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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원수의 목전에 베풀어진 잔치 / 열왕기하 6:15-23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5 하나님의 사람의 시종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강한 군대가 말과 병거로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시종이 엘리사에게 와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 걱정하였다. “큰일이 났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16 엘리사가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우리의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17 그렇게 말한 다음에 엘리사는 기도를 드렸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가 바라보니, 온 언덕에는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루 에워싸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의 시종은 엘리사에게 시리아의 군대가 도단을 에워싸고 있다고 보고한다. 우리는 어제의 본문에서 엘리사가 엘리야 같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불마차와 불말이 승천의 상징과 같이 등장했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엘리사는 시종의 눈이 열려 그 불마차와 불말이 이제는 엘리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2장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 곧 장자의 특권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불이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그 통치를 거둬가신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불 말과 불 수레는 ‘엘리사’의 권능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군대를 운용하시는 참된 주인이시다.
18 시리아 군대들이 산에서 엘리사에게로 내려올 때에, 엘리사가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 이 백성을 쳐서, 눈을 멀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을 쳐서 눈을 멀게 하셨다.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길은 당신들이 가려는 길이 아니며, 이 성읍도 당신들이 찾는 성읍이 아니니, 나를 따라오시오. 내가, 당신들이 찾는 그 사람에게로 데려다 주겠소.” 이렇게 하여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로 데리고 갔다.
20 그들이 사마리아에 들어서자, 엘리사가 “주님, 이들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사마리아 한가운데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눈이 멀고 다시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읽게 된다. 이것은 앞서서 시종이 경험했던 것과 동일하다. 시종은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이제 시리아 군대는 눈이 먼 상태에서 사마리아로가 눈을 뜨게 된다. 그들은 완전히 무방비해진 상태에서 적진 한 가운데서 눈을 뜨게 되었다. 전략적으로는 완전히 포위된 독안에 든 쥐 꼴이 된 것이다.
이로써 누가 진짜 위기에 빠진 존재인지가 명확해진다. 눈을 뜨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실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눈을 뜨고 있지만 눈이 먼 상태다. 선지자를 통해 눈이 뜨여졌을 때, 진짜 위기에 빠진 존재가 누군지 깨닫게 된다.
21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아버지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그들이 눈을 뜨고 보게 되면, 쳐서 없애 버려도 됩니까?”
22 엘리사가 말하였다. “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칼과 활을 가지고 사로잡았습니까? 어찌 임금님께서 그들을 쳐죽이시겠습니까? 차라리 밥과 물을 대접하셔서, 그들이 먹고 마시게 한 다음에, 그들의 상전에게 돌려보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23 그리하여 왕이 큰 잔치를 베풀어서 그들에게 먹고 마시게 한 다음에 그들을 보내니, 그들이 자기들의 상전에게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시리아의 무리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땅을 침략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를 향해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시리아 군대를 쳐서 없애버려도 되느냐고 질문한다. 이런 조언을 구하는 것은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이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왕이 인식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 놓였다고 생각했다면 엘리사에게 굳이 묻지 않고 섬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엘리사’ 때문이다. 따라서 ‘엘리사’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엘리사는 이 군대를 살려보내야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칼과 활이 없는 상태이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보다는 친절하게 대하는 편이 외교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 효과로 무리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략하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칼과 활’로 이뤄진, 폭력과 살상으로 얼룩진 것이 아니라 풍요로움과 잔치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살펴봤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시거나 무력적 힘이 없으셔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가 이뤄지는 것이 이 기쁨과 만족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에서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할 때,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한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질서가 추구하는 ‘방향’의 문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질서와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