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 모이곤 하였다.
13 다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감히 그들의 모임에 끼여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
14 믿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주님께로 나아오니, 남녀 신도들이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가 지난 본문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한 마음이 됨’은 하나님을 사랑함, 신명기 6:4-5의 쉐마 이스라엘이 교회에서 새롭게 적용된 것이라고 지적해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재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 표징과 놀라운 일로 증명된다. 여기에서 ‘한 마음이 됨’을 주목해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그들의 모임에 끼엳들지 못함을 이해할 수 있다. 한 마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길 작정하는 마음으로 신명기의 명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으로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표징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며 함부로 그 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함으로 칭찬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더욱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 속에 성장한다.
15 심지어는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메고 나가서, 침상이나 깔자리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 그림자라도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랐다.
16 또 예루살렘 근방의 여러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병든자들이 낫는 모습이 매우 신비롭고 이례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이루실 때도 ‘손을 대시고’ 낫게 하시는 장면을 기억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제자들의 치유와 축귀 사역은 예수님의 일하심보다 더 놀라운 형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는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되심이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그들이’ 기적을 일으키는게 아니다. 기적은 ‘예수께서’ 일으키시는 것이다. 그것이 ‘한 마음’에 함부로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여주는 핵심이다.
17 대제사장과 그의 지지자들인 사두개파 사람들이 모두 시기심이 가득 차서 들고일어나,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밤에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백성에게 전하여라!” 하였다.
21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 때에 대제사장이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와서, 공의회와 이스라엘의 원로회를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두가지 반응, 질문하며 수긍하는 집단과 반발하고 모욕하는 집단을 다뤘었다. 또한 이것이 예수님께서 미리 예언하신 일이기도 했음을 알고 있다. 교회의 놀라운 기적 앞에서 대제사장과 그의 지지자들, 사두개파 사람들은 시기심으로 가득해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처럼 결코 ‘증언’은 멈추게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실재적인 압력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증언을 멈추지 않도록 감옥 문을 열어 젖히신다. 그리고 감옥 문이 열어 젖혀지는 이유도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백성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이 말씀은 결코 어떤 물리적 힘으로도 가둬둘 수 없다.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 전달자들을 세상 속으로 계속해서 보내실 것이다.
천사의 말을 듣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들은 새벽에 성전으로 가서 말씀을 선언한다. 제자들의 복종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직후’ 다시 성전으로 간다. 한마디로 자신들을 가둔 적들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옥에 갇히고 박해를 받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22 경비원들이 감옥에 가서 보니, 사도들이 감옥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23 “감옥 문은 아주 단단히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는데, 문을 열어 보았더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대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서, 대체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사도들의 일로 당황하였다.
25 그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일렀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옥에 가둔 그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래서 경비대장이 경비대원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봐 두려워서 폭력은 쓰지 않았다
경비원들은 감옥으로 돌아가서 확인한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곳에 없었고 상황을 진술하는데, 감옥은 결코 열린적이 없다! 경비원들도 그대로다. 제자들만 빠져나간 것이다. 즉, 이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다. 그렇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이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돌이켜 회개하며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 마음’이 없다.
경비대장과 경비대원들은 사도들을 데리고 온다. 이들은 백성들의 ‘폭력’을 두려워한다. 돌로 치는 처형이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했다. 이것은 제자들이 그런 처형을 각오해야 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제자들에게 임하는게 아니라 경비대장과 경비대원들에게 임한다. 이 아이러니가 본문에 존재한다. 박해자들은 두려워하지만, 제자들은 담대하다.
우리는 ‘한 마음’ 곧,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데서 오는 담대함과 복음의 증인됨의 사명이 보여주는 멈출 수 없는 속성을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복음을 거부하고 두려워하며 거절하고 박해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한 선포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행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오직 주님의 일하심 속에 있는 교회가 두려워함없이 복음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은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줄 믿는다. 오늘 그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복음 선포하는 삶 살길 간절히 원하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