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QT] 거짓과 기만의 예언자들 / 예레미야 30:1–1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2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책에 기록하여라.
3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반드시 그 때가 올 터이니, 그 때가 되면, 내가 포로로 잡혀 간 나의 백성을 다시 이스라엘과 유다로 데려오겠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준 땅으로 그들을 돌아오게 하여,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
하나님은 ‘그때’를 준비하고 계신다. 그때가 오게 되면 포로로 잡혀간 ‘나의 백성’이 이스라엘과 유다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돌아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라’고 호소하셨던 것을 기억해보면,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는 ‘그때’를 고대하고 바라며 기다리는 것은 매우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돌아옴’을 일으키는 ‘주체’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된다. 이스라엘이 돌아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셔서, 그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신다’. 모든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 이미 부패해버린 이스라엘은 사실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일 수 있다. 그들은 회개할 생각도 하지 못할 수 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그들을 ‘돌아오게’ 만드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기꺼이 그들 속으로 가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때’를 간절히 기다릴 수 밖에 없다.
4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두고 일러주신 말씀이다.
5 “나 주가 말한다. 무서워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온다. 평화는 없고, 폭력뿐이다.
6 너희는 남자도 해산을 하는지 물어 보아라. 어찌하여 남자들이 모조리 해산하는 여인처럼 배를 손으로 움켜 잡고 있으며, 모두 얼굴빛이 창백하게 변하였느냐?
7 슬프다, 그 날이여!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날이다. 야곱이 당하는 환난의 때이다. 그러나 야곱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되는 ‘그 때’는 매우 두렵고 무서운 고통의 시간으로 그려진다. 무서워 울부짖는 무자비한 폭력이 행사되는데, 그 고통이 마치 남자조차 ‘해산하는 고통’처럼 당하게 되리라고 경고된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날, 환난의 때이다. 그런데, 바로 그 환난의 때에 야곱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구원의 구조가 쉽고 빠르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된 구원 이전에 항상 고난의 때가 선행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난 후에 회복과 소망의 때가 온다. 우리는 계시록을 역사적 사건의 흐름으로 이해할 때 우주의 마지막 때 조차도 고통과 아픔 후에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읽지 않더라도 죽음이라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지나가야’ 부활이 경험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외면할때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된다.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때, 약속의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게 되는 때는 반드시 그 고통스러운 순간과 과정들이 지나가야한다.
8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그 날이 오면, 내가 그의 목에서 멍에를 꺾고, 그의 사슬을 끊어서, 이방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종으로 부리지 못하게 하겠다.
9 그러면 그들이 나 주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내가 그들에게 일으켜 줄 다윗의 자손을 자기들의 왕으로 섬길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때’, ‘그 날’은 결코 비참한 고통과 아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예비하신 참된 자유와 만족의 시간이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멍에가 꺾이고 사슬이 끊기며 종에서 자유한 자가 될 것이다. 또한 적법한 왕이 다시 등장하게 될텐데, 그 날이 왔을 때 이스라엘은 그 적법한 왕을 섬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전의 본문에서 여호야긴이 포로로 사로잡혀갔고, 그곳에서 신원이 회복되어 왕의 상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렇게 신원이 회복된 ‘포로가 된 왕’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그를 통하여 적법한 왕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0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아, 너는 무서워하지 말아라.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여 데려오고, 포로로 잡혀 있는 땅에서 너의 자손을 구원할 것이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평안하고 안정되게 살 것이며,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살 것이다.
11 내가 너에게로 가서 너를 구원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를 쫓아 여러 나라로 흩어 버렸지만, 이제는 내가 그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겠다. 그러나 너만은 멸망시키지 않고, 법에 따라서 징계하겠다. 나는 절대로 네가 벌을 면하게 하지는 않겠다.
사법적 관계에서 이스라엘은 심판, 그 엄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한 대가까지 일거에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께서 ‘죄’를 묵과하실 수는 없다. 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한다. 하지만 그 벌이 무한한 크기로 확장되지 않는다. 그들이 당해도 쌀만한 하나님에 대한 반대와 반역들에 대해서 마땅한 심판을 내리신 후에는 기꺼이 약속된 땅으로 돌아오게 만드실 것이다. 주변의 국가들이 망하고 사라져가는 멸망의 도선에 있어도 이스라엘 만큼은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 ‘적법한 왕’께서 당하신 끔찍한 고통과 신원되심의 이야기를 예수님을 통해 떠올려볼 수 있다. 우리 주님은 해산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으로 슬픔의 날을 맞으실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고통당하신 바로 그 날은 끔찍한 아픔과 재앙의 날이었다. 해가 어두워지고 빛이 그 영향력을 잃어버린 날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십자가의 날이 부활의 조건이었다. ‘죽어야’ ‘다시 살아남’을 증명할 수 있다. 완전히 부패한 이스라엘이 돌아올 수 있는 이유는 그들 속으로 하나님께서 가셨기 때문인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부패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속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그 구원의 일을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오셔서 참된 소망과 위로를 전해주시기 위해 기꺼이 고통과 아픔을 당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바로 그 십자가가 우리의 소망됨을 이해하며 우리의 참된 기쁨의 ‘그날’을 제공해주실 주님께 기도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