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QT] 속상한 기도 / 예레미야 32:16–2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6 나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그 매매계약서를 넘겨 주고 나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17 “아, 주 하나님, 보십시오, 크신 권능과 펴신 팔로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니, 주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18 주님께서는, 은혜는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베풀어 주시지만, 조상의 죄는 반드시 자손이 치르게 하시는 분이시며,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만군의 주님으로 이름을 떨치시는 분이십니다.
19 주님께서는 계획하는 일도 크시고, 실천하는 힘도 강하시며, 사람들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고, 각자의 행동과 행실의 결실에 따라서 갚아 주십니다.
예레미야라고해서 지금 시대가 돌아가는 꼴을 모를리가 없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갇혀있는 상황에 굳이 이 매매계약을 해야만 하는지 원망스러울 수 있다. 재난과 재산의 상실이 너무나 분명하고 임박해있는 때에 이 매매계약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할수밖에 없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놀라운 일을 조심스럽게 언급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마음속 진심, 그 아픔과 절절함을 녹여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오늘의 본문은 그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본문이다.
예레미야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한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세계는 조성되었고,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 속에서 그 은혜가 수천대에 이르도록 제공되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므로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갚으시는 분이시므로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반드시 그 행위에 대한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과 환경에서 이스라엘의 너무나 분명한 죄의 문제, 그에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할 문제다.
20 주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많은 징조와 기적들을 나타내 보이셨고,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안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이 하셔서, 주님의 이름을 오늘날과 같이 드높게 하셨습니다.
21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편 팔로, 적들이 무서워 떨게 하는 많은 징조와 기적들을 나타내시면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22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주겠다고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23 그래서 그들이 들어와 이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주님의 율법에 따라서 살지도 않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실천하라고 분부하신 모든 것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모든 재앙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땅에서 많은 징조와 기적들을 나타내셨고 영광스럽게 그 출애굽을 성공시키셨다. 그리고 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순종하지도 않고 율법도 지키지 않고, 분부하신 모든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이집트 땅에서 꺼내주신’ 출애굽 사건을 친숙한 문장들로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의 근원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돌아오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그 땅을 차지한 것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을 ‘자신들이 차지하고’, ‘자신들이 왕이된 나라’로 삼고 있다. 그들의 불순종의 근거는 그땅의 주인, 그 땅의 왕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되어버린 것 때문이다.
이제 출애굽 사건은 역으로 재생될 것이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이 역출애굽은 그들을 또 다시 이집트 때의 노예와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로 만들 것이다. 그들의 재앙은 스스로 순종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요 책임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신다.
24 이 도성을 점령하려고 쌓은 토둔들을 보십시오. 이 도성은 전쟁과 기근과 염병을 보았습니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이 도성으로 쳐들어와서 이 도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그대로 들이닥쳤으며, 주님께서는 이루어진 이 일을 친히 보고 계십니다.
25 주 하나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이 도성이 이미 바빌로니아 군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저더러 돈을 주고 밭을 사며, 증인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심판의 상황은 너무나 선명하다. 도성에 대한 침략 전쟁은 너무나 선명해보인다. 토둔이 쌓여 올라가고 전쟁과 기근과 염병이 창궐하는 것을 보고잇다고 말한다. 이 포위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도성이 적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음에도 자신에게 돈을 주고 밭을 사고 증인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시는지 질문할수밖에 없다. 이것은 합리적인 일이 아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레미야 전체의 메시지를 고려해볼 때, 주님은 단지 심판만 예고하지 않으셨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뽑고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그들을 심고 세우실 일도 준비하신다. 그 비참한 심판의 땅에서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그곳에서 ‘살아남아’ 다시금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출 바빌로니아, 출 페르시아, 출 광야’를 다시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예레미야의 속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우리의 기도가 늘 언제나 ‘정답’만 말하는 기도일 수는 없다. 때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약속하신 내용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더라도 지금 현재 시점에서 도무지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예레미야처럼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태도는 너무나 필요하다. 위대한 선지자의 아픔에 차 깊은 웅성이 속에서 눈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장면을 생각할 때 우리의 기도 또한 그러하지 못할 법이 없다. 우리의 아픔과 신음을 주님은 듣고 계신다. 다만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일하심 또한 확신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께서 우리의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심을 확신하자. 그 안에서 참된 위로와 평안을 얻길 바란다. 우리의 정직한 아픔과 호소를 들고 위로 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