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찌하여 전능하신 분께서는, 심판하실 때를 정하여 두지 않으셨을까? 어찌하여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판단받을 날을 정하지 않으셨을까?
2 경계선까지 옮기고 남의 가축을 빼앗아 제 우리에 집어 넣는 사람도 있고,
3 고아의 나귀를 강제로 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부가 빚을 갚을 때까지, 과부의 소를 끌어가는 사람도 있구나.
4 가난한 사람들이 권리를 빼앗기는가 하면, 흙에 묻혀 사는 가련한 사람들이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가서 숨기도 한다.
악인들에 대한 묘사가 다시 등장한다. 율법에 따르면 조상에게 허락된 경계석을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함부로 임의 분배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만큼 ‘땅’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의 표지였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본문의 시대 배경이 아직 족장 시대의 사람이라면 이것이 신명기적 율법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경에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허락된 것들 안에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의 악인은 자꾸만 ‘욕심’을 낸다. 땅을 더 차지하려고 하고 고아와 과부의 것을 빼앗고 착취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흙에 묻혀 사는 가련한 사람들을 학대한다. 이런 착취에 대한 영원한 심판과 형벌은 출애굽을 통해 예시되었고 십자가를 통해 성취되었으며 부활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5 가난한 사람들은 들나귀처럼 메마른 곳으로 가서 일거리를 찾고 먹거리를 얻으려고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먹일 것을 찾을 곳은 빈 들뿐이다.
6 가을걷이가 끝난 남의 밭에서 이삭이나 줍고, 악한 자의 포도밭에서 남은 것이나 긁어 모은다.
7 잠자리에서도 덮을 것이 없으며, 추위를 막아 줄 이불 조각 하나도 없다.
8 산에서 쏟아지는 소낙비에 젖어도, 비를 피할 곳이라고는 바위 밑밖에 없다.
9 아버지 없는 어린 아이를 노예로 빼앗아 가는 자들도 있다. 가난한 사람이 빚을 못 갚는다고 자식을 빼앗아 가는 자들도 있다.
10 가난한 사람들은 입지도 못한 채로 헐벗고 다녀야 한다. 곡식단을 지고 나르지만, 굶주림에 허덕여야 한다.
11 올리브로 기름을 짜고,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도, 그들은 여전히 목말라 한다.
12 성읍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들과 죽어 가는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도,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를 못 들은 체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살 것조차 비참하게 얻게 된다. 떨어진 이삭을 줍고 포도밭에서 남은 것을 긁어 모은다. 그들은 철저히 소외된 자들이고 보호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가난한 자들의 비참함은 ‘노예화’ 되는 과정 속에서 더욱 그 비참함이 선명해진다.
심각한 문제는 이 굶주림과 가난 속에 허덕이며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온 인생이 쥐여짜이는 것 같아 죽어가는 삶에서 있는 힘껏 외쳐보지만 [하나님게서 그 간구를 외면하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참한 일이 있을 수 없다. 그 가난한 자들의 마지막 희망은 하나님이 등장하셔서 그 모든 아픔과 좌절과 절망에 응답하시며 필요와 쓸 것을 제공하시고 학대와 착취를 멈추도록 악인들을 향해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침묵하신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이런 악에 대하여 침묵하시는가? 욥이 자신의 말들을 ‘경험적 지혜’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지금 욥이 말하고 있는 것들은 실재로 벌어지는 일들이며 경험된 일들이다. 정말 우리가 사는 삶은 이런 부조리들로 만연해있다.
13 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빛이 밝혀 주는 것을 알지 못하며, 빛이 밝혀 주는 길로 가지 않는다.
14 살인하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을 죽이고, 밤에는 도둑질을 한다.
15 간음하는 자는 저물기를 바라며,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얼굴을 가린다.
16 도둑들은 대낮에 털 집을 보아 두었다가, 어두워지면 벽을 뚫고 들어간다.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밝은 한낮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17 그들은 한낮을 무서워하고, 오히려 어둠 속에서 평안을 누린다.
