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빌립보교회를 위해 ‘기도’ 했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 마음을 공유하길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공유하는 가장 깊고 친밀한 교제인 코이노니아를 나누길 원하는 것이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다는 설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최초의 아담을 떠올리게 된다. 분명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으로써 처음 아담의 실수를 극복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는 것이다. 아담은 선과 악을 알게 해주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자신이 선악의 기준이 되길 원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삶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종의 모습으로 인간의 한계성 있는 몸을 취하셨다. 육신으로 살아가시는 동안에 모든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지더라도 감내하시며 종으로써 역할을 완수하셨다. 분명하게 예수님은 아담의 실수를 극복하셨고, 아담이 감당할 수 없었던 인류의 실패의 무게를 대신 감당하셨으며, 인류의 역사의 대전환을 만들어내셨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심’은 율법에 대한 모든 요구를 예수님께서 이루셨기 때문이다. 율법의 요구는 실행적 측면에서 완성하신 것 뿐만 아니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당해야 하는 형벌적 측면도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셨다.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시키신것을 하나님은 완전한 의로 인정하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이제 인류 누구도 완성시킬 수 없었던 율법을 예수님께서 완성시키셨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얻으심과 인류의 대표로써의 자격과 능력을 보여주셨다. 이제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이시며 주님으로 영광받으시기 합당하심이 증명되었다.
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자신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어 가는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구원은 우리의 능력으로 성취해낼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앞서 살핀것처럼 율법의 모든 요구와 형벌을 모두다 감당하며 완성시켜낼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를 통해서 이 ‘동참’이 깊고 친밀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나눴었다. 이 구원은 우리 주님의 위대하신 구원 사역에 ‘코이노니아’ ‘동참’ 하는 것이다. 이 동참 속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일하셔서 하나님을 어떻게하면 기쁘시게 할지를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실천하게 하신다. 13절은 자기의 구원을 이루는 방식이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활동하셔서’ 가능하다는 설명을 훌륭하게 보완해준다.
14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18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활동하셔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구원에 동참하는 삶이 어떤 예시를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해준다. 이 구원에 동참하는 삶은 이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살아가며 별과 같이 빛나는 삶이 될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구원에 ‘동참’ 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 구원은 한 인간의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구원과정에 동참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 가운데 임함으로 생겨나는 사회적 변화를 포함할 수도 있다. 그것을 사회적 구원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그런 일들은 분명히 일어날 수 있다. 사도바울이 사회적 구원을 염두에두고 이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 별과 같이 빛나리라는 표현이 다니엘서에서 비슷하게 등장하는 부분을 참고해보면 아주 의미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때로 순교적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바울의 말처럼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된다면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본받는 일이고, 닮아가는 일이다.
19 나는 주 예수 안에서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곧 보내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도 여러분의 형편을 앎으로써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20 나에게는, 디모데와 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여러분의 형편을 염려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21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디모데의 인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23 그러므로 내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를 곧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4 그리고 나도 곧 가게 되리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 공동체에 보내고자 한다.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이 가지는 태도와 헌신, 아름다운 열매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디모데는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바울과 동역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디모데는 만사를 제쳐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집중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빌립보교회의 형편을 진심과 마음을 다해 염려해주고 있다. 계속 살펴보는 것처럼, 구원에 ‘동참’,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자들은 성도 안에서의 구원에 ‘동참’, ‘코이노니아’를 나누길 열망한다. 이런 디모데를 빌립보로 먼저 보냄으로써 바울도 또한 그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25 그러나 나는, 내 형제요 동역자요 전우요 여러분의 사신이요 내가 쓸 것을 공급한 일꾼인 에바브로디도를 여러분에게 보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6 그는 여러분 모두를 그리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병을 앓았다는 소식을 여러분이 들었기 때문에, 몹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27 사실, 그는 병이 나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만이 아니라 나도 불쌍히 여기셔서, 나에게 겹치는 근심이 생기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서둘러서 그를 보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를 다시 보고서 기뻐하게 하려는 것이며, 나도 나의 근심을 덜려는 것입니다.
29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 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그를 영접하십시오. 또 그와 같은 이들을 존경하십시오.
30 그는 그리스도의 일로 거의 죽을 뻔하였고, 나를 위해서 여러분이 다하지 못한 봉사를 채우려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여러분의 사신, 즉, ‘빌립보교회의 사신’이다.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의 소식과 바울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아 전달해준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서 빌립보교회로 되돌려보내진다. 이유는 에바브로디도가 병에 걸려 아프다는 소식을 빌립보교회가 듣고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었는데, 실재로 에바브로디도는 죽을뻔했지만, 다행히 하나님의 긍휼로 되살아났다. 그래서 좋은 소식으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로 되돌려보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겹치는 근심’, ‘나의 근심’ 같은 표현을 써서 에바브로디도의 건강이 매우 큰 기도제목이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앞서 1장에서 ‘기도’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모든’ 기도의 강조를 들었었다. 바울에게 이 모든은 깊은 사랑의 교제 코이노니아를 통해 이뤄지는 모든 이야기들이 ‘기도’의 제목이었을 것이다.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교회는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고 존경해야 한다. 빌립보교회가 다하기 어려운 일들을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사를 제치고 교회를 살피고 그리스도의 일에 집중하는 디모데나, 목숨을 걸고 헌신하는 에바브로디도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의 예시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전심으로 하나되어 헌신하듯이 빌립보교회는 그렇게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영광스러운 이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할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우리 주님께서 성취하신 것처럼, 자기의 영광을 버리시고 기꺼이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기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기꺼이 자기에게 닥친 비참하고 억울한 심판, 십자가를 받아내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때, 그분과의 깊은 교제, 코이노니아를 이룰 때, 그것이 곧 교회를 향한 코이노니아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이론’이 아닌 ‘삶’과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인정하고 그분과의 깊은 교제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주님의 나라, 그분의 교회를 위한 마음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주님의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깊이 이해하고 생각하게 하시며, 다시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향하여 우리의 삶과 영혼의 문들을 열어내길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요구를 완성시키셨다.
2.
그분의 겸손과 영광을 그리스도인들은 뒤따라가며 닮아가야 한다.
3.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의 삶은 반드시 주변을 변화시키는 능력, 진정한 코이노니아로 초대된다.
4.
우리 안에 깊고 친밀한 교제, 코이노니아가 회복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