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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된 엘리사 / 열왕기하 6:1-14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우리들이 예언자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너무 좁습니다.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에서 들보감을 각각 하나씩 가져다가, 우리가 살 곳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엘리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예언자 수련생들은 일종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요단에서 들보감을 하나씩 가져다가 살 곳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요단’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흥미롭다. 이제 이야기는 2장의 내용과, 엘리야의 기적 사건들이 절묘하게 병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예언자 수련생들을 책임지실 것이며, 그들의 삶과 인생의 전반을 그들이 고통받고 어려운 중에서도 길을 내시는 분으로 일하실 것이다.
3 한 사람이, 엘리사도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엘리사도 같이 가겠다고 나서서,
4 그들과 함께 갔다. 그들이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자르기 시작하였다.
5 그 때에 한 사람이 들보감을 찍다가 도끼를 물에 빠뜨렸다. 그러자 그는 부르짖으며 “아이고, 선생님, 이것은 빌려 온 도끼입니다” 하고 소리쳤다.
6 하나님의 사람이 물었다. “어디에 빠뜨렸느냐?” 그가 그 곳을 알려 주니,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그 곳에 던졌다. 그랬더니 도끼가 떠올랐다.
7 엘리사가 “그것을 집어라” 하고 말하니, 그가 손을 내밀어 그 도끼를 건져 내었다.
엘리사는 요단으로 간다. 그리고 요단에서 나무를 자른다. 그런데 한 사람이 도끼를 불에 빠뜨려버린다. 당시는 도끼가 매우 비싼 도구였고, 그것을 빌려온 상태다. 예언자 수련생들은 아마도 경제적 활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비싼 도끼를 되찾아 주지 않는다면 앞이 막막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에 빠뜨렸는지’를 질문한다. 엘리사는 결코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도 한계를 가진 사람이다. 다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까이에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엘리사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서 그 곳에 던지는데 이전에 소금을 뿌리거나, 밀가루를 뿌림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물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서 잃어버린 도끼에 나무 자루를 꽂아서 다시 건져 올렸다거나, 얕은 물가로 가져와서 되찾아 주었다는 등의 이성적 설명을 붙이려는 시도들이 있다. 우리는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이 ‘요단’인 것과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자신의 일을 성취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께서 요단을 가르실 수도 있고, 요단 위를 걷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즉, 여호수아에서 제사장이 요단 물을 밟을 때 물이 쌓여 올라가는 것처럼, 요단은 단단한 땅처럼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끼가 떠오른 사건은 단지 전설적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복하신 땅에서 어떤 통치를 보이시는가에 대한 두번째 페이즈의 시작이다.
8 시리아 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던 무렵이다. 그가 신하들과 은밀하게 의논하며 이러이러한 곳에 진을 치자고 말하였다.
9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시리아 사람들이 거기에 진을 칠 곳이 이러이러한 지역이니, 그 곳으로 지나가는 것은 삼가라고 말하였다.
10 이러한 전갈을 받은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사람이 자신에게 말한 그 곳에 사람을 보내어, 그 곳을 엄하게 경계하도록 하였다. 그와 같이 경계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1 이 일 때문에 시리아 왕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신하들을 불러모아 추궁하였다. “우리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자가 없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우리는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지금 돈이나 옷이나 선물을 받을 때냐고 질타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지금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나아만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한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이들의 무력적 충돌과 다툼, 땅의 확장을 위해 서로 싸우고 다투는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생명력과 풍요로움이 흘러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와 권력과 힘을 위해 서로 싸우고 다툰다.
시리아 왕은 신하들과 은밀하게 의논하며 전략적 기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일종의 군사기밀이 생성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그 지역을 미리 방비하라고 조언한다. 엘리사가 왕궁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은 이미 수넴 여인의 이야기에서, 나아만의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엘리사는 더욱 긴밀한 군사적 조언을 하고 있고 그 일들이 효과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군사 기밀이 계속 유출되는 사건 때문에 시리아 왕은 아주 합리적으로 내부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나아만을 떠올릴 수 있지만, 본문은 나아만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후일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일로 그 자리를 떠나있을 수도 있으며 더 좋지 앟은 경우에는 죽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나아만이 없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아만의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12 신하 가운데서 한 사람이 말하였다. “높으신 임금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예언자가 있어서, 임금님께서 침실에서 은밀히 하시는 말씀까지도 다 알아서, 일일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줍니다.”
13 시리아 왕이 말하였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가서 찾아보아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붙잡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예언자가 도단에 있다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14 왕은 곧 그 곳에 기마와 병거와 중무장한 강한 군대를 보내어서, 밤을 틈타 그 성읍을 포위하였다.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이 엘리사 라는 존재를 말한다. 그가 나아만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수 없지만, 나아만이 아니라면 (아마 그가 나아만이었다면 시리아 왕은 첩자로 나아만을 떠올렸을수밖에 없다.) 그는 나아만이 기적을 경험한 경위와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예언자의 엄청난 능력과 영향력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시리아 왕은 이제 이스라엘의 전략 무기가 엘리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붙잡으려고 한다. 엘리사는 마치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다. 우리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떠났다며 크게 슬퍼했던 사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요구했던 ‘갑절의 능력’ 곧, 장자로써의 특권이 정확히 전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된 엘리사는 시리아의 기마와 병거, 중무장한 강한 군대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이야기가 열왕기하 2장에서 나온 내용들이 다른 방식으로 재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그 땅의 통치를 결코 거두시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 속에서 어려움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직접 간섭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리고 주님의 통치는 이스라엘 안에 갇혀있지 않고 열방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길 원하신다. 그들의 환경과 상황과 상관없이 그분의 다스리심의 목적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만족과 기쁨과 풍성함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첫번째 결말이 전쟁이 아닌 ‘잔치’로 끝난다는 점을 내일 나누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에서 ‘잔치’가 열리길 원하신다.
우리의 삶에 그 다스리심으로 인해 풍요로움과 잔치를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