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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나님의 선택 / 사도행전 13:13–3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3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러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서와 예언자의 글을 낭독한 뒤에,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이 사람들에게 권면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바울과 일행은 바보에서 밤빌리아의 버가로 건너가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린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후에 바울이 마가의 이 선택에 대해서 옳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몇가지 추측은 마가가 바울이 점점 선교의 주도권을 잡아간다는 사실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 바울이 몇번의 파선에 대한 설명이 바보에서 버가로 넘어가던 사이에 벌어졌기 때문에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선교여행을 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 등이다. 각각의 설명에서 이점과 단점들이 명백하기 때문에 이유는 정확하게 특정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제 이 여행의 주도적인 역할은 분명 바울이 감당하게 될 것이고, 이방인들을 향한 사역이 점점 더 선명해지게 될 것이다. 이들은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는데 회당장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권면의 말을 전해달라고 청한다. 이것은 매우 일반적으로 같은 동족이 먼 여행길을 가다가 회당에 들어왔을 때 청했던 전통적인 반응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적인 유대교적 설명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기본적인 유대인들의 지식에 붙여 아주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한 이유이고 앞으로 바울과 바나바 사역에대해 강력한 반대의 기점이 된다.
16 그래서 바울은 일어나서, 손을 흔들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17 이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택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 백성을 높여 주시고,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18 광야에서는 사십 년 동안 그들에 대하여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멸하셔서, 그 땅을 그들에게 유업으로 주시고,
20 약 사백오십 년 동안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 뒤에 예언자 사무엘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사사들을 보내주시고,
21 그 뒤에 그들이 왕을 요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그들에게 왕으로 주셔서, 사십 년 동안 그를 왕으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22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물리치시고서,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바울의 발언이 시작된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동포’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특정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이방인을 말하는것이 분명하다. 이 회당 안에는 분명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있다. 이제 사도 바울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차이점은 더 선명해지게 될 것이다.
바울의 설교는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역사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조상들’을 선택하신다. 선택받은 백성은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을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신다. 광야 40년의 시간, 정복의 시간, 450년간의 사사시대까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을 신실하게 이끌어주셨음이 증명된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도 사울을 주셔서 사울을 섬기게 하셨다. 사울이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다윗을 선택하신다.
이 일반역사에서 강조되는 점은 ‘하나님의 선택’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을 선택하셨고, 광야 40년을 참기를 선택하셨고, 가나안 땅을 주기로 선택하셨고, 사사들을 선택하시고 왕을 선택하셨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반하기를 선택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늘 언제나 변함없이 유효하시다.
23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구주를 세워 이스라엘에게 보내셨으니, 그가 곧 예수입니다.
24 그가 오시기 전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이 자기의 달려갈 길을 거의 다 갔을 때에 말하기를 ‘여러분은 나를 누구로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는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였습니다.
26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다윗을 통해 구주를 세워 이스라엘에 보내시는 것이었다. 그분이 곧 예수님이시다. 이 설명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술렁였을 것이다. 만약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라면 한편으로 의심과 의문과 적대심 등 갖가지 반응들이 나왔으리라 예상이 된다. 일단 바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바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백성들에게 선포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예언된 미리 앞서 주님의 종의 길을 준비할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유대인들에게도 이해가능한 범주다. 요한은 자기가 달려갈 길을 거의 다 갔을 때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의 오실 분이야말로 말씀이 완성되는 메시아시다.
이 구원의 말씀이신 예수께서 바로 그 선택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선택은 이 말씀의 완성이신분으로 인해 구원을 성취하신다.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인 이방인들 모두에게 이 구원의 말씀은 제공되었다. 이 지점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없이 역사하시는 말씀의 탁월함을 보게된다.
27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자들의 말도 깨닫지 못해서, 그를 정죄함으로써, 예언자들의 말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
28 그들은 예수를 죽일 만한 아무런 까닭도 찾지 못하였지만, 빌라도에게 강요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29 이와 같이, 그를 가리켜 기록한 것을 다 행한 뒤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30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31 그래서 예수는 자기와 함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백성에게 예수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 유대인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고 정죄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선택을하고만다. 그러나 인간들의 선택조차도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 그분의 일하심의 거대한 선택의 일부였음이 드러났다. 바울은 이 모든 인간의 잘못된 선택들조차도 ‘그를 가리켜 기록한 것을 다 행한 뒤’ 라고 설명하면서 이미 예언되었던 일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이제 이 일에 대한 회개와 돌이킴이 선행될 때 얼마든지 이 구원의 복음으로 돌이킬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서도 돌이키려고 선택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그 저주의 책임이 인간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자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그분이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다고 인정하셨다. 그래서 율법이 제시한 영원한 생명의 약속, ‘구원’을 완성시키셨다. 예수님은 그 예시가 되셔서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 효력과 혜택이 돌아가게 만드셨다. 부활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심으로써 증인이 되도록 하셨다. 이제 인간의 선택이 남았다. 하나님의 선택이요 말씀의 완성이신 분을 선택할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그리고 이 선택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제시되었다.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이어지는 바울의 설교는 더 깊은 성경적 논증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한 사도행전 전반의 반응 즉, 환영과 거절이 동시에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 선택들 속에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키시고 완성시가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에 어떤 반응을 보이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만 회개하고 돌이켜 잘못된 선택을 행했던 인간사의 수많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의 연약함이 예수님을 선택하기보다 수많은 다른 인간적인 방법들을 선택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줄 믿는다. 그 안에서 말씀이신 분의 선택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 일들이 풍성히 경험되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