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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이미와 아직, 역설 사이에서 / 마가복음 13:14–27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4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 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 그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15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도 말고, 제 집 안에서 무엇을 꺼내려고 들어가지도 말아라.
16 들에 있는 사람은 제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말아라.
황폐하게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은 다니엘 12장 11절에 나오는 것의 인용이다. 또한 이 말씀이 실재로 이루어진 배경은 성전에 제우스 신상이 세워졌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신성모독 사건이다. 따라서 이 사건이 과거에 예언된 것과 성취된 것을 떠올리게 만듦으로써 예언-성취 공식이 이것을 다시 인용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15-16절은 창세기에 나오는 롯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게 만든다. 롯은 천사의 명령을 듣고 산으로 도망가도록 명령받는다. 그리고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도록 명령받는다. 그런데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 소금 기둥이 되고만다. 예수님은 그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만한 명령을 내리신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이곳 성전이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 된다. 그들이 탐욕적으로 착취하고 빨아들이는 돈과 겉으로만 이루어지는 경건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19 그 날에 환난이 닥칠 것인데, 그런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 주님께서 그 날들을 줄여 주지 않으셨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줄여 주셨다.
‘그 날’은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날일 것이다. 그 날이 왔을 때 임신한 여자들이나 자녀들을 돌보는 어머니들은 아이들과 자신의 몸을 동시에 챙기려면 매우 불행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 날이 ‘겨울’이라면 빠르게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간이 ‘예루살렘 멸망’ 사건에 제한되는 것인지, 아니면 우주적 종말을 이야기하시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종말을 예수님이 오신 이후 다시 오시는 시간까지라고 이해한다면, 이 사건들은 ‘단 회적’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건들일 수 있다는 점도 염두해두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창조 이래로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라는 표현을 문자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단 한번의 사건이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그 참혹함을 당시의 문화적 강조표현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예루살렘 멸망 사건으로 제한하여 본문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에서는 AD70년 경의 예루살렘 포위, 그 5개월간의 끔찍한 상황을 강조해서 묘사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줄여주시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들 때문이다. 택하신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단축은 핍박받았던 초대교회 공동체에게 매우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오랜 시간을 주님께서 다시 오시길 기다리는 교회는 이 고통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마침내 다시 오시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계속된 재림의 지체가 과연 그 날들을 줄여주신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재림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지체하심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곧바로 오심 앞에서 과연 택하신 자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단단히 서 있을 자신이 있는가. 은혜로우신 유보, 은혜로운 줄여주심 그 역설 사이에 우리가 있다.
21 그 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아라,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보아라, 그리스도가 저기에 있다’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사람들을 홀리려 할 것이다.
23 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여 둔다.”
우리가 이전 본문에서도 살펴봤듯이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예언자들은 공포심과 좌절의 순간을 자기 것으로 빨아들이고 그 공포와 두려움을 사용해 사람들을 잠식하고 그들 속에 기생한다. 심지어 그들은 표징과 기적들을 행하면서 ‘선택 받은 사람들’을 현혹할 것이다. 여기에서 ‘표징’과 ‘기적’이 거짓 선지자들에게서 확인되고 관찰될 수 있다는 점이 주의를 끈다. 거짓 선지자들에게서도 현혹당할만한 물리적인 기적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 의해서 이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며, 그들에게 빨려 들어가서는 안된다. 참된 예언의 가치는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예언과 말씀들은 ‘성취’되었고, 성취 될 것이다. 그 열매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최종적인 성취인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명확하고 놀라운 기적으로 완성되었다. 그것 외에 다른 어떤 기적들도 부차적인 가치를 가질 뿐이지, 고통과 마지막 때를 벗어나게 만들어 줄 ‘구원’을 소유할 수는 없다.
24 “그러나 그 환난이 지난 뒤에, ‘그 날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26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7 그 때에 그는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날에 해가 어두워지고 빛을 잃어버리며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리고 땅에 떨어지는 사건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이미 해가 빛을 잃고 어두워졌으며 하늘의 세력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확실히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환상적 표현들은 가시적 세계에서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영적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이미 예언되었던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사람들이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느꼈을 사건과 감상은 일차적으로 ‘십자가’ 라는 사실을 기억해봐야 한다.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분명 사도행전의 기록처럼 재림 때 다시 우리가 경험할 것으로 이해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다니엘 7장의 인자의 현현,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분께서 그분의 천사를 포함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들, 사도들과 제자들을 통해 ‘선택된 사람들’을 모으실 것이다.
이로써 다니엘 7장의 예언에서 기대된 대로, 사람들은 세계의 질서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교회는 선택된 사람들을 모으시는 곳으로써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구원’이라는 최종적 보호 안으로 들어가게 될 유일한 공동체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예언이 이미 성취된 일들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사이에 존재한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지체하심과 시간의 단축하심의 역설을 경험한다. 그 안에서 경험하게될 최종적 열매는 거짓 선지자들의 것처럼 파멸과 멸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와 상관없이 매우 담대함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박해와 환란은 이미 예고 된 것이고 인내함으로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영광스러운 구원, 그 부활이 우리에게 경험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참된 구원과 은혜를 온전히 바라보며 오늘의 고통스러운 삶조차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 달라고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