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하필QT] 어떤 것도 깨뜨릴 수 없는 ‘새 언약’ / 예레미야 31:23–40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하필QT] 어떤 것도 깨뜨릴 수 없는 ‘새 언약’ / 예레미야 31:23–40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3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을 돌아오게 할 때에, 사람들은 유다 땅과 유다의 성읍에서 이런 말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너 정의의 보금자리, 거룩한 산이여, 주님의 복을 받아라.’
24 그 때에는 유다와 그 모든 성읍에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고, 농부들도 농촌에 모여 살고, 유랑하는 목자들도 가축 떼를 몰고 다닐 것이다.
25 나는 지친 사람들에게 새 힘을 주고, 굶주려서 허약해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겠다.
26 그 때에 백성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 보니, 나에게 아주 단잠이었다’ 하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되돌아오게 하심은 ‘정의의 보금자리, 거룩한 산’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전 본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들의 ‘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시는게 아니다.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그 책임을 물으신 후에 기꺼이 그들을 다시 품에 안아 주실 것이다. 따라서 이전에 약속은 갱신되어 제공될 것이다. 따라서 죄가 제거된 ‘정의와 거룩’한 도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되돌이키심은 ‘신실하신 목자’처럼 경험된다고 나눴었다.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모두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텐데, ‘새 힘’주심과 ‘배불리 하심’을 경험하게 만드신다. 신실하신 목자는 지쳐 쓰러져있는 양들을 일으키시고 세우시며 쉴만한 물가와 풍성한 식탁을 제공하신다. 여기에서 ‘단잠’에 깨어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지적된다. 하나님께서 깨어나실 것인가, 아니면 포로 시기 후에 유다 백성들이 잠에서 깰 것인가? 그 꿈에서 깨어남이 ‘단잠’ 이었다면 그 각성이 ‘악몽’에서 각성이 아닐텐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잠과 깨어남은 [완전한 컨디션의 회복]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이 깨어나심이든지, 유다 백성들이 깨어남이든지, 이 깨어남은 이전의 완전한 상태를 완벽하게 되찾는 것으로 이해된다.
27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겠다. 나 주의 말이다.
28 내가 전에 그들을 뽑아내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멸망시키고 재앙에 빠뜨리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가 그들을 세우고 심으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29 그 때가 오면, 사람들이 더 이상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 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30 오직 각자가 자기의 죄악 때문에 죽을 것이다. 신포도를 먹는 그 사람의 이만 실 것이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처음 부르실 때 열방을 향해 ‘뽑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멸망시키고, 파괴하게’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리고 난 후에 세우고 심으시려는 계획을 말씀하셧다. 이제 ‘그 때’가 되면 파괴가 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우고 심으시는 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집, 유다의 집- 그 완전한 공동체에 사람과 짐승의 씨를 뿌리실 것이다. 그로써 황폐했던 땅은 다시 비옥한 땅으로써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을 것을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29-30절에 나오는 속담은 부모의 ‘죄’ 또는 책임이 자녀 세대에 전가될 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오직 ‘각자 자기의 죄악’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결코 부모의 죄로 벌어진 일이라고 핑계할 수 없다. 오직 자기 스스로의 책임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그 약속의 땅에 돌아오는 자들은 풍성한 열매 맺음을 경험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광야에서 죽임당하게 될 것이다.
31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듣게 된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실 것이다. 이전의 언약은 파기 되었다. 하나님을 남편으로 두었던 이스라엘은 음란하게 다른 우상들을 섬김으로써 언약 파기의 당사자가 되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 언약 파기에 대한 치명적인 청구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이 ‘파괴의 속성’은 [깨질 수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구성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마치 시내산에서 ‘돌 판’에 기록된 율법은 금송아지 앞에서 ‘깨질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새 언약’을 깨질 수 있는 속성의 ‘외부’적인 것에 두지 않으시고, 깨질 수 없는 마음 판에 직접 새기실 것이다. 이로써 새 언약은 내부에서 결코 깨질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내면화될 것이다. 이제 ‘가르침’의 속성은 징계와 공포로 각인되는 형태가 아니라 ‘직관’에서부터 시작되는 사랑과 용서로 경험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해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35 낮에는 해를 주셔서 빛을 밝혀 주시고, 밤에는 달과 별들이 빛을 밝히도록 정하여 놓으시고, 바다를 뒤흔들어 파도가 소리 치게 하시는 분, 그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36 “이 정해진 질서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언제까지나 한 민족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7 나 주가 말한다. 누가 위로 하늘을 다 재고, 아래로 땅의 기초를 다 측정할 수 있다면, 나도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한 온갖 일들 때문에 그들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5절의 질서는 ‘우주의 불변하는 진리’와 체계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모든 만물과 한계와 속성을 만들고 규정하신 분께서 이스라엘을 규정하신다. 그 모든 우주의 속성을 만들고 제공하는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하나님께서 규정하시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너무나 분명하다. 창조하신 분의 법이 폐지 되지 않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지위는 영원히 안전하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자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부할 수 없다면, 그 확고한 지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38 그 때가 오면, 이 도성이 나 주의 것으로 재건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모퉁이 성문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39 거기서 측량줄이 가렙 언덕에 이르기까지 곧게 앞으로 나갔다가 고아 쪽으로 돌아가고,
40 그 다음에 시체와 잿더미로 가득 찬 골짜기 전역과, 기드론 시냇가에서 동쪽의 밭들의 모퉁이에 이르는 모든 평지가 나 주의 거룩한 땅이 되고, 절대로 다시는 뽑히거나 허물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넬 망대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하고 모퉁이 문은 예루살렘 북서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시체와 잿더미로 가득찬 골짜기는 힌놈의 골짜기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표현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전체 예루살렘 전체의 선명한 지리와 구조를 하나씩 하나씩 떠올려가며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금 하나님은 ‘뽑히거나 허물어지는 일’을 언급하심으로써 예레미야에게 예고되었던 사명이 일어나리라는 전제를 보여주시는 것 같다. 이 완전히 더럽혀진 전 지역이 하나님께 완전히 거룩한 땅이 되도록 하나님은 ‘심으시고 세우실’ 것이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돌과 가시를 제거하고 완전히 새롭게 경작한 땅에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며 씨앗을 심는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일 또한 마찬가지 임을 믿는다. 우리의 황폐한 삶과 돌과 가시를 제거하시고, 우리의 심령에 완전하신 약속을 새겨 넣으실 것이다. 너무나 직관적이고 확실한 사랑의 경험이 우리에게 새겨질 때, 우리는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확고한 지위,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신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오늘 ‘새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 삶에서 그 놀라운 은혜의 풍성한 열매가 맺히고 경험되길 바라고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