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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배신자들에게 제공된 생명의 식탁 / 마가복음 14:22–3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2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유월절 식사의 무교병이다. 예수님은 무교병을 취하시고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주시는데 이런 행동은 가족 식사에서 아버지의 일반적인 행동으로 지적된다. 떼어내진 빵은 예수님의 몸으로 해석될 때 가장 분명한 상징으로 ‘죽음’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죽음을 예고하셨고, 빵의 찢어짐과 ‘몸’이다 라는 설명이 연결되어 몸의 찢어짐- 죽음을 효과적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물론 이 본문에서 설명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빵이 무교절 빵으로써 가지는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의 의미들도 함께 연결될 것이다. 과거의 사건은 이제 ‘현재’의 새롭게 구현된 사건으로 재적용된다.
유월절 음식들이 ‘급하게 먹고’ ‘급히 이집트’를 빠져나가는 것을 이야기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받아라’ 라는 단어는 매우 당혹스럽다. 앞서 지적한것처럼 찢어진 빵이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지금 즉시 죽는 일에 ‘동참’ 하라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과연 이 죽음에 즉시 동참할 수 있을것인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들은 ‘걸려 넘어져’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다.
23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24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잔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잔을 함께 돌려 마셨다. 미쉬나 규칙에 따르면 유월절 식사에서 최소한 포도주 네 잔을 함께 마신다고 한다. 자녀들의 질문에 답하며 유월절 사건에 대한 전체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은 주된 식사가 시작되기 전 두 번째 잔을 마실 때 이고, 누가복음을 참고하면 잔이 ‘두 번’ 제자들에게 나누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포도주는 ‘피’로 상징된다. 앞서서 살핀것처럼 빵이 육체의 찢어짐이라면 포도주가 ‘피’로 연결되기 때문에 죽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당연했다. 유월절이 문에 바르는 어린양의 ‘피’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피’와 유월절, 죽음이 가리키는 바는 예수님이 곧 그 제물로써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피’가 곧 ‘생명’이었기 때문에 피를 마시라는 명령을 어떻게 제자들이 받아들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주의 피를 마신다는 개념이 너무나 압도적이고 충격적으로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새것’으로 말씀하시는 새 포도주가 의미하는 것은 아마도 [하나님 나라], [새 이스라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 마시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이것이 앞으로의 식사에서 나눠졌어야 했을 나머지 두개의 잔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인지, 이후의 십자가 위에서 받지 않으시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하는 질문은 본질에서 벗어난다. 죽음과 생명이 예수님의 ‘피’에 선명히 드러나고 포도주는 예시일 뿐이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공하시는 생명이 그들에게 제공될 새로운 포도주가 될 것이다.
26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할렐로 불리는 시편 113편에서 118편의 노래는 유월절 식사 의식에서 꼭 해야 하는 의식이었다. 미쉬나에 다르면 식사 후에 115-118편이 식사 후에 불려졌기 때문에 그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베다니로 가지 않고 올리브 산으로 갔다. 아마 제자들간의 약속에 의해서 이곳에서 다시 모일 것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이곳으로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올리브 산은 성전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 곳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진짜 성전이신분을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게 될지 보게 될 것이다.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모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기 때문이다.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목자’를 칠 때 ‘양 떼’가 흩어지리라는 말씀은 스가랴 13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스가랴의 이어지는 예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와는 다르게 매우 불길한 이야기와 연결되고 있다. 바로 걸려 넘어진다 라는 단어가 ‘스칸달리조마이’ 라는 동사로 쓰이고 있다는 점인데, 이 단어는 배교와 배신을 뜻하는 용례로 주로 사용된다. 제자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고 떠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이렇게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과 다르게, 이제 살아나실 것과 그들과 처음 만났고, 활발한 사역의 중심지였던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실 것을 말씀하신다. 아마도 이들은 아직 이 이야기가 왜 제시되고 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충격적인 식사와 배신과 배도에 대한 메시지는 제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29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모두가 걸려 넘어질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3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1 그러나 베드로는 힘주어서 말하였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모두도 그렇게 말하였다.
베드로는 아주 자신에차서 ‘나는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의 하나가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찬양하며 올리브산으로 나오는 제자들은 나는 아닐 것이라며 계속해서 충성하려는 결심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걸려 넘어지는 것’과 ‘흩어지는 것’은 능동적으로 선택하는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동적으로 당하는 배신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질문될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선생님과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는데, 다른 제자들도 이에 동참하는 것으로 봐서 제자들 모두가 이 ‘넘어질’ 상황에서 예수님을 향한 신뢰를 거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밤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베드로의 자신감, 제자들의 결의가 얼마나 손쉽게 깨질 것인지 예고하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식탁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식탁에서 함께 먹는 제자들은 곧 예수님을 배신하고 넘어지며 떠날 것이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신다. 이것이 이 식탁의 위대함이다. 우리 주님이 모르셔서 은혜를 제공하시고 생명을 나눠주시는게 아니다. 그들이 죄인이고, 배신자일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찬에서 얻는 놀라운 은혜다. 우리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들이며 동조자들 아닌가. 그러나 그런 우리를 이미 아시는 분께서 그분의 식탁을 직접, 구체적으로 준비하시고 제공하셨다. 이제 그 생명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식탁 앞으로 나아갈 때, 새 포도주, 주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으며, 부활의 식탁을 이 곳에서 미리 맛볼 수 있다. 오늘 죄인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