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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부활에대한 그림자 / 욥 13:20-14:2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0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들어주시면, 내가 주님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21 나를 치시는 그 손을 거두어 주시고, 제발 내가 이렇게 두려워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22 하나님,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내가 먼저 말씀드리게 해주시고, 주님께서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욥은 하나님께 두 가지를 청원한다. 하나는 때리고 계시는 그 손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깊은 좌절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욥은 하나님과 옳고 그름을 따져서 자신의 의로움과 정당성을 주장하겠지만, 더 큰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며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23 내가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내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있습니까?
24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피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 나를 원수로 여기십니까?
25 주님께서는 줄곧 나를 위협하시렵니까? 나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나를 공격하고 계십니다.
26 주님께서는 지금, 내가 어릴 때에 한 일까지도 다 들추어 내시면서, 나를 고발하십니다.
27 내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 내가 가는 모든 길을 낱낱이 지켜 보시며, 발바닥 닿는 자국까지 다 조사하고 계십니다.
28 그래서 저는 썩은 물건과도 같고, 좀먹은 의복과도 같습니다.
욥은 다시금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왜 그렇게도 세세히 따져 살피시며 자신을 피하시는지 질문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피하시면 안된다. 욥 자신은 이런 취급을 당할만큼의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어릴 때 한일도 다 들추셔서 지금의 벌을 내리시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시다. 27절에 ‘발바닥 닿는 자국’이라는 것은 발바닥을 특정 무늬로 잘라 노예를 표시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욥을 종으로 다루시면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조리 감시하시며 형벌의 이유들을 추가시키고 계시는 중이시다.
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그 사는 날이 짧은데다가, 그 생애마저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2 피었다가 곧 시드는 꽃과 같이, 그림자 같이, 사라져서 멈추어 서지를 못합니다.
3 주님께서는 이렇게 미미한 것을 눈여겨 살피시겠다는 겁니까? 더욱이 저와 같은 것을 심판대로 데리고 가셔서, 심판하시겠다는 겁니까?
4 그 누가 불결한 것에서, 정결한 것이 나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5 인생이 살아갈 날 수는 미리 정해져 있고, 그 달 수도 주님께서는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6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셔서 그가 숨을 좀 돌리게 하시고, 자기가 살 남은 시간을 품꾼만큼이라도 한 번 마음껏 살게 해주십시오.
욥은 다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허망하게 짧은지에 대해서 호소한다. 이렇게 작고 미미한 삶을 그렇게도 자세히 살펴서 죄에 대한 대가를 찾아내시고 심판하시는지 의아해한다.
욥은 호소하기를 인간의 한계있는 인생, 불결한 인생에서 하나님의 완전함과 온전함에 걸맞는 정결한 것이 나오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런 인생임을 아시고 날 수도 정하셨고 한계도 정하셨으므로, 그냥 내버려 달라고 호소한다. 숨좀 쉴 수 있도록 안식을 요청한다.
7 한 그루 나무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찍혀도 다시 움이 돋아나고, 그 가지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8 비록 그 뿌리가 땅 속에서 늙어서 그 그루터기가 흙에 묻혀 죽어도,
9 물기운만 들어가면 다시 싹이 나며, 새로 심은 듯이 가지를 뻗습니다.
10 그러나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한 번 죽으면 사라지게 되어 있고,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11 물이 말라 버린 강처럼, 바닥이 드러난 호수처럼,
12 사람도 죽습니다. 죽었다 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없어지면 없어질까, 죽은 사람이 눈을 뜨지는 못합니다.
욥의 논리는 이전에 다뤄졌던 주제, 파괴를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자연만물은 죽은 듯 보이는 만물조차도 다시 소성할 기회를 얻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힘센 인간이라도 죽으면 끝난다는 사실을 놓고 안식을 요구한다. 함께 살펴보고 있는 것처럼 욥이 말하는 안식은 죽음 이후의 안식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고통이 해소될 정도의 억울함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욥에게 지금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13 차라리 나를 스올에 감추어 두실 수는 없으십니까? 주님의 진노가 가실 때까지만이라도 나를 숨겨 주시고, 기한을 정해 두셨다가 뒷날에 다시 기억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14 아무리 대장부라 하더라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5 그 때에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님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지금은 주님께서 내 모든 걸음걸음을 세고 계시지만, 그 때에는 내 죄를 살피지 않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허물을 자루에 넣어 봉하시고, 내 잘못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욥의 요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직 욥의 인식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가정할 수 있는 어떤 증거도 없기 때문에 이 가정은 상상이다. 그럼에도 이 상상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어서 완전히 소멸시키시기보다는 신원해주시며 복구시켜주시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어떤 의미에서 ‘부활’에 대한 얕은 소망과 인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욥의 인식 자체가 ‘죽음 이후의 세계’를 확신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죽음 이후 스올에 잠시 감추어 두었다가 다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날이 되었을 때 부르심 받아 다시 나타나는 순간은 ‘죄와 허물’이 기억되지 않는-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존재로써 하나님께 기쁨을 다시 드릴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18 산이 무너져 내리고, 큰 바위조차 제자리에서 밀려나듯이,
19 물이 바위를 굴려 내고 폭우가 온 세상 먼지를 급류로 씻어 내듯이,
20 주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의 삶의 희망도 그렇게 끊으십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끝까지 억누르시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님 앞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21 자손이 영광을 누려도 그는 알지 못하며, 자손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 소식 듣지 못합니다.
22 그는 다만 제 몸 아픈 것만을 느끼고, 제 슬픔만을 알 뿐입니다.
부활에 대한 얕은 소망과 상상력은 현실 세계에서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과 파괴’라는 허탈한 결과물만이 남을 것이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바위조차 밀려나는, 물이 바위를 굴리고 폭우가 씻어버리는 세계, 연약한 사람의 삶의 희망들이 다 끊어져버리는 죽음은 아무런 희망도 가져오지 않는 ‘허무’다. 욥의 결론은 마치 ‘허무’로 결론 지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부활을 역사속에서 증거로 받았고, 우리에게 그 부활을 약속하신 우리 주님의 증거가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얼마나 소망으로 넘치는가? 욥은 상상했을 뿐임에도 그것이 유일한 소망처럼 느껴지는데, 우리에게는 바로 그 상상이 아닌 ‘실재’로 우리가 경험할 일이며, 우리의 완전하고 온전한 소망이 바로 이 부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쁨인가?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써 도무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중보하시며, 마침내는 원래 만드신 목적과 아름다움대로 다시 회복시켜 부활하게 만드실 그 놀라운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게 만든다. 오늘 그 부활의 능력을 다시금 기억하고 사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욥은 만물조차 기회를 얻는 것 같은데 인간은 죽음이후의 기회가 없음을 한탄한다.
2.
욥에게 죽음이후의 기회는 상상일뿐이었다.
3.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이 역사적 진실로 확인됐다.
4.
예수 안에 부활은 욥이 기대했던 가장 큰 소망과 위로였다.
5.
부활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