 말씀’이 우선인가, ‘당신들의 말’, 곧 전통이 우선인가. 대제사장 가문과 산헤드린의 명령들이 정말 하나님의 일과 기적과 복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된 완성된 율법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혜택이 임했다고 선언한것에 따라 기적이 일어난 것이 이 말의 옳음을 더욱 입증해주는 것 아닌가?
핵심을 찌르는 말에 그들은 더이상 말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들의 사악함 앞에서 예수께서 침묵하셨었지만, 그분의 참되신 통치 앞에서 그들의 무능함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악함이 적나라하게 적발된다.
23 베드로와 요한은 풀려나는 길로 동료들에게로 가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한 말을 낱낱이 일렀다.
24 동료들은 이 말을 듣고서, 다같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아뢰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주님,
25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우리의 조상 다윗의 입을 빌어서, 성령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민족이 날뛰며, 뭇 백성이 헛된 일을 꾀하였는가?
26 세상 임금들이 들고일어나고,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과 그의 메시아에게 대적하였다.’
27 사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이 성에 모여서, 주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여,
28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하여 두신 일들을 모두 행하였습니다.
교회는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함께 공유한다. 그리고 함께 ‘기도’ 한다. 우리가 앞서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기도’ 속에는 ‘말씀’이 들어 있으며, 그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성령께서 일하시기 시작할 때 그들을 막을 수 잇는 것은 없었다.
교회는 함께 ‘창조하시며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찾는다. 그분의 다스리심은 세상 만민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적하는 형국을 보이더라도 결코 실패하심 없이 그분의 영광을 보이실 것이다. 시편 2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상 임금들과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 대적하는 모습을 ‘헤롯과 빌라도가 한패가 되었다’ 라는 사실과 연결하는 것을 보게 된다. 누가복음 23장 12절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할 때 서로 친구가 되었다. 하나님을 반역하려고 하는데는 인간들은 한데 힘을 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동맹을 맺는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려고 하는 시도는 결국 ‘하나님의 권능과 뜻’ 안에서 합력하여 미리 정하여 두신 일들이 성취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었다.
29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을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30 그리고 주님께서 능력의 손을 뻗치시어 병을 낫게 해주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해주십시오.”
31 그들이 기도를 마치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
이제 교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세상 모든 나라들이 위협하며 복음에 반대하여 박해할지라도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의 선포가 사실임이 입증되도록 병든 자들이 낫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표징과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자 그들이 모인 곳이 흔들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짐을 경험하게 된다. 지진과 진동은 하나님의 임재의 자연적 현상으로 시내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박해 가운데 있는 교회의 간절한 기도 속에도 등장한다. 우리는 이 진동을 성령운동가들이 말하는 흔들림 정도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진동과 충만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실재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계신다는 ‘성경적 답변’이라고 보아야 옳다. 구약의 사건들은 신약에서 계속해서 재확인되고 반향됨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구체적으로 증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선언하는 제자들의 모습속에서 말씀을 간직하고 이해하는 깊이와 실력, 그것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용기,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자신들을 놓는 겸손함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했으며, 반복적으로 말씀의 성취가 경험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들의 간절함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쉼없이 경험될 것이다. 40년 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이 걷게 된 이야기는 ‘말’이 아니라 ‘증명’된 이야기였다. 우리도 이 말씀과 기도 속에서 ‘증명’된 이야기, 우리의 간증이 쉴새없이 터져나오길 소망한다. 그 증명된 이야기가 우리의 고백을 더욱 의심없이 받아들이도록 할 것이며 강력한 힘을 가진 이야기로 선언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삶의 이야기 속에 이 강력한 말씀의 능력이 온전히 경험되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