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하필QT] 욥기 1:1-12 / 완벽한 등장인물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2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고,
3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고, 종도 아주 많이 있었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욥의 인내는 히브리서에서 인용하면서 우리가 욥기를 읽어야 하는 가이드처럼 사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욥을 읽으면 그 주제가 ‘인내’와는 약간 거리가 멀어보이는 것 같다. 오히려 욥기를 읽는 것은 하나님께서 흠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에게 ‘왜 고난을 주시는가?’ 라는 아주 현실적이고 아픈 문제를 파고드는 책이다.
욥기의 시작은 우리가 어쩌면 바라고 고대하는 훌륭한 신앙인이 기대할 수 있는 완벽한 인생을 설명한다. 그는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한다. 이것은 그가 ‘완벽’했다라는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만큼 훌륭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아들 일곱, 딸 셋이 있다. 일곱, 셋, 열명의 자녀는 ‘완전수’에 가까운 설명이다. 그에게는 양, 낙타, 겨릿소, 암나귀, 종들이 아주 많았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욥은 성문에 앉아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 성의 존경받는 위인이라는 말이다. 그는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인생을 살고있다.
4 그의 아들들은 저마다 생일이 되면, 돌아가면서 저희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세 누이들도 오라고 해서 함께 음식을 먹곤 하였다.
5 잔치가 끝난 다음날이면, 욥은 으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자식의 수대로 일일이 번제를 드렸다. 자식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잔치가 끝나고 난 뒤에는 늘 그렇게 하였다. 욥은 모든 일에 늘 이렇게 신중하였다.
욥의 의로운 행실은 ‘말’로만 이뤄진게 아님이 증명된다. 그는 작은 것 하나라도 실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사소한 것이라고 묻어버리기는 커녕 공론화시키고 꺼내어서 고칠 줄 아는 신중하고 정직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예배드리려고했던 욥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이야기들을 쏟아내게 되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민낯임과 동시에 정직함이다. 그의 죄를 향한 정직함의 결과가 하나님을 향한 정직함으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욥은 실수하지만 오히려 그가 하나님앞에 얼마나 깊고 진실한 관계성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7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탄은 주님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과 사탄이라는 존재의 등장은 이 장면을 환상적인 이야기로, 사실과는 떨어진 판타지로 읽게 만들어버리지 않나 생각이든다. 그러나 성경에서 천상회의에 대한 묘사를 종종 찾아볼수 있다. 이것을 사실로써 받아들임으로써 읽어본다면 이 천상회의 속에서 사탄의 역할을 주목하게 된다.
사탄은 말 그대로는 ‘대적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국정에서 ‘야당’ 역할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 오는 길이냐’고 물으신다. 하나님은 모르셔서 질문하시는게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탄이 욥을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사탄이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이라는 연막 속에 숨은 사탄의 속내를 밝히신다. 그리고 욥에 대해 이미 보호를 시작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욥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정하신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인정은 매우 효과적인 보호막이다.
9 그러자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욥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 주님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울타리로 감싸 주시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에나 복을 주셔서, 그의 소유를 온 땅에 넘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11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드셔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치시면,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사탄은 욥의 경건과 하나님을 경외함의 근거가 ‘넘치는 복’에서 온다고 가정한다. 이것은 번영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이다. 그의 경건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은 오직 경제적인 부요함과 인생의 승리로부터 쌓아올려진 것은 아닌가? 과연 가난해도,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할 수 있을 것인가?
12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네게 맡겨 보겠다. 다만,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아라!” 그 때에 사탄이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몸에는 손대지 말되 다른 모든 것을 사탄에게 맡기신다고 ‘허락’하신다. 허락의 의미를 오해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악을 이기지 못하셔서 허용하시는게 아니시다. 하나님은 사탄이 벌인일을 얼마든지 수습하실 수 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단지 수행하는 종일 뿐이다. 모든 악은 하나님의 힘 아래서 관리되고 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하나님이 악을 허락하심으로써 얻으시고자 하시는 결과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비참하고 비극적인 한 인생의 이야기가 어떻게 극복될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곧바로 욥기의 마지막으로 이동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길고 고단한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우리의 오염된 시각 하나를 고쳐갈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로움’과 ‘이 땅에서의 잘됨’이라는 것의 관계성, 또는 ‘우리의 잘못’과 ‘이 땅에서의 고난’이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증인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그 모든 결과물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제자리를 찾게 되는 날이 올때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호소하는 처절하나 신실한 욥의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죽음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상태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부르짖으며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비춰볼 것이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허락된 삶이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실하게 하나님만을 온전히 붙들며 사는 인생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