악인들은 ‘어둠’속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빛과 어둠의 선명한 대조가 보인다. 빛을 싫어하는 자들은 ‘악인들’이다. 밝은 한 낮에는 그들이 활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어둠 속에서 평안을 누린다.
빛을 싫어하는 자들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려는 자들이다. 따라서 참된 빛이신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우리가 욥의 논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인생의 길과 삶의 자취들을 모르시는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은 마침내 이 악인들이 어둠 속에서 벌이는 일들에 대한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피해서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부정과 죄를 저지르지만 쓸모없는 노력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보이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지금 당장 악인들을 향한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는가? 그들이 어둠 속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을 때 그 어둠을 걷어내시는 빛으로 왜 일하시지 않는가? 질문은 계속된다.
18 악한 사람은 홍수에 떠내려간다. 그의 밭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내리니, 다시는 포도원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19 날이 가물고 무더워지면 눈 녹은 물이 증발하는 것 같이, 죄인들도 그렇게 스올로 사라질 것이다.
20 그러면 그를 낳은 어머니도 그를 잊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는다. 아무도 그를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 악은 결국, 잘린 나무처럼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21 과부를 등쳐 먹고, 자식 없는 여인을 학대하니, 어찌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겠느냐?
22 하나님이 그분의 능력으로 강한 사람들을 휘어 잡으시니, 그가 한번 일어나시면 악인들은 생명을 건질 길이 없다.
욥은 급격하게 친구들의 논지를 따라가는 것 같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욥과 친구들의 논쟁의 세번째 싸이클에서 소발의 이야기가 침묵되고 있는데 이 본문이 소발의 주장처럼 읽혀진다고 주장한다.
친구들의 주장을 다시 떠올려보면 한마디로 ‘권선징악’이다. 오늘 본문도 ‘권선징악’에 대한 선명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본문을 ‘소발’이든지, 다른 친구의 말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욥이 그런 권선징악에 대해서 완전히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봐야 한다. 욥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가운데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심판이 일어나리라고 믿고 생각한다. 다만 과졍과 결과의 측면에서 결과만 놓고 과정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 욥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악인에 대한 절대적 심판에 대한 주장은 친구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궁극적인 심판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논지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3 하나님이 악한 자들에게 안정을 주셔서 그들을 평안하게 하여 주시는 듯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을 낱낱이 살피신다.
24 악인들은 잠시 번영하다가 곧 사라지고, 풀처럼 마르고 시들며, 곡식 이삭처럼 잘리는 법이다.
25 내가 한 말을 부인할 사람이 누구냐? 내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공격할 자가 누구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욥 또한 악인들은 번영하다 사라지고 마르고 시들고 잘려나가리라고 믿는다. 이것은 정말 사실이고 진실이다. 이것은 욥이 지금까지 해온말들과 모순적인 말이 아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욥이 ‘심판’을 염두해두고 악인의 멸망을 볼 때, 그것이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을 낱낱이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드시 오는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악인은 풀과 꽃이 피고 지는 일들, 생명이 있다 사라지는 것처럼 흥망성쇠를 계속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이 ‘영원’이라는 시간선 속에서 인간의 죄와 심판은 너무나도 순간적이다. 악인들이 저지르는 죄악된 모든 순간들은 영원이라는 무한한 시간의 밀도 속에서 터무니없이 짧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낱낱이 살피신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든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시간선 속에서 모든 억울함과 고통과 슬픔에 찬 호소를 갚아주실 것이다. 가난과 억압과 착취 속에서 살아갔던 모든 순간들을 보상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일을 사랑으로 완수하실 것이며 그 확실한 보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셨다.
따라서 우리를 향해 닥쳐오는 모든 비참하고 끔찍한 죄악들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하나님의 영원의 시간선을 신뢰하자. 영원이라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며 성취하시며 공급하시며 완성하신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간에서도 그 공급과 완성의 역사들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세계를 관찰하는 인간의 눈은 ‘영원’을 관찰할 수 없다.
2.
영원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3.
악인이 흥왕하는듯 보여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4.
착취하는 자들에게는 최후가 정해져있다.