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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욥 1:13-22 / 선명한 고통 인정하기/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13 하루는, 욥의 아들과 딸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데,
14 일꾼 하나가 욥에게 달려와서, 다급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나귀들은 그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15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가축들을 빼앗아 가고, 종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욥의 비극이 시작된다. 13절은 욥의 아들과 딸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상황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끝맺는 19절에서 아들과 딸들이 죽는 이야기로 그침으로써 이 모든 비극적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욥이라는 인물이 살았던 연대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가 직접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아서는 아마도 족장시대 인물일 것으로 보인다. 족장시대는 ‘유목민’ 생활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소를 몰아 밭을 갈고’라는 표현은 그가 이미 정착생활을 시작했을 정도로 앞선 문명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시말해 유목민들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건들이 있었지만, 정착민들은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훨씬 더 어려운 문제가 산적했으리라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
16 이 일꾼이 아직 말을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서, 양 떼와 목동들을 살라 버렸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7 이 사람도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갈대아 사람 세 무리가 갑자기 낙타 떼에게 달려들어서 모두 끌어가고, 종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앞선 이야기가 농경지의 파괴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면 이제는 가축들의 죽음을 보여준다. 그가 생활의 터전을 잃더라도 그 시대의 일반적인 생활 양식인 유목민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텐데 그 가능성마저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계속해서 단 한 사람만 남겨지는 것은 사탄의 의도적인 계획이라는 의심이 든다. 상황을 선명하게 설명하면 설명할 수록 비극도 선명해진다. 또렷한 고통의 선명함이 쉬지않고 연달아서 전달되고 있다.
18 이 사람도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주인 어른의 아드님과 따님들이 큰 아드님 댁에서 한창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갑자기 광야에서 강풍이 불어와서, 그 집 네 모퉁이를 내리쳤고, 집이 무너졌습니다. 그 때에 젊은 사람들이 그 속에 깔려서,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비극은 자녀들이 모조리 죽음으로써 클라이맥스를 찍는다. 네 가지의 재앙은 인간들에 의해서 이뤄진 것, 자연재해로 이뤄진 것이 섞여있다. 재앙의 다양성과 비극의 경험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선명한 증인의 이야기를 통해 휘몰아침으로써 욥이 경험하는 비극의 깊이는 더욱 진하고 깊어진다.
20 이 때에 욥은 일어나 슬퍼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면서,
21 이렇게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22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욥은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음으로써 큰 슬픔을 당한 애도를 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경배하고 찬양한다. 욥이 인정하는 것은 주신 것도, 가져가시는 것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권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대한 인정은 욥이 자신의 위치를 어디에 두었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는 인생의 주권자 위치에 자신이 앉아있지 않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인생을 관리하시며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장하심 속에서 욥이 할 수 있는 원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욥의 반응은 이 시험이 이제 막 시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이제 막 첫 시험이 치러졌을 뿐이다. 지금은 성공적으로 비극을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더 큰 시련과 질문들이 욥을 폭풍처럼 뒤덮어갈 것이다. 욥은 과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욥기의 저자는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고 다음의 이야기로 곧장 넘어간다.
현대에도 다양한 재앙들이 수시로, 더 선명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소식을 전하고있다. 우리는 이 재앙들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지 못하고, 악을 방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기 쉽다. 이때 우리는 다시 우리의 삶을 점검해봐야한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는가? 하나님이 악을 관리하시는 분이심을 인정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주장하실 충분한 권리가 있으심을 인정하는가? 그래서 우리에게 닥친 끔찍하고 어두운 고통이 닥쳐와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찬양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너무나 힘든 이 고백을 바로 우리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내셨음을 기억하자.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은 오로지 십자가 앞에서 침묵할수밖에 없다. 가장 억울한 죽음이나 가장 완벽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하신 순종을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이 전적인 순복과 복종의 자세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