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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변화의 길 / 사도행전 9:1–19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 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증인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다. 그럼에도 사울은 만족하지 않고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며 죽이기에 앞장서고있다.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다마스쿠스 유대인 공동체 전체에 대한 권한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표현은 ‘도’ 라는 표현이다. 누가에 따르면 기독교는 말 그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있는 자들이다. 이후에 구원의 도, 하나님의 도로 그 개념이 확장될 것이다.
사울은 바로 그 하나님의 길, 구원의 길을 걷는 자들을 잡으려고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 박해의 길에서 예수님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울은 박해의 ‘길’을 간다. 그런데 그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길’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왜 핍박하느냐’고 질문하신다. 여기에서 ‘주님, 누구십니까’ 질문하는 사울의 이야기를 생각해볼 때 사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평범한 여행자로 나타나신게 아님은 분명하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분으로 특별한 계시로 바울에게 나타나신다. 그러나 이 만남은 분명하고 실재적인 직면이었으며 사울은 실재하신 예수님이라고 분명히 인식했다.
우리는 이 장면이 모든 만남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는 없다. 사도행전에서 두 번 더 약간의 차이를 보이며 22장과 26장에서 설명될 것이고 예수님을 확실히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디모데전서에서 확인된다. 어떤 만남이 이루어졌는지 다 알 수 없을지라도 어찌되었든 예수님과의 만남이 사울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완전히 돌릴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님은 다마스커스 성으로 들어가면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사울은 성 안으로 들어간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9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이 만남은 분명 바울에게만 확실하게 경험된 것이었다. 그 동료들은 이 경험을 공유할 수 없었다. 우리는 22장의 표현을 참고해볼 때 그들이 범상치 않은 일이라는 사실은 인지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고, 음성을 듣긴 들었지만 제대로 들어 이해한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했기에 멍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울은 예수님을 직접적인 계시로 보고 들었다. 그러나 강렬한 빛을 본 후에 눈이 멀어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삼일간의 금식 상태는 깊은 기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전의 자신의 행위들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고 뉘우쳤을 것이다.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 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주님은 사울만 준비시키신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만나신다. 아나니아는 곧게 뻗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듣는다. 아마도 도시에서 곧게 뻗은 길은 가장 번화한 거리를 가리킬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에 집이있는 유다는 매우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기독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울이 유다의 집에 있다는 사실은 사울의 회심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매우 긴급한 상황이라고 느낄만한 일이다. 다마스쿠스에서 가장 유력한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인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상 중에서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유다의 집에서 사울을 만나라고 하시며 사울에게는 아나니아가 시력을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환상을 보여주셨다는 이야기를 든는다. 서로에게 나타나셔서 한 가지의 일을 일어날수밖에 없도록 주장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분명히 아나니아는 사울이 다마스쿠스에 온 목적과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말은 다마스쿠스의 형제자매들이 사울의 악명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비한 각오 내지는 말들이 오고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사울은 이방 사람, 임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사울이 바로 이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예고받는다. 사울은 ‘내 이름을 위하여’ 즉 예수님을 위한 대사가 되어 길을 떠나게 될 것이며 자신이 박해하던것과는 정반대로 자신이 박해 받는 길에 서게 될 것이다.
17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아나니아는 ‘곧바로’ 움직인다. 곧장 그 집으로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는다. 우리는 앞서 ‘안수’가 성령님의 임재와 연결되어 있는 축복의 행위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나니아의 이 행위는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매우 충격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울은 교회의 박해자로 널리 알려져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환상을 통해 본 것에 따라 안수하고 ‘형제 사울’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사울은 매우 극적이고 긴급하게 공동체 안에 용납되어 들어오게 되었다. 이 용서와 화해의 장면에서 사울은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게 된다.
사울은 박해의 길에서 예수님의 길을 보았고, 복음 전도자의 길에 서게 되었다. 아나니아는 의심과 두려움에도 곧은 길을 따라 순종의 길을 통해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걸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이 참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명령에 순종하여 각각 복음을 전하는 일을 완수했고 완수하리라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할 때 우리는 단 하나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며, 은혜와 능력의 길이요,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인 구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우리의 길을 구원의 길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