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읽을 본문은 ‘안식일’을 배경으로하고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셔서 하신 다양한 일과 사건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반응의 핵심을 ‘놀랐다’ 라고 말한다. 안식일에 벌어진 사건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좋았던 것들을 온전히 누리시는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의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켜야할 날로 이스라엘에게 명령되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얻는 것은 하나님을 만남과 모든 노동, 억압에서의 ‘쉼’이다. 오늘 본문은 ‘안식’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경험되는지 보여줄 것이다.
먼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다는 것을 보게 된다. 본문이 ‘회당’이라는 장소, 말씀이 선포되는 공간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 말씀의 주인이신 분으로써 말씀의 온전한 해석과 전달이 이뤄졌다는 것이 강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 ‘지혜’ 그 자체이신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이 전하시는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23 그 때에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24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25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26 그러자 악한 귀신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서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27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
28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그 때에’라는 표현은 놀라고 있던 상황에서 ‘즉시’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등장하는 것으로 곧바로 마주친 상황을 상정한다. 사실 이 장면은 매우 의아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거룩한 공간이어야할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존재한다. 이것은 마치 거룩해야할 땅에 악한 영에 사로잡혀있는 이스라엘을 보여주는것만 같다.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은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신경쓰지말고 지나가라는 관영적 표현이었다. 게다가 ‘당신이 누구인지 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다 라고 정확한 신분과 명칭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고대의 영적 세계에서 영적 존재의 ‘진명’을 부름으로써 제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렇다면 악의 영은 지금 예수님을 ‘제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도는 곧바로 좌절된다. 예수님은 그 존재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신다. 그저 입을 다물고 나가라고 명령하실 뿐이다. 예수님께는 어떤 방법이 필요치 않다. 그저 명령하실 뿐이다. 그분의 권위는 어떤 것도 초월하신다.
사람들은 또 다시 ‘놀란다’.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으로 인정하며 일어난 현상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소식은 갈릴리 주위 온 지역으로 두루 퍼진다.
우리는 이 사건이 ‘안식’일에 일어났으며, 지금 이 사람에게 ‘안식’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혼돈과 공허가 온전함과 질서로 세워지는 원리가 이 사람의 영혼에 일어났다.
2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30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정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3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장소가 바뀐다. 회당에서 나와서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간다.
우리가 이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이 아버지를 배에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표현을 완전히 가정과 단절된 상태였다고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들의 우선순위가 분명히 바뀌었을 뿐이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고있을 때 예수님은 다가가셔서 손을 잡아주신다. 유대 남성이 여성의 몸을 만지는 것은 결코 일반적일 수 없다. 게다가 열병을 앓고 있는 상태는 ‘부정’의 상태라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정결한 남성이 부정이 옮겨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금이 거룩함을 지켜야할 ‘안식’이라는 시간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행동은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안식’의 주인이신 분께서는 ‘부정’이 옮겨지지 않고 오히려 ‘정결’과 ‘치유’가 전달된다.
32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33 그리고 온 동네 사람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그는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해가 져서 날이 저물면서 사역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진다.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찾아온다.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제어하시는 것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예수님의 정체를 말하지 못하도록 하심일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의 기능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더러운 영’이 존귀하신 분의 정체를 폭로하듯이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시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메시아 비밀’로써 앞으로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궁극적인 구원의 사역이 어떠한 것인지를 숨기실 의도를 가지실 것이다. 그들은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상태로 두실 것이다.
‘안식’의 기능을 생각해보자. 안식은 노동의 그침과 하나님 나라의 원기능의 회복과 누림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선언되게 하시고 모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리시고 관리하신다. 모든 기능을 정상으로 돌리시며 온전한 기능으로 회복시키신다. 모든 억압을 벗겨내신다. 오늘 예수님은 이 안식의 주인으로써 드러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께 온전히 붙들릴 때 그 안식이 경험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우리가 매 주일, 또 매일의 순간 속에서 창조자이시자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분께 나아간다면 우리의 참된 회복이 일어날 줄 믿는다. 참된 안식의 주인이신 분께 붙들리길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1.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치유의 기적, 축귀 사역 속에서 놀라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안식일’에 이뤄졌습니다.
2.
참된 안식의 주인이신 분께서 그분의 권위를 사용하실 때 예수님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존재도 없습니다.
3.
이 사건들은 예수님이 참된 안식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가 예수님께 붙들릴 때 참된 안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