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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나님 앞에 인간의 보잘것 없음 / 욥 9:1-1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욥이 대답하였다.
2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
3 사람이 하나님과 논쟁을 한다고 해도, 그분의 천 마디 말씀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욥은 빌닷의 말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펴봤던 것처럼 엘리바스나 빌닷의 말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진실이 모든 경우에 진리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나눴다. 욥은 그부분에 대해서 알고 인정한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아무리 의로움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에 다다를 수는 없다. 하나님과의 논쟁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대답할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 다만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판정에 순복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을 향해 항변한다. 하나님이 과연 정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주실 것인가? 자신의 의로움조차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데, 하나님은 자신의 고통의 이야기에 진정성있게 답변하실까? 욥의 토로는 자신이 당한 고통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받아들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듣고 아실까라는 것이다.
4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니, 그를 거역하고 온전할 사람이 있겠느냐?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을 옮기시며, 진노하셔서 산을 뒤집어엎기도 하신다.
6 지진을 일으키시어 땅을 그 밑뿌리에서 흔드시고, 땅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흔드신다.
고대 세계의 우주관을 생각해보면 산과 땅의 밑뿌리, 땅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로 표현된 것들, 해와 별과 바다 괴물 등의 표현등 은 ‘우주’ 를 상징화한다. 먼저는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제의 본문에서 빌닷이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으면 단단한 토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오늘 욥은 제아무리 단단한 토대 위에 집을 지어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아무 소요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토대를 놓으신 분이시고 유일하고 영원한 토대시다. 그러나 땅을 딛고 사는 자들은 아무리 단단한 토대 위에 서 있어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안전할 수 없다.
7 해에게 명령하시어 뜨지 못하게도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어 빛을 내지 못하게도 하신다.
8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받지도 않고 하늘을 펼치시며, 바다 괴물의 등을 짓밟으신다.
9 북두칠성과 삼성을 만드시고,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시며,
10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하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이제 하늘과 바다, 해와 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욥기의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비밀을 욥이 다 알 수 있느냐고 질문하시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욥은 우주의 진실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다만, 그 모든 운행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진실을 고백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앞에서 진리논쟁은 의미가 없다. 유한하고 한계있는 인간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란 없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고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우주의 신비와 운영과 질서는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욥의 질문은 점점 하나의 방향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 우주의 통치자께서는 과연 ‘고통’은 관리하고 계시는가?
11 하나님이 내 곁을 지나가신다 해도 볼 수 없으며, 내 앞에서 걸으신다 해도 알 수 없다.
12 그가 가져 가신다면 누가 도로 찾을 수 있으며, 누가 감히 그에게 왜 그러시느냐고 할 수 있겠느냐?
13 하나님이 진노를 풀지 아니하시면 라합을 돕는 무리도 무릎을 꿇는데,
14 내가 어찌 감히 그분에게 한 마디라도 대답할 수 있겠으며, 내가 무슨 말로 말대꾸를 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욥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고 했던 말들,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냐는 말들이 진실한 고백이었음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하나님의 신비하신 운행과 일하심은 인간의 한계로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심지어 곁을 지나가신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분께 옳고 그름과 이유를 따져묻는다고 해봐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전무하다.
심지어 우주적 운영에서 ‘라합’과 ‘라합을 돕는 무리 조차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고 표현한다. 라합은 신화적 바다 괴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의 라합은 리워야단과 비슷한 악한 괴물, 악한 영적 존재 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라합을 돕는 무리 또한 리워야단을 돕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기 때문에 동일한 악한 세력의 동조자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악의 세력도 분명히 제어하시고 관리하시는게 맞다고 인정할 수 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우주 전체를 만드신 분이시므로, 우주 전체를 뒤집어 엎으실 능력도 있으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관리 아래 있다. 그런 우주의 창조자 앞에서 한낱 인간은 얼마나 무익하고 쓸모없는 존재인가? 욥은 자신이 그렇게 아무런 힘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과 위대함과 비교한다. 따라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원망하는 내용이 자신의 완벽한 무죄함을 피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허무할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그토록 주목해서 살펴보시는지, 그렇다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는지에 대해서 인정해주시길 바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선대하시는 것이든, 고통을 주시는 것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욥은 하나님과의 완벽한 단절이 더욱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중이다. 욥의 이런 관점은 점점 더 발전된 형태로 만들어져갈 것이다.
우리는 내일의 본문에서 이 모든 고통에 대해서 대신 호소해줄 중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욥의 절규를 읽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절규가 복음 앞에 서게 만드는 것임을 안다. 부인할 수 없는 우주의 창조자, 온 세계 만물과 열방을 다스리시는 분의 통치 앞에서 인간은 아무 항변할 수 없는 무익한 존재일 뿐이다.
수십년 전에 우주에서 찍은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점’을 보면서 인간이 우주 속에서 먼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적 자아는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높아진 자아는 결코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더 깊이 인식하지 않는다. 낮아진 자아만이 초월자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 초월자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인식할 때 그분의 다스리심이 정말 신실하신가 질문한다.
우리는 복음이야말로 이 질문에 아주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을 안다. 이 보잘것 없는 존재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하나님이 고통을 어떻게 다루시며 이기시며 정복하셨는지, 새로운 대안을 만드셨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다시금 이 복음 앞에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자.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고 통치하신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불평불만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 주어진 삶을 붙들고 씨름할 뿐이다. 그러나 명확하고 확고부동한 진실은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는 마침내 영광스럽고 영원한 부활을 제공하시며 영원한 다스림으로 초대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고통을 관리하고 계신다고 확신하며 욥보다 더 나은 고백할 수 있다. 오늘 그 믿음 가지고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우주의 창조자, 관리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보잘것 없는 존재다.
2.
하나님은 온 우주를 언제나 신실하게 관리하시며 악 조차도 제어하고 계신다.
3.
욥은 아직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 주님의 중보하심을 안다.
4.
그분의 신실하심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고통에찬 호소도 알고 듣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