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실 때가 되니, 엘리야가 엘리사를 데리고 길갈을 떠났다. 길을 가다가,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베델까지 내려갔다.
3 베델에 살고 있는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의 스승을 주님께서 오늘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이제 엘리야는 사역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엘리사가 그 사역을 이어받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이리저리 부르시고, 엘리사가 그 뒤를 따르고,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야의 승천을 예상하는 이야기로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가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리야의 여정은 길갈에서 베델, 베델에서 여리고,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여정이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을 거꾸로 되짚어 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여호수아 1-10장에 이르는 정복전쟁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그 후임으로 인정받는 엘리사가 이 땅을 되짚어 돌아가는 것은 ‘이 땅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 알려주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허락하셨고, 하나님이 밟게 하신 땅이다. 이 땅의 주인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허락된 사역의 기간 또한 하나님이 정하실 일이다.
4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여리고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여리고로 갔다.
5 여리고에 살고 있는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의 스승을 주님께서 오늘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6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요단 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났다.
마지막 여정은 요단으로 이어진다. 요단은 처음 약속의 땅을 밟은 곳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의미심장한 그림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요단강은 ‘출애굽’을 떠올린다. 출애굽의 상징인 요단에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인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여 사라질 것이다. 홍해에서 이집트의 마병이 빠져 죽은 것과 정 반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작동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러있다. 이들에게는 출애굽이 아닌 ‘역출애굽’이 경험될 것이다. 우리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떠나는 그림이 ‘역출애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7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쉰 명이 요단 강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 강 가에 서니, 따르던 제자들도 멀찍이 멈추어 섰다.
8 그 때에 엘리야가 자기의 겉옷을 벗어 말아서, 그것으로 강물을 치니,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두 사람은 물이 마른 강바닥을 밟으며, 요단 강을 건너갔다.
9 요단 강 맞은쪽에 이르러,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11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들 두 사람을 갈라 놓더니,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요단까지 왔다. 요단에서 엘리야는 자기 겉옷을 벗어 강물을 치니 물이 좌우로 갈라진다. 우리는 분명 홍해 앞에서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둘로 갈라졌던 사실을 기억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도 홍해를 가르는 모습으로 분명히 보인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분명히 요단강의 동쪽 편으로 갔다는 말이고, 이것이 ‘역출애굽’으로써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질문한다. 그러자 엘리사는 스승님의 능력을 ‘갑절’로 받기를 바란다고 요청한다.
여기에서 ‘갑절’은 신명기 율법에 따라 ‘장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두배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능력의 두배’라는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기적의 사건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영적인 장자권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랬을 때,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해석될 것이다.
엘리야의 말처럼 엘리사는 엘리야가 불병거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신비롭고 놀라운 일로 말미암아 엘리야는 살아서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엘리야의 사역 전반에 ‘불이 떨어지는 기적’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갈멜산에서, 그리고 아하시야 때에 오십부장들을 태운일이 그것이다. 이제 그는 불에 의해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거두어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12 엘리사가 이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엘리사는 슬픔에 겨워서, 자기의 겉옷을 힘껏 잡아당겨 두 조각으로 찢었다.
13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겉옷을 들고 돌아와, 요단 강 가에 서서,
14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그 겉옷으로 강물을 치면서 “엘리야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외치고, 또 물을 치니, 강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엘리사가 그리로 강을 건넜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슬픔에 차 자기 옷을 찢는다. 우리는 이 장면이 매우 극도의 슬픔을 표시하는 것으로 1차원적인 모습을 발견하지만,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될 만큼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보여주었던 엘리야가 사라짐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떠나신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유부단한 이스라엘의 참혹한 모습을 가슴절절히 회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그 겉옷으로 강물을 치며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부르짖는다. 그러자 강물이 좌우로 갈라져 그리로 강을 건너 다시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다. 이로써 영적인 장자권을 획득한 엘리사가 다시금 ‘재출애굽’을 통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역출애굽과 재출애굽을 보여주는 이 장면을 통해서 엘리사의 부르짖음을 깅거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엘리야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역출애굽으로 포로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돌아와 성전을 지었는지의 이야기를 에스라, 느헤미야 등을 통해서 보고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영적 장자의 등장을 통해 완전한 재출애굽을 행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일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하나님의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라고 부르실 때, 영원한 요단이 갈라지고 생명으로 재출애굽 시키셨다는 것을 본다. 요단의 사건은 하나의 영적 권위 이양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지만, 멀리 볼 때,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큰 밑그림의 확인 이기도 하다.
오늘 본문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 요단을 건너시는 우리 주님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이 그 영원한 능력 안에 있기를 간절히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