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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왕상 22:1-14 /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는 왕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

1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세 해 동안이나 전쟁이 없었다.
2 그런데 삼 년째 되는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을 찾아갔다.
3 이스라엘 왕은 자기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길르앗에 있는 라못은 우리 땅인데도, 우리가 그 땅을 시리아 왕의 손에서 다시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소. 경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소?”
시리아의 벤하닷과는 이미 조약이 맺어져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우리는 지난 본문들에서 아합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지 않는데 자신이 맺은 언약에 신실할 수 있을까 질문했었다. 오늘 아합은 길르앗에 잇는 라못이 원래 이스라엘의 땅인데도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길르앗 땅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땅이었고 라못은 고원지대로서 전략적으로도, 길르앗의 중심지로서도 중요한 도시였으리라 보인다. 따라서 길르앗을 되찾아오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는 정당한 목적에 의해서 수행될 전쟁이었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서 ‘약속된 휴전’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4 그리고 그는 또 여호사밧에게도 말하였다.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나와 함께 올라가시겠습니까?” 그러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생각이 바로 임금님의 생각이며, 내가 통솔하는 군대가 곧 임금님의 군대이고, 내가 부리는 말이 곧 임금님의 말입니다.”
5 그러면서도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먼저 주님의 뜻을 알아 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읽게 되겠지만 여호사밧이 상당히 경건한 왕이었고 종교적인 열심으로써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왕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여호사밧의 정치적, 군사적 판단은 뛰어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는 왜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한 전쟁이 유예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스라엘의 왕이 하자는대로 따라가려고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역시 전쟁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고 말한다. 지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사이가 동맹의 상태인 것으로 보이지만 북이스라엘의 힘이 조금더 우세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합은 여호사밧의 이야기를 듣고 충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시도한다.
6 그러자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 사백 명 가량을 모아 놓고서,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예언자들은 대답하였다.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겨 주실 것입니다.”
7 여호사밧이 물었다. “이 밖에 우리가 물어 볼 만한 주님의 예언자가 또 없습니까?”
8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에게 대답하였다. “주님의 뜻을 물어 볼 사람으로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 여호사밧이 다시 제안하였다. “임금님께서 예언자를 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9 그러자 이스라엘 왕은 신하를 불러서 명령하였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빨리 데려 오너라.”
아합은 예언자 사백 명 가량을 모아놓는다. 그들이 순전히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예언자들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합조차도 ‘혼합주의적 형태’의 여호와 신앙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왕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한다. 주님께서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왜 다른 예언자를 찾았을까? 아마도 그런 혼합주의적 형식의 예언형태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찾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여호사밧의 눈에는 이 예언자 집단은 그리 신뢰할만하지 않다고 느꼈다. 아합은 ‘미가야’ 라는 예언자를 소개하지만 그는 마치 엘리야처럼 ‘흉한 것’ 즉, 직언하는 사람이라고 피하려고 한다. 여호사밧은 ‘예언자’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하며 미가야의 이야기를 듣자고 종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도 아합은 철저히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이야기를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그냥 하면 된다. 마치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봇의 포도원 때도 마찬가지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일을 진행하며 그것은 ‘비극’이자 ‘재앙’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10 그 때에 이스라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타작 마당에 마련된 보좌에 앉아 있고, 예언자들은 모두 그 두 왕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었다.
11 그 예언자들 가운데서,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가 만든 철뿔들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철로 만든 이 뿔을 가지고, 너 아합은 사람들을 찌르되, 그들이 모두 파멸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하십니다.”
12 다른 예언자들도 모두 그와 같은 예언을 하면서 말하였다. “길르앗의 라못으로 진군하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거짓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시드기야는 ‘철뿔’들을 가지고 나와서 아합이 사람들을 찔러 물리칠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철뿔은 ‘추수’를 위한 농기구였을 것이다. 지금 예언이 벌어지고 있는 ‘타작 마당’이라는 장소와 매우 잘 연결된다. 신명기의 예언에 따르면 요셉 지파는 수송아지같은 힘으로 황소의 뿔과 같은 위력으로 그 뿔로 만방을 들이받아 땅끝까지 휩쓸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신명기의 예언과도 잘 어울린다.
이 두가지의 결합이 보여주는 혼합된 메시지를 보게 되는데, 바알이 바로 농사의 신으로써 풍요를 가져다주는 비의 신이기 때문에 곡식을 추수하는 농기구가 예언에 사용되는 것은 이교도적 도구였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신명기의 예언을 가지고와서 승리를 예언하는 것이다.
이런 혼합된 예언은 아합의 마음에 꼭들었을 것이다. 혼합된 신앙과 혼합된 메시지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좋은 근거요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13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에게 말하였다. “이것 보시오.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예언자께서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14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는 다른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기 때문에 승리를 예언하는것이 좋겠다고 조언한다. 이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아합이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왕이라는 점이다.
미가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말하겠다고 한다. 그의 말은 아합의 심기를 건드리겠지만 아합이 순종할 때 살 것이고 불순종할때 죽을 것이다. 참된 예언은 그 마지막을 보아야 알 수 있는 법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심리는 우리의 신앙과도 닮아있는것 아닐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마음을 어렵게 만들고 어려운 순종의 자리로 자꾸만 인도하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듣고싶지 않은 그 이야기.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깊이 순종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길이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묵상하며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