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몰려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그에게 보고하였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제자들의 사역 한 페이지가 끝났다. 보내심을 받았던 사도들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보고 했다. 그들은 정신없는 사역의 현장에 놓여있다. 예수님께 온 후로도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서 음식조차 먹을 틈이 없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외딴 곳’으로 와서 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야말로 ‘휴식’의 개념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외딴 곳’으로 가셨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서 성령님과 동행하시며 악한 영들을 무찌르신 이야기들을 떠올려볼 수 있다. 외딴 곳은 쉼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영적 공급처의 기능도 했을 것이다. 그 공간의 이미지가 ‘왕궁’과는 한참 먼 대척점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전 본문의 ‘헤롯의 잔치’가 열렸을 공간과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없는 ‘외딴 곳’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참된 왕께서 베푸시는 식사의 자리였다. 99
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들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무리는 여러 마을에서 ‘달려가서’ 배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이동한다. 이들이 얼마나 강인한 체력으로 호수를 빙 둘러왔는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을 내어서 호수 건너편으로 올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느껴지셔서 불쌍히 여기셨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다.
‘목자’가 구약에서 ‘왕’을 나타내던 표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전 장면에서 전혀 왕 같이 굴지 않았던 ‘헤롯’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참된 목자로 쉴만한 물가와 잔치의 상을 제공하시는 분임이 밝혀지게 된다.
35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36 이 사람들을 헤쳐, 제각기 먹을 것을 사 먹게 근방에 있는 농가나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3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빵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을 흩어지게 해서 먹을 것을 사먹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은 자신들이 그들을 감당할 만한 음식이 없다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방에 있는 농가나 마을이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것인가? 쉽게 답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을 다 먹이기 위해서 계산한 금액이 ‘이백 데나리온’ 이기 때문이다. ‘이백 데나리온’의 가치를 환산하면 200일치의 임금이고 대략 연봉의 절반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한끼 식사를 위해서 그 엄청난 금액을 쏟는 것, 마을이 그 엄청난 수요을 감당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이 생긴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아라.” 그들이 알아보고 말하였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39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여, 모두들 떼를 지어 푸른 풀밭에 앉게 하셨다.
40 그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앉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물어보신다. 그러나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이백 데나리온으로 구해야하는 음식과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가격적인 측면에서 왕궁에서 제공될 잔치의 식대와 예수님께서 ‘외딴 곳, 푸른 풀밭이 있는 곳에서 제공되는 빵과 물고기’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키셔서 푸른 풀밭에 앉게 하신다. 우리는 시편 23편에서 ‘목자 되신 주님’께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안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예수님은 무리를 백명, 쉰 명씩 떼를 지어 앉게 하신다. 이것으로 한편으로는 선한 목자이신 분께서, ‘군사적 왕’으로써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원수의 목전에서 펼쳐진 주님의 식탁은 기적과 생명력과 ‘힘’과 능력으로 풍성하게 베풀어지고있다.
41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축복하신 다음에,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그리고 그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빵 부스러기와 물고기 남은 것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이었다.
유대인들의 식사에서 빵을 위해 복을 빌고 나눠서 분배하는 일은 가장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다. 예수님은 이들의 대표로써 축복하시고 빵을 떼셔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다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어떤 방식으로 빵과 물고기가 늘어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결과는 확실하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게다가 열두 광주리나 되는 양이 남았다. 남은 양을 생각해보면 원래 있던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보다 훨씬더 많이 남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수님이 제공하신 식사의 자리는 차고 넘치는 놀라운 식탁이었다.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로 제한된 숫자가 제시된다.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도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마가는 의도적으로 남자만 제시한다. 이것은 아마도 조금 더 군사적인 그룹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식탁이 이전의 ‘헤롯’의 식탁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 식탁은 탐욕적이고 정치적이며 음란하고 욕망으로 일렁이는 식탁이 아니다. 쉴만한 물가이며 푸른 풀밭과 선한 목자가 있는 식탁이다. 원수의 목전에 베풀어진 식탁이며 기적과 풍성함으로 넘치고 배부른 식탁이다.
우리 주님이 제공하시는 식탁은 ‘성찬’에서 더욱 완전하게 우리에게 제공될 것이다. 성찬에서 먹는 것은 이제 다시 배고파질 양식이 아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식사가 될 것이다. 이 식사는 차고 넘치는 식사이다. 세상의 탐욕과 욕망으로 넘실대는 식탁과는 차원이 다른 식탁이다. 우리 주님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일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뛰어 넘는다. 우리 주님이 제공하시는 식사는 다시 주리지 않을 것으로 제공되며 그분은 우리의 ‘목자’로써, ‘왕’으로써, ‘식탁의 주인으로써’ 생명을 제공하신다.
우리에게 주실 생명의 식탁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