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들이 적군과 싸우려고 나가서, 당신들보다 많은 적군이 말과 병거를 타고 오는 것을 보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집트 땅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계십니다.
2 당신들이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제사장을 불러서, 군인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게 하여야 합니다.
3 제사장은 군인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하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어라. 오늘 너희가 너희의 대적과 싸우러 나갈 때에, 마음에 겁내지 말며, 무서워하지 말며, 당황하지 말며, 그들 앞에서 떨지 말아라.
4 주 너희의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서, 너희의 대적을 치시고, 너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다.’ ”
이스라엘이 전쟁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들의 능력으로 전쟁을 치르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모든 과정과 승리의 여부가 하나님께 달려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나가는 전쟁에서는 승리를 얻겠지만, 불순종과 탐욕으로 치러지는 전쟁에서 하나님은 주인이 되지 않으신다.
따라서 전쟁의 처음은 제사장이 앞서서 그들의 전쟁터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터, 그 주인이신 분이 함께 하시므로 무서워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며 떨지말라고 사실을 주지시킨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전쟁터에서 ‘승리’ 할 것이다.
5 “그 다음에, 장교들은 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십시오. ‘너희 가운데 집을 짓고 준공식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가 전사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준공식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6 또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아직 그 열매를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도 누구든지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가 전사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 열매를 맛보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7 또 너희 가운데 여자와 약혼하고 아직 결혼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가 전사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8 장교들은 군인들에게 또 이렇게 지시하십시오. ‘전쟁이 두려워서 겁이 나면, 누구든지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다른 형제의 사기만 떨어진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전쟁,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전쟁은 그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풍성히 누리기 위함이지 ‘전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집을 짓고, 포도원을 만들고, 결혼을 하는 일상의 일들이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차에 시작도 못해보고 전쟁을 위하여 끌려가는 일이 없게 하라고 명령된다. 이런 것들을 허용하면 어떻게 전쟁이 치러질 수 있을까 질문이 들지만, 이 전쟁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전쟁이라는 점, 땅을 차지할 때 비로소 그 모든 약속된 것을 풍성히 누리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상태’를 기대하고 고대하며 전쟁에 참여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명령은 군인들의 ‘휴가’의 차원에서의 배려일 수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한 내려놓음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전쟁이 끝나고 명령이 완성된 후의 땅은 하나님의 통치와 샬롬 안에서 집과 가족과 풍요로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용기있게 싸움터로 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집으로 돌아가는 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용기 있게 싸우는 자들보다 많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승리가 확정되어 있는 싸움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분명한 성과와 영광이 따라올것이다.
9 장교들이 군인들에게 이런 지시를 다 끝마치면, 군인들 위에 지휘자를 임명하십시오.
10 당신들이 어떤 성읍에 가까이 가서 공격할 때에는, 먼저 그 성읍에 평화를 청하십시오.
11 만일 그 성읍 백성이 평화 제의를 받아들이고, 당신들에게 성문을 열거든, 그 성 안에 있는 백성을 당신들의 노비로 삼고, 당신들을 섬기게 하십시오.
12 그들이 당신들의 평화 제의를 거부하고 싸우러 나오거든, 당신들은 그 성읍을 포위하고 공격하십시오.
13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 성읍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 주셨으니, 거기에 있는 남자는 모두 칼로 쳐서 죽이십시오.
14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과 그 밖에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가져도 됩니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대적에게서 빼앗은 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것이니, 당신들의 마음대로 먹고 쓸 수가 있습니다.
15 당신들의 주변 민족들의 성읍에 딸리지 아니한, 당신들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성읍들에도 이렇게 하여야 합니다.
성읍에 평화를 청하는 것은 약속의 땅 바깥에 있는, 요단강 동쪽의 지역들 또는 그 인근의 지역들이다. 그곳에는 먼저 ‘평화 조약’을 맺고 샬롬을 선언해야 했는데, 이것은 대상 성읍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거나 강제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가 되는 것을 말했다. 이 평화조약을 거부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성읍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기실 것이고, 그때는 그 성읍이 약속의 땅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진멸하는 전쟁이 실행되어야 했다. 전략적 차원에서는 평화조약을 맺길 거부하는 성읍을 내버려두었다가는 후방에서 공격해올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핵심은 그런 전략적 차원이라기 보다는 이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므로 대상 성읍들이 하나님의 통치 속에 들어올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에서 유보적이거나 중립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6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에 있는 성읍을 점령하였을 때에는, 숨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 두면 안 됩니다.
17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명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합니다.
18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는 온갖 역겨운 일을 당신들에게 가르쳐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할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이므로 모든 것들을 진멸해야 한다. 이 진멸의 이유에서 핵심적인 것은 ‘그들의 신을 섬기는 역겨운 일’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진멸 전쟁은 어떤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신적 전쟁’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고대 근동에서 이런 종교 전쟁은 일반적인 전쟁보다 더욱 상위의 명분을 가진 전쟁으로 인정되었다. 여기에서는 어떤 이익도 창출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익을 취하는 순간 신적 전쟁으로써의 명분이 사라지고 가치가 격하된다. 우리는 여호수아에서 첫번째 전쟁인 여리고에서 아간이 벌였던 범죄를 떠올릴 수 있다. 이스라엘은 시작부터 범죄에 휘말리고 만다. 그만큼 진멸 전쟁은 매우 큰 목적과 가치를 가진 전쟁으로 이해됐다.
19 당신들이 한 성읍을 점령하려고 둘러싸서 공격하는데 오랜 기간이 걸리더라도, 거기에 있는 과일나무를 도끼로 마구 찍어서는 안 됩니다. 과일은 따서 먹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나무를 찍어 버리지는 마십시오. 들에 있는 나무가 원수라도 된단 말입니까? 어찌 그 나무들을 포위하겠습니까?
20 다만, 먹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당신들이 알고 있으니, 그런 나무는 찍어도 좋습니다. 당신들은 그런 나무를 찍어서, 당신들과 싸우는 성읍을 점령할 때까지, 성읍을 포위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만들어서 쓰도록 하십시오.”
전략적으로 적진에서 보급품을 취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 동안 공성전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거기에 있는 과일나무를 없앨 필요는 없다. 또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서 필요한 장비를 만들어 쓸 수 있다.
여기에서 이전의 본문에서 평화 조약에 동참하는 성읍과 그렇지 않은 성읍에 다른 조치가 취해진다는 점을 연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실의 유무에 따라서 나무는 살든지 죽든지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 조약과 생명을 갖고 열매 맺는 나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전쟁의 주인과 이 전쟁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아주 선명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전쟁의 주인이시며 하나님께서 이 땅을 ‘허락’ 하신 일에 이스라엘은 ‘동참’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정복을 통해 열매 맺는 나무와 열매 맺지 않는 나무의 차이처럼 심판과 평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삶의 참된 주인이신 분께서 우리 인생의 전쟁의 주인이시며 허락하신 삶의 지경에서 풍요로움과 열매맺는 나무가 되길 원하신다. 그러나 그런 삶을 거절하며 바싹 메말라버린 나무가 되어버린다면, 그 나무는 찍혀 불살라지게 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맺을 수 없다. 오로지 내려주시는 은혜의 단비와 말씀의 빛 속에서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릴 때만 가능하다. 주권적인 은혜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은 승리와 합당한 누림의 풍요로움을 경험할 것이다. 우리 삶의 전쟁터를 주님께 온전히 올려드리며 열매맺는 삶과 승리의 영광 얻기를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