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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들음과 반응 / 마가복음 4:13–25/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3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이해하겠느냐?
14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본문에서 1차적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씨 뿌림은 예수님께만 속한 고유권한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신다. 어디든지 ‘말씀’은 뿌려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자들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 비유는 아주 기본적인 비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다른 비유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제자들은 이 비유를 깨달아야한다. 그리고 말씀을 뿌릴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그들은 예수님께서 뿌리신 그 씨앗을 자신의 땅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맺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들은 좋은 밭이 아닌 가시밭 또는 돌짝 밭, 또는 길가일 것이다.
15 길가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말씀이 뿌려질 때에 그들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16 돌짝밭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17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18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달리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에 다른 일의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어제의 본문에서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서의 더 많은 열매들이 일종의 ‘발전적’ 상태를 상정한다고 나눴다.
길가는 말씀을 듣지만 사탄에의해 ‘곧바로 빼앗긴다’
돌짝밭은 금방 기쁘게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걸려 넘어진다’ 걸려 넘어진다는 단어는 [스캔달리조]이고 [스캔들]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환난과 박해는 스캔들이다. 스캔달리조가 죄를 짓게 만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연결해보면 돌짝 밭에 대한 설명은 핍박 아래서 일어나는 ‘배교’를 이야기할 것이다.
가시덤불은 살아남아있기는 하지만 열매맺지 못함을 보여준다. 열매맺지 못하는 이유는 열매를 맺도록 해야하는 에너지가 세상 염려, 재물, 욕심에 쏟아부어져서 생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의 분산 또는 충성되지 못한 제자의 태도가 열매맺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제 함께 살펴본것처럼 좋은 땅에서 열매맺음은 ‘삼시비 배, 육십배, 백배’라고 설명되는 것으로써 점진적으로 더 많은 열매가 기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해석을 다시 생각해보면 땅은 점점 개간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고, 그 안에서 싹이 살아남고 열매를 맺는 과정들이 매우 생생하다. 더 많은 것에 대한 지속적인 욕망으로써 물질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다가 말 아래에나, 침상 아래에 두겠느냐? 등경 위에다가 두지 않겠느냐?
22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23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이 세상에 비춰지는 ‘빛’이 되라고 요구하신다. 제자들에게는 ‘빛’이 필요하다.
빛의 목적은 어두운 것을 밝히는데 사용됨이다. 등불은 그 기능과 목적에 맞춰 알맞은 자리에 있어야한다. 그처럼 숨겨둔 것, 감추어 둔 것은 그 자리와 용도에 맞춰 이동되어야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비유를 알아듣지 못함’ 때문에 지적하셨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그 공동체가 가지는 놀라운 회복과 자유에 대해서 병든자들을 치유하심과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식탁을 통해 직접 보여주셨다. 그들에게 ‘빛’이 비추었고, 그 빛을 반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하나님 나라의 정체, 예수님이 하시려는 사역이 정확히 어떠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빛이 비쳤지만, 빛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빛은 감춰둘 수 없다. 예수님의 궁극적인 사역은 감춰지지 않고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드러난 빛을 거부할 수는 없다. 너무나 선명한 그 빛에 의해 어둠은 물러갈 것이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25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새겨 들으라’ 라는 경고는 듣는 행위가 ‘어떻게 듣는지’를 강화하는 반복적인 주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새겨들음’으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명령을 듣게 된다. ‘되질’은 곡식 매매 계약의 전형적인 어휘이다. 유대 문헌에서 이 표현은 ‘심판의 적절성을 위한 격언’으로 등장한다. 범죄에는 ‘형벌’이, 선한 행위에는 ‘보상’이 제공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따. 앞서 뿌려진 씨앗이 가지는 점진적 풍성함을 생각해보면, 한 번 열매 맺은 사람은 더욱 많은 열매를 얻겠지만, 가지지 못한 길 가는 사탄이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버릴 것이다.
우리는 본문 묵상하면서 비유의 의미와 뜻에 대해서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등불에 대한 비유나 되질에 대한 비유에서도 살필 수 있는 것처럼 말씀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된 기능과 목적에 맞출 수 있는,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 풍성한 열매를 위한 올바른 삶의 태도와 위치를 생각하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