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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나를 만드신 분이 응답하지 않으신다 / 욥 10:1-2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산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우니, 나는 이제 원통함을 참지 않고 다 털어놓고, 내 영혼의 괴로움을 다 말하겠다.
2 내가 하나님께 아뢰겠다.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로 나 같은 자와 다투시는지 알려 주십시오.
3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몸은 학대하고 멸시하시면서도, 악인이 세운 계획은 잘만 되게 하시니 그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라도 됩니까?
4 주님의 눈이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의 눈이기도 합니까? 주님께서도 매사를 사람이 보듯이 보신단 말입니까?
5 주님의 날도 사람이 누리는 날처럼 짧기라도 하단 말입니까? 주님의 햇수가 사람이 누리는 햇수와 같이 덧없기라도 하단 말입니까?
아직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기 때문에 중보자가 없는한 욥은 자기 스스로를 변호해야 한다. 하지만 욥의 변호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욥은 죄인으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께 자신이 정죄 당해야 마땅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항변한다. 자신은 악인보다 더 악하지 않다. 그러나 악인은 내버려두시면서 왜 나는 이토록 고통스러운 심판을 집요하게 내리시는가?
그럼에도 욥은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은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몸이다. 그가 당하는 고난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비참하고 원통하고 원망으로 넘쳐날 수 있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선악을 자신이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도무지 하나님편에서 어떤 유익이 있는지 알고 싶다.
6 그렇지 않다면야,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기어이 내 허물을 찾아내려고 하시며, 내 죄를 들추어내려고 하십니까?
7 내게 죄가 없다는 것과, 주님의 손에서 나를 빼낼 사람이 없다는 것은, 주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8 주님께서 손수 나를 빚으시고 지으셨는데, 어찌하여 이제 와서, 나에게 등을 돌리시고, 나를 멸망시키려고 하십니까?
9 주님께서는, 진흙을 빚듯이 몸소 이 몸을 지으셨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를 티끌로 되돌아가게 하십니까?
욥은 하나님께서 허물을 찾아내시려고 죄를 들추고계신다고 호소한다. 하나님께서 들추어보시는 인생에서 의로운 인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신을 직접 빚으시고 만드셨기때문에- 손수 빚으신 인생, 진흙으로 빚듯이 하나님의 손길 하나 안닿은 곳 없을 정도로 만드신 이 인생을 허망하게, 티끌처럼 만들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10 주님께서 내 아버지에게 힘을 주셔서, 나를 낳게 하시고,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게 하셨습니다.
11 주님께서 살과 가죽으로 나를 입히시며, 뼈와 근육을 엮어서, 내 몸을 만드셨습니다.
12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고, 나를 돌보셔서, 내 숨결까지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빚으시고 만드셨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욥이 자신의 생명이 탄생하던 날을 저주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성스럽게 만드시고 빚으시고 생명과 사랑을 주시며 돌보시고 숨결을 지켜주심은 역설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욥은 바로 그 부분에서 하나님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지며 질문하는것 같다.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만드시고서 나의 죄를 샅샅이 뒤져내심으로써 고통을 주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13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는 늘 나를 해치실 생각을 몰래 품고 계셨습니다.
14 주님께서는, 내가 죄를 짓나 안 짓나 지켜 보고 계셨으며, 내가 죄를 짓기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으실 작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15 내가 죄를 짓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가차없이 내게 고통을 주시지만, 내가 올바른 일을 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나를 믿어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수치를 가득 덮어쓰고서, 고통을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16 내 일이 잘 되기라도 하면, 주님께서는 사나운 사자처럼 나를 덮치시고, 기적을 일으키면서까지 내게 상처를 주려고 하셨습니다.
17 주님께서는 번갈아서, 내게 불리한 증인들을 세우시며, 내게 노여움을 키우시고, 나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18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할 것이라면 왜 나를 모태에서 살아 나오게 하셨습니까? 차라리 모태에서 죽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나 않았더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욥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인생을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하셔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다루시는지 호소한다. 마치 하나님을 음흉한 음모가처럼 묘사하면서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셨느냐고 따져묻는다. 사소한 죄라도 가차없이 고통을 주시지만 옳은 일에대해서는 한없이 침묵하시는 분이시다. 잘 될 때는 사나운 사자처럼 덮치시고 조금의 문제만 있어도 불리한 증인들과 함께 공격할 계획을 짜셨다.
욥의 결론은 이렇다. 이렇게까지 나를 험하게 다루시려면 대체 왜 그렇게도 정성스럽게 만드시고 빚으시고 태어나게 하셨단 말입니까? 이런 욥의 호소는 이사야의 말에 의해서 반박당할 것이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는거냐 하고 말할 수 있는가? 그에게는 손이 있으나 마나다!(사 45:9) 욥은 질문을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토기를 만드신 분께서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다루시는 것이 악한가?
19 생기지도 않은 사람처럼, 모태에서 곧바로 무덤으로 내려갔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20 내가 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를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 내게 남은 이 기간만이라도, 내가 잠시라도 쉴 수 있게 해주십시오.
21 어둡고 캄캄한 땅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로 가기 전에 잠시 쉬게 해주십시오.
22 그 땅은 흑암처럼 캄캄하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서 아무런 질서도 없고, 빛이 있다 해도 흑암과 같을 뿐입니다.
계속해서 욥의 청원은 ‘안식’하길 원함으로 나아가고있다. 그러나 그 안식은 이 땅에서 쉬기 원함이다. 욥이 생각하는 죽음은 질서 없음과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로 인식된다. 죽음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마저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야말로 허무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 죽음이 임박하기 전에 자신의 고통에 의미를 되찾는 신원이 복구되길 원한다. 그것이 안식이 될 것이다.
욥에겐 하나님과의 대화가 간절히 필요하다. 우리는 욥의 원망섞인 토로가 결코 하나님을 벗어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 안에서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나서 원망을 퍼붓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지고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극과 극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하는 모든 관계 개선의 노력들은 유의미한 결과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욥에게 이 관계 개선의 노력은 오로지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그토록 사모하고 있는 것이고 그 응답 듣는것이 바로 ‘안식’이다.
우리는 욥과 너무나 다른 한 가지가 있다. 우리에겐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응답해주시는 우리의 영원하신 중보자,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조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구하시는 은혜를 입고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다. 해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참된 위로와 소망과 안식을 경험할 수 있다. 모든 안식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 참된 위로와 소망의 안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실 것이다.
오늘 중보자 되신 우리 예수님을 붙들면서 인생에 이해되지 않는 모든것까지도 우리를 사랑으로 만드시고 구성하시며 신실하게 관리하고 계시는분을 의지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보다 끔찍한 고통은 없다.
2.
하나님의 응답하심만이 우리의 삶의 의미를 되찾게 만든다.
3.
중보자 예수님 없이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구할길이 없다.
4.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간구를 가지고 호